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향유하는 것이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전시를 보고 산책도 할 겸 서촌에 들렀다. 나는 서촌의 한가로움이 좋다. 서촌 곳곳을 걷다가 맛 좋은 메밀국수를 뚝딱 해치우고 다시 걷다가 대림미술관으로 향했다. 린다 메카트니전을 볼 참이었다. 미술관에 다다라서,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고는 입이 딱 벌어졌다. 한참을 서 있다가 입구에 있는 안내하는 분께 물었다. "여기 지금 입장하려고 줄을 서 있는 건가요?"
미술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 대기한 줄이 40미터는 됨직 했다. 린다 메카트니라도 온 줄 착각이 들 만큼 북적였다. '세상에 린다 메카트니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나....' 줄 서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발길을 돌리다가, 다시 한참을 서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국내에서 린다 메카트니가 유명 작가는 아니다. 폴 메카트니의 아내라는 수식어가 없다면 더욱 그렇다. 어쩌면 그곳에 줄 서 있는 사람 중에는 린다 메카트니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촌 일대에 미술관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이 사람들은 왜 30분씩 기다려가며 그것을 보려고 하는가
대림미술관의 아이덴티티는 이제 대중에게 확실히 포지셔닝이 된 듯 보인다. 그곳에 줄을 선 사람들은 대부분 20~30대의 여성과 커플들이 주를 이룬다. 거기에 결혼 초기 부부까지.(아기를 데리고 가니 대기 없이 입장시켜준다.) 사람들은 <린다 메카트니> 전시를 보러 간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림미술관의 린다 메카트니> 전시를 보러 간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해서 민속박물관에 린다 메카트니 전시를 한다면 저 사람들이 줄을 설까. 민속박물관에는 기획전인 [Jean청바지] 전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관광버스로 온 요우커다.
많은 미술관들이 좋은 전시를 만들어내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전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대림미술관이 가지는 아이덴티티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곳을 찾는다. 두 번, 세 번 찾는다. 비슷한 예로, 여행을 가면 누구나 뮤지엄을 찾는다. 서울 시민 중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보지 않은 사람도 런던을 가면 대영박물관을 찾는다. 미라를 본다는 기대감에 찾는 것이 아니라 대영박물관을 다녀왔다는 경험을 획득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발길을 돌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향했다. 이미 다 본 전시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사람들을 관찰할 생각이었다. 가는 길에 마주친 현대화랑에서는 이중섭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나 현대화랑 다녀왔어'와 '나 대림 미술관 다녀왔어'는 매우 다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가족 관람객부터 커플까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현대 미술, 컨템퍼러리 아트는 어렵다고 하지만 이곳엔 사람들로 북적인다. 난해한 작품은 보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재미있는 설치물이나 읽히는 텍스트, 비교적 보기 쉬운 페인팅 앞에서 사람들은 조금 더 머물며 관람을 이어간다. CGV 무비콜라주만 한 크기의 쾌적한 극장 안에는 바우하우스 영화가 상영되는데 10명 남짓 앉아 관람을 한다. 하지만 이내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강형구 작가의 작품이 어땠는지 보다, 이번 주말에 미술관을 다녀왔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월요일을 맞이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관람객에게 작품 감상은 미술관에서 얻게 되는 수많은 경험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미술관의 경험은 미술관 입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을 가기로 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어떤 전시를 하는가에 더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는 모든 것이 미술관 선택의 기준이 된다.
'관람객에게 어떤 경험을 주고 있는지 알고 있는, 혹은 알고자 하는 미술관은 몇 곳이나 될까?'
관람객에게 미술관의 경험은 전시관 입구에서 부터가 아닌 언제 어디서나 끊김없이, 혹은 쉽게 접근 가능하도록 제공되어야 한다. 그것은 좋은 전시를 만드는 노력만큼이나 중요하다. 문화는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향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