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미술관

by 르코
지난 5년간 미술관과 관련한 비즈니스를 하며 제3자의 눈으로 미술관의 변화를 지켜봤다. 그것은 매우 급격했지만 또한 더뎠다.

이제는 굳이 아이폰을 언급하며 세상이 많이 변했노라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무섭게 변화하는 세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자동차가 스스로 간다 하지 않나... '무섭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만큼 우리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미술관은 그런 변화에 동참할 필요가 없었다. "수천만 원짜리 IT기술을 도입하느니 그 돈으로 좋은 작품을 하나 더 사는 게 낫다"라는 어느 큐레이터의 말은 기술을 바라보는 미술관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 준다. 그렇다. 미술관의 메인은 작품이다. 고흐의 작품을 들여오기만 해도 전시는 흥행할 수 있었다. 그랬었다.

지금 나는 1분이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입구에 들어설 수 있다. 그리고 편안하게 앉아서 전시관 곳곳을 탐험할 수 있다. 구글 아트 프로젝트에 접속만 하면 된다. 이 곳을 둘러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무 불편하잖아. 작품은 가서 봐야지"

우리가 PDA의 불편함을 토로하며 쓸모없다 느끼는 와중에, 아이폰은 탄생했고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편함을 넘어 불안함마저 느낀다. 변화는 완벽한 무언가를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용자가 이런 과정을 모두 경험하며 살 필요는 없다. 변화를 감지해야 하는 것은 다른 쪽이다.

구글 아트 프로젝트는 나 역시 불편하여 잘 쓰지 않는다. 이것이 편한지 불편한지는 사용자가 판단하는 것이다. 다만 왜 이런 서비스가 나왔고 이것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갈지 누군가는 고민해야만 한다. 퐁피두 센터가 내년, 서울에 분관을 오픈한다는 기사를 봤다. 그리고 킥스타터엔 Framed와 같은 제품이 올라와 있다. 이 두가지 사실을 토대로 그럴싸하게 유추해본다면.

이제 곧 퐁피두 센터가 내 집 거실에 있게 될 것이다.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면,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 수집하고 잘 보관하여 후세에 물려주는 일,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 미술관이 변함없이 본질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방법(How)을 고민해야 한다.

앞서 변화에 대한 몇몇 사례를 링크했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변화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웹사이트를 잠시만 둘러봐도 혀를 내두를 만큼 혁신적이고 재밌는 시도가 수두룩 하다.


내일의 미술관은 어떤 모습일까?


작품의 사진을 찍으면 유사한 그림이 자동으로 검색되어 보여진다면? 전시된 유물을 스캐닝해 3D 프린터로 출력해 가져갈 수 있다면? 창밖에 햇살이 내리쬐면 쇠라의 그림이, 비가 오면 마그리트의 그림이 액자에 나타난다면? 관람객의 취향을 분석해 최적의 관람 동선을 찾아 준다면? 큐레이터가 전시를 기획할 때 VR을 쓰고 가상의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면? 방문객 중 미술을 좋아하고 영향력 있는 관람객을 골라내 집중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면? 작가가 작품을 업로드하고 사람들이 돈을 내고 다운로드한다면? 전 세계 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면? 미술관에서 아트 상품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한다면? 관람객(사용자)의 입장에선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

"박물관 1000 개관 시대"라는 구호 아래, 짧은 시간 전국에 수백 개의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이렇게 지어진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 미술관>은 아무도 찾지 않는 가엾은 뮤지엄(Poor Museum)이 되어 가고 있다. 미술관의 메인은 작품이다. 거기에 더해 작가고 관람객이고 큐레이터이다. 즉 사람이라는 말이다. 내일의 미술관은 <미술관의 사람들>을 더욱 치열하게 연구하여 그들이 필요한 것을 만족시켜줘야 한다. 미술은 예술활동을 통해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과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 연결고리가 원활하기 위해서는 멋진 건축물이 아니라 꼭 맞는 도구가 필요할 뿐이다.

왜냐하면 미술관의 사람들은 2015년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