계획을 세우기 위한 계획 없는 여행

by 르코

#1. 친구

한해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 계획 없이 길을 나섰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내가 나고 자란 곳. 고향

앞을 내다보기 전

나의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소주 한잔 마시며 정겨운 욕을 해댔다.

"야. 인마랑 내랑 오백 원 때문에 싸웠을 때 아있나?"

"뭐라카노 그기 고작 오백 원 때에 그랬겠나, 그기 아이고 인마"

고속도로를 타고 신나게 달려온 것처럼 우리는 15년 전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한참을 떠들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구나 내가. 그동안 멀리 앞만 보고 미래만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이 친구들과 앉아 과거를 이야기하고 지금의 신세를 이야기한다.

어느 지점부터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다른 곳을 보고 살아가다가

15년의 세월에 마주했을 때는 "아. 이 친구들과 내가 너무 떨어져 있구나" 싶다.

4시간을 웃고 떠드는데, 생각해보니 난 말없이 웃기만 했다.

진지하게 난 이 친구들 생각하고 이 친구들은 날 생각했을 것이다.

#2. 경주

왜 경주냐고 물으면. 물론 "그냥"이다.

나도 왜 경주가 떠올랐는지는 모르지만 '어디로 갈까'라고 생각한 순간 '경주'였다.

막상 경주에 도착하니 어딜 갈지, 어디서 잘지, 뭘 먹을지 아무 계획이 없어 무작정 드라이브만 했다.

불국사, 석굴암, 안압지... 남들 다 가는 관광지는 갈 생각도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잘 곳을 찾는데,

아뿔싸.

12월 30일인 이유로 방이 없네.

또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느지막이 숙소 하나 남은 어딘가에 운 좋게 묵게 되었다.

짐을 풀고 앉아 TV도 보고 음악도 듣고 심심했다.

바로 옆에 극장이 있길래 영화 한편 보고 왔다.


#3. 생각

자 이제 깊은 생각에 잠길 시간. 사실 이 시간을 위해 이곳에 왔다.

난 나의 생각이 가장 반짝 거리는 순간을 잘 안다.

곰곰이 1년을 돌아보고,

어제와 오늘의 시간을 돌아봤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며 앞으로의 모습을 그려봤다.

그러다가.. 아! 그래!

내가 친구를 만난 것도, 경주에 온 것도, 영화를 본 것도

진짜 잘한 일이구나 싶었다.

2011년 서점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려 소리쳤다.


'이건 진짜 멋진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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