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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코 Sep 24. 2023

구매는 안하고 추천은 합니다

브랜드 로열티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활동을 구상하기 위해 워크숍을 진행할 때였습니다. 가장 먼저, 회의에 참가한 우리는 과연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며 이유는 무엇인지 답해 보기로 했습니다. 포스트잇에 브랜드를 하나씩 적어서 벽에 붙여 둡니다. 벽에 익히 알만한 브랜드와 (성별과 세대가 다르다보니) 듣도보도 못한 브랜드가 오릅니다. 나올만큼 나왔다 싶은 순간 팀원 한 분이 질문을 합니다. “구매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브랜드도 적어도 되나요?” 이게 무슨 말인가요?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문장인데 뭐가 이리 자연스러울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흥미로운 시사점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보드를 두 개로 나누고 한 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한 곳에는 ‘사용하진 않지만 지인에게 추천하는 브랜드'를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보자 했습니다. 30분 정도 각자 자유롭게 브랜드 이름과 이유를 적어 붙였습니다. 놀랍게도 두 개의 보드에 비슷한 양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습니다. ‘내가 써봤더니/가봤더니 좋더라'는 추천의 국룰입니다. 구매와 선호는 응당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면도날 구독 서비스 <와이즐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인은 창업스토리부터 제품을 만드는 과정, 마케팅, 브랜딩 활동에 이르기까지 꽤나 다양한 정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중 흥미로운 캠페인 하나를 소개해주기도 했습니다. 와이즐리는 자사 제품에 불만을 남겼던 고객들에게 신제품을 증정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신제품 패키지의 겉면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절삭력이 살짝 부족합니다’라고 적힌 문구 아래에, ‘소개합니다. OOO 님의 아쉬움을 깨끗이 밀어낼 와이즐리의 새로운 면도날’. 면도기를 추천한 지인은 와이즐리에 대한 기사나 광고 캠페인을 몇 차례 보게 됐고 진정성있는 브랜드라고 생각해서 제품까지 추천하기에 이르렀다 합니다. 지인은 여성입니다. 턱수염이 나지 않는 본인은 아쉽게도 구매할 일이 없지만 주변의 남자 지인들에게 종종 추천한다고 합니다. 써 본적 없는 브랜드를 열심히 추천하는 지인, <와이즐리>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미닝아웃, MZ

요즘 MZ세대를 타겟팅 하지 않는 브랜드가 있을까요? MZ세대의 연령대가 너무 넓게 규정되어 모두를 하나로 묶는 것은 위험이 따릅니다만 오늘날 주요 소비 고객층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특징 하나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미닝아웃'입니다. MZ세대는 기성 세대에 비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조금 더 적극적입니다. MZ세대도 사람마다 상황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을 대부분 좋아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미닝아웃은 ‘신념’을 의미하는 ‘미닝 Meaning’과 ‘벽장에서 나오다’란 뜻을 지닌 ‘커밍아웃 Coming out’이 결합한 일종의 신조어입니다. 자신이 간직한 정치, 사회적 신념과 가치관을 소비 행위를 통해 표현하고 이를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노출함으로써 인식 변화를 촉구하려는 소비 행태를 뜻합니다. MZ세대의 미닝아웃 성향을 잘 드러내는 사례로 ‘돈쭐문화'가 있습니다. 돈으로 혼쭐을 내준다는 뜻입니다. 최근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어 571원 밖에 없었던 한 아버지에게 공짜 피자를 선물한 피자가게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소비자들이 ‘돈쭐 내러 갑니다'라며 선행을 한 업주를 찾아가 팔아주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성장관리 앱 그로우에서 MZ세대 9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가치소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5명 중 4명이 ‘나는 ‘가치소비자'라고 답했습니다. 무엇을 파는가? 에서 왜 그것을 팔게 되었는가? 까지 검증하게 된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도 변화에 동참하고 있는데요. 동물실험반대 화장품, 친환경 용기 사용 샐러드, 버려진 페트병 재활용 옷 등 산업을 불문하고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경영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콘텐츠를 소비하다

평균적으로 우리는 하루 중 30%의 시간에 대화를 하며 대화의 15%는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꽤 높은 수치라 놀라긴 했지만 오늘 하루를 가만히 돌이켜보면 수긍이 갑니다. ‘브랜드’는 일을 할 때에도,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친구와 카페에 앉아서도 쇼핑을 하며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은 너무 익숙합니다. 우리가 브랜드에 대해 관심 갖고 대화 소재를 끊임없이 발견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기업이 발신하는 다양한 브랜드 콘텐츠가 자주 노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브랜드 활동은 단지 제품을 돋보이게 하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기업은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비롯하여 창업스토리, 기업문화, 일하는 방식, 복지, 채용, 투자유치 과정, 비전 등 거의 모든 기업 활동을 외부에 공개하며 고객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2021년 2월 유튜브와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한 토스 다큐멘터리 <FINTECH - BEHIND THE SIMPLICITY>는 수준 높은 영상과 기업의 세련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 124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국민은행의 기업 문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기대한 적이 있었나요? 유튜브가 아니라 영화관에서도 한 스타트업의 이야기가 상영됩니다. 규제 이슈로 세간을 뜨겁게 달구었던 타다의 이야기가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 되었습니다. 대화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우리의 일상 전반에 브랜드가 깊게 스며있습니다. 제품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 냄새나는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고객에게 들려줌으로써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기업활동 전반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접한 고객은 브랜드를 더욱 다양한 뷰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쌓이면 하나의 세계관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소비'를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로만 한정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와이즐리의 사례처럼 MZ세대는 자신이 구매하지 않더라도 공감 가는 브랜드를 좋아하고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 전파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인구의 약 10%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인생 최고의 행복을 느끼고,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슈퍼 공유자라고 합니다. 이들이 우리의 브랜드를 선호한다면 어떨까요? 브랜드 담당자도 모르는 사이에 방방곡곡 어딘가에서 자신의 브랜드 이야기가 흘러 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고객이 대신 홍보하는 LG’라는 콘텐츠가 한 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조직적으로 브랜드의 장점을 알리고 다니는 팬덤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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