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에 창업을 했다. 내가 몰랐던 건지, 세상이 바뀌고 있는 건지 알길 없지만, 세상은 지금껏 내가 알던 아주 기본적인 도덕적 잣대마저 무색케 한다. “다 그런 거야”라는 말로 많은 것들을, 검증은 하지 않은 채, 살기 위한 생각에 몰입하며 달려간다.
사업은 선택의 연속이다. 매일 부딪히는 문제들 앞에서 과감한 선택들을 해야 한다. 나는 선택에서 답을 고르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선택지에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답은 내가 만들어야만 한다.) 젊음은 무지하지만 그것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 있지 않나. 그 시간으로 되도록이면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경로로 지식을 흡수하여 무지함을 채워나간다. 그런데 만약에 나에게 주어진 이 선택지가 옳은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절대적인 옳음과 그름은 없다. 다만 법적 테두리 안에서, 규율 안에서, 그리고 나의 양심 안에서 선택하고, 이로 인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한다. 조금만 벗어나 안을 들여다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무리의 관행을 정당화하고, 업계의 룰을 상도라 정의한다면 그 안에서의 성장은 의미가 없다. 실패보다 성공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내가 가진 꿈이 클수록, 그 과정은 복잡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얽히게 되고 우여곡절의 경험을 겪게 된다. 결국 누군가로부터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면, 그건 수 억 명의 사람들이 우리 회사의 서비스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랬듯, 누군가는 나를 롤모델로 삼아 자신의 꿈을 키워나갈지도 모르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기사로 보도가 될 수도 있다. 영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때, 내가 생각하는 상도는 무엇인가? 어떤 관행을 따르며 이 자리에 올랐는가? 그래서 어떤 것을 옳은 것이라 판단하는가? 타협은 고객과 하는 것이지 양심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내 발 밑에서 오늘은 개미 한 마리가 죽을지 모르지만 내일은 사람 목숨 일수도 있다. 살려다 보니 그랬다고 할 건가. 아니면 내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시치미 뗄 건가. 오늘 난 문득, 실패보다 이기심으로 이뤄낼 성공이 더 두렵고 염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