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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코 Aug 12. 2023

오해 없는 브랜딩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온갖 생각이 떠오르지만 콕 집어 이겁니다!라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저마다 기준도 다를 것이고요. 브랜딩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또 한 번 말문이 막힙니다. 시중에 브랜딩 관련 책과 콘텐츠가 넘쳐나고 너도나도 브랜딩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잘 나가는 스타트업 대표가 성공의 이유로 ‘브랜딩’을 꼽습니다. 어느 날 대표님이 우리도 브랜딩 좀 해보자고 말합니다. 책을 몇 권 사서 읽어봅니다. 보는 내내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책을 덮고 나면 뭐부터 해야 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브랜딩, 알겠는데 모르겠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TV에 나와서 행복하려면 많이 웃으라고 합니다. 따라 웃어봅니다. 전혀 행복해지지 않죠. 왜일까요? 

흑백 TV 시절에 컬러 TV가 출시되면 잘 팔립니다. 뚱뚱한 브라운관 TV만 있던 시절에 얇은 PDP TV는 그야말로 혁신이었습니다. 이제 화질 경쟁을 합니다. PDP는 자취를 감추고 오늘날 우리의 거실은 LCD 또는 OLED TV가 장악했습니다. 컬러에서 두께로, 두께에서 화질로 옮겨가며 기술이 발전합니다. 기업은 기존보다 나은 기술을 개발하는데 비용을 투자하여 양산에 성공하면 기술의 우위를 알려 제품을 판매합니다. 요즘 TV를 사려는 사람은 LG의 OLED와 삼성의 QLED 사이에서 고민을 합니다. 색 재현율은 OLED가 더 우수한 것이 사실입니다. 근데 왜 소비자는 둘을 놓고 고민을 할까요? 지금의 기술 수준에서 화질의 차이를 소비자가 알기는 어렵습니다. 기술에서 변별력이 없으니 브랜드, A/S, (게임이냐 TV시청이냐와 같은) 쓰임새를 두고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필요한지 의문인 기술력까지 계속 추가됩니다. 커브드, 롤러블 TV까지 나옵니다만 화질 다음의 기술력은 크게 힘을 쓰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기술 우위를 점한 제품이 TV와 신문에 광고를 합니다. 흑백과 컬러의 차이, 두께의 차이, 화질의 차이는 100명 중 100명의 소비자가 똑같이 인지할 것입니다. 빈티지를 수집할게 아니라면 가격이 같은데 얇고 화질이 좋은 컬러 TV를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뒤에서 자세히 다루는 꼭지가 있습니다만 기술 경쟁의 다음은 디자인 경쟁입니다. 한때 LG가 휴대폰으로 이름을 날리던 때가 있었죠. 초콜릿폰입니다. 기술의 변별력이 사라진 후, 이젠 심미적 차이를 소비자에게 어필합니다. 우리 제품 예쁘지?라고 하는데 100명 중 50명은 확 와닿지 않습니다. 심미성은 취향의 영역이니까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가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움을 세계적으로 공인받은 제품이 다시 미적 우위를 알리는 광고를 합니다. 디자인 어워드 수상도 흔해지고 점차 소비자의 취향은 세분화, 개인화됩니다. 이제 어떤 차별화를 꾀해야 할까요? 

어느 날 제품은 없고-그래서 기능이 뛰어나다거나 더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슬로건만 등장하는 광고가 나옵니다. 그것도 수 십 년째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TV, 신문할 것 없이 모든 대중 매체에 일관된 이야기들이 흘러나옵니다. 또한 Think Different! 세상을 바꾼 천재를 찬양하고, Just do it!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스포츠 스타를 후원합니다. 텍스트로만 외치는 게 아니라 기업의 모든 활동에서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러한 기업의 활동은 광고 마케팅과 달리 소비자의 즉각적인 구매를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브랜드의 모든 활동에서 일관되게 전달해야 소비자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하죠. 오래 걸리고 쉽지 않은 길인데도 많은 기업이 따라 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기업이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은 바뀌었지만 ‘이유’는 과거와 똑같습니다. 차별화를 통해 경쟁사보다 더 많은 제품을 팔기 위해서입니다. 



