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봄

그래도 만나지 못하는 곳

by 르코

미술식당 첫 여행 프로그램. 주말에 비가 온다는 소식은 한 달간 여행을 준비한 내겐 가혹한 일이었다. 이른 아침 눈을 뜨며 대반전이 일어나길 기대했지만 우리네 인생에는 쪽대본 작가가 없어서 비는 예정대로 오게 됐다. 그리고 여행에서 그 비는 신의 한 수(水)가 되었다.


#만남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여행을 떠나는 일은 어떤 느낌일까? 누군가에겐 쉽지 않은 도전. 하지만 기꺼이 즐기겠노라 와준 이들에겐 불확실성에의 기쁨, 즉 그것마저 여행이 아니었을까.

차에 올라탄 우리에겐 여행지로 떠나는 설렘이 충만했고 손에는 와인이 들려있었다. 웰컴주 한잔에 어색함은 금세 사그라들었고 소소한 대화가 4시간 동안 이어지며 친구가 되었다.


#통영의 멋

보슬비가 내려서인지, 북적여야 할 통영의 4월은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덕분에 우리는 마치 비수기 평일에 여행 온 베짱이처럼 통영 이곳저곳을 여유롭게 누비고 다녔다. 전혁림 미술관, 박경리 기념관을 찾아 통영을 더 깊숙이 경험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예술가(문학가)의 표현에는 그 자체로 통영이 느껴진다.

"현실에서의 모든 대상은 하나하나가 모두 미지의 세계입니다. 작가는 그 숲을 헤치고 들어가서, 끝없이 헤치고 들어가 그래도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대상을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망이고 꿈이며 또 끝없는 미래입니다. -박경리"

산 중턱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바다가 어찌나 운치 있던지 우리는 일정을 변경하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마음속에 각자 하나씩의 감동과 질문을 가졌고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음미할 필요가 있었다. 빗