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색을 사랑한 화가, 전혁림

'그림으로 나눈 대화'를 읽고

by 르코

그림은 성경 구절 같다.(영적인 의미는 아니다.) 설교에서, 하나의 구절을 듣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해석으로 감동을 받는다. 감사함을 느낀 이는 합격한 수험생일 것이고, 위로와 용기를 얻은 이는 낙방한 수험생 일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미술. 나는 그림을 마주하면 질문을 찾고자 노력한다. 작가가 던진 질문이 뭔지 정확히 알아내기보다는 그저 나의 상황과 감정을 이입하여 질문하고 답을 찾아내 본다.

우리가 전시관에서 마주한 그림은 작가의 일생에서 한 단면을 잘라 만든 창과 같이 느껴진다. 창 안쪽으로 펼쳐진 이야기를 보는 일은 참 재미있다. 그 이야기는 매우 강한 시대성을 반영하고 있어 작품 하나에도 역사와 철학이 짙게 배어있거니와 동시대의 특정한 사회 문제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 영화 봤어?"

"응. 봤어"

"어땠어? 재밌어?"

"아니, 나는 별로였어. 좀 지루하던데?"


"그 미술관 가봤어?"

"응. 가봤어"


평가보다는 경험의 획득 유무에 머무르는 미술. 가벼운 평가를 내리기조차 어려운-마치 금기시되는 듯도 느껴지는-미술은 아직도 우리와 조금은 멀어 보인다.

책을 읽기 전, 4월 초, 중순 두 번에 걸쳐 통영에 있는 전혁림 미술관을 방문했다. 그러고 보니 틈틈이 읽은 책까지 하니 4월 한 달간-물론 매일 생각한 건 아니다-을 전혁림이라는 화가와 보내고 있다. 굉장히 인상 깊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미술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경험해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서두에 거창하게 쓴 나만의 감상법이 무색하게 여전히 모지란 나는, 창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거나 외부적 동기가 있지 않다면 창문을 쉬이 열어보지 않게 된다. 미술감상에는 여유가 필수라고 변명해본다. 그저 산책할 요량으로 들어간다면 공원에 있는 잘 가꾸어진 화단과 나무를 보는 것. 딱 그 정도에 머무르게 되곤 한다. 와. 좋네. 이 정도.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라지, 책을 통해 창 뒤편을 보고 나니 다시 그림을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러다가 문득 의문이 든다. 꼭 작품을 미술관에서 봐야 할까? 전시Exhibition라는 포맷에 담아 미술이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특히 요즘은 더더욱. "우리의 경쟁상대는 넷플릭스와 캔디 크러쉬다"라며 선언한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CDO(Cheif Digital Officer), Sree Sreenivasan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 온다. 미술관에 가면, 미술에 무지한 내가 의지할 것이라곤 브로셔뿐인데 그 지푸라기 잡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 어렵게 써놓은 설명글은 나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곤 한다.


<그림으로 나눈 대화>에 쓰인 작품 설명은 그래서 참으로 인상적이다.

운하교_2005년, 수채화
아버지는 평소 좋아하신 통영의 풍경들을 작품에 많이 담아내셨습니다. 수채화, 유채화부터 데생과 소품까지. 운하교(충무교)를 그리신 작품이 많이 있는데, 사과 바다, 집과 배뿐이던 통영에 운하교를 지으며 생긴 새로운 풍경을 관찰하고 그리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아침_1950년, 캔버스, 유채
이른 아침 통영 앞바다에 나가면 물고기를 잡으러 나온 작은 돛배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바다 위에 얽히고설킨 돛배들, 그리고 돛과 돛 사이로 아침해가 들어와 불게 물든 바다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통영 아침 바다의 활기와 생명력은 삶의 희망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에는 아버지의 작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들이 작품설명을 써놓았다. 객관적,비판적 시선은 분명 아니지만 나에겐 전혁림이라는 작가, 즉 창문 너머의 세상을 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미학적 언어로 포장해 두면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미술관은 산책로가 된다. 이쁘네, 별로네 할 수 있어야 왜 이쁜지, 왜 별로인지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푸른색이 좋십니꺼?"

"글쎄, 푸른색으로 칠하모 마음이 편해지네. 니는 보기에 안 좋나?"

"아부지 좋으시면 저도 다 좋십니더."


푸른색을 사랑한 화가, 전혁림

그가 사용한 푸른색에 대해 많은 해석이 있겠지만, 작가는 푸른색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마음이 편해져서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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