첫 번째 오해, 원인이 아닌 결과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 기업에는 기술적 우위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걸 ‘광고 또는 홍보'라고 합니다. 상품의 종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다품종 대량생산의 시대입니다. 상품의 성격에 따른 유통의 방식도 다양해집니다. 나아가, 만든 걸 파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을 미리 예상해 만들어야 하는 시장이 되면서 생산부터 유통까지 관련된 모든 기업 활동이 더욱 정교하고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생깁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케팅'이라고 합니다. 생산기술도 발전합니다. 이제 개인이 생산한 상품을 전 세계 어디서든 구매할 수 있는, 그래서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입니다. 상품의 변별력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유통 인프라는 거대 자본을 가진 기업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온라인에서 자신이 만든 상품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업의 경영 방식도 변합니다. 


눈에 보이는 기술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태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변화했습니다. 제품을 파는 것에서 기업 브랜드를 파는 것으로 변화했습니다. 즉각적인 활동에서 지속적인 활동으로 변화했습니다.


우리가 브랜딩 관련 책의 사례들에서 본 활동 대부분이 이러한 변화에 해당합니다. 시장이 바뀌었으니 기업 활동 전반이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일련의 활동을 통해 성공한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공 사례는 벤치마킹의 대상이죠. 설명할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뭐라고 부를까요?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모든 활동, 브랜딩입니다. 성공 사례를 분석해 보니 경영활동 전반에 걸쳐 변화의 유사한 경향성들이 나타났고 이것을 브랜딩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고객의 변화에 맞춰 계속 변화 또는 진화합니다. 

변화의 출발선은 차별화이고 방향은 고객니즈이고 목적지는 매출/이익 실현입니다. 

책에서도 강연에서도 오늘날 기업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브랜딩'을 빼놓지 않습니다. “성공하려면 브랜딩을 잘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죠. 우리가 항상 성공 방정식을 찾는 이유는 쉽고 통쾌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답을 찾으면 원인과 해법은 멀리 달아납니다. 브랜딩은 성공의 원인이 아닙니다. 시장과 고객의 변화를 따른 결과적 해석입니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근원적인 구조와 맥락을 살펴 시장의 변화와 고객 니즈에 따라 설루션을 누적해나가야 합니다.  



두 번째 오해, 목적이 아니라 수단

망치를 들면 못만 보입니다. 망치는 못을 박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목적은 가구를 체결하거나, 벽시계를 걸기 위해서입니다. 못을 박기에 (현재까지) 가장 좋은 도구가 망치일 뿐입니다. 가구를 체결하는 것이 목적이 되면 못과 망치를 쓰지 않는 솔루션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짜임가구가 그렇죠. 나무의 자연스러운 뒤틀림을 고려하면 내구성에는 더 좋은 방법입니다. 실제로 오래된 한옥 건축물과 장인의 가구는 못을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벽시계를 설치하는 것이 목적이 되면 망치가 없을 때 망치를 구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대신에 한쪽 끝이 스틸 재질로 되어 있고 지렛대 원리가 작동할 만한 몽키 스패너를 임시방편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벽시계를 매일 수 번 반복하여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면 접근 가능한 솔루션입니다. 망치만 쥐고 있으면 짜임가구라는 새로운 해결책도, 몽키스패너라는 빠른 해결책도 선택지에서 사라집니다. 즉, 수단을 목적화하면 ‘창의성’과 ‘문제해결’ 역량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브랜딩은 망치입니다. 브랜딩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브랜딩 전문가 또는 담당자는 모든 문제를 브랜딩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급기야는 모든 솔루션을 브랜딩의 범주에 욱여넣습니다(그래서 우리가 브랜딩을 광범위하다고 느끼는 걸까요). 앞서 첫 번째 오해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브랜딩을 목적으로 해서 기업이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시도한 수단의 총합이 성공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프로젝트나 회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먼저이고 가장 중요합니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목적을 달성하면 됩니다. 단, 합의된 ‘방향'을 따르면서 말이죠.     



세 번째 오해, 기술이 아니라 태도

연애할 때는 공감이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공감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니 이제 어떻게 ‘공감'해나가야 할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일단 공감이 뭔지 정의합니다. 한 사람은 ‘무조건적 동의’로, 다른 한 사람은 ‘감정의 위로’라고 정의한다면 솔루션 찾기가 원활하지 않으니 하나의 합의된 정의가 필요합니다. 정의가 되었다면 자신의 경험 또는 사회적으로 공감이라고 합의하는 다양한 사례를 찾아볼 필요도 있겠네요. 심리학적인 접근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관련 전문가의 조언을 얻거나 논문과 책을 읽을 수도 있고요. 이렇게 해서 공감을 더 잘하기 위해 어떤 노력(행동)을 할지 하나씩 정합니다. 실행에 옮길 차례인데요. 필시 문제를 맞닥뜨립니다. 그때마다 공감의 정의를 새로 고치거나 해야 할 행동을 개선해 나가야 하죠. 요컨대 합의된 정의를 하고, 사례를 찾아 방법을 강구하고, 전문적 지식을 이용하여 방법의 날카로움을 더하고, 실행과 동시에 방법을 수정/보완해 나갑니다. 이 모든 과정을 상대방과 대화하여 합의해 나가야 하는데요. 제법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수년에서 수 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죠. 그래서 이런 팁이 구전으로, SNS짤로 돌아다닙니다. “여자친구가 던진 말을 그대로 따라 하세요!”

A: 나 오늘 OO팀장 때문에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어.. 
B: 팀장도 그렇게 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C: 팀장 때문에 회사에서 많이 힘들었구나.  

위 대화에서 B보다는 C의 답이 낫겠습니다만 팁을 따라 수행한 C의 밑천이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A가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따라 할 말이 없는 C는 난감해질 테니까요. 그럼 또다시 상황에 맞는 공감 스킬을 배워야 할까요?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만능의 공감 기술은 없습니다. 공감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그 사람만의 태도입니다.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가짐, 태도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태도는 가르치기 어려울뿐더러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앞선 글에 공감이라는 단어 대신에 브랜딩을 넣어보면 어떨까요. 브랜딩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습니다.   


가정용 커피머신은 ‘집에서도 원두커피를 마실 순 없을까?’라는 물음에 누군가 내린 답입니다. 답을 소비하는 것은 효율적이고 편리합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본인만 답을 내릴 수 있는 일, 가령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와 같은 문제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답에 이르는 과정에는 결과에서 얻는 ‘편리함'보다 훨씬 더 많은 효익이 있습니다. 기계의 작동 원리와 같은 기술적인 지식에서부터 커피 문화에 대한 이해 같은 것들이요. 커피를 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도 분명합니다. 커피머신이라는 답을 선택한 사람은 커피 밖에 마시지 못합니다만 과정을 경험한 사람은 카페를 열 수도 있고 가정용 맥주머신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집니다. 우리는 질문하고 일일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찾아가는 수고로움 대신 누군가 내린 답이나 공식을 얻는 것을 선호합니다. 빠르고,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되는 시대가 있었고 여전히 그래도 되는 순간도 존재합니다. 시장의 문제가 복잡해지고, 경쟁 제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에 따라 프로덕트의 생애 주기가 짧아지는 오늘날에는 과정 하나하나가 곧 결과입니다. 고객이 과정을 일일이 알게 되거나 개입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회사가 ‘오늘날 제품의 경쟁력은 무엇이어야 할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합니다. 기존 방법과는 다른 접근을 통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누군가 상품화하여 팔고 싶습니다. 원하는 고객(회사)이 많으니까요. 과정이 팔기 쉽게 상품화(답)됩니다. 브랜딩은 성공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적 해석입니다. 그래서 성공을 위해 브랜딩을 잘해야 한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브랜딩은 망치입니다. 수단에 불과한 브랜딩이 자칫 목적으로 둔갑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브랜딩은 기술이 아니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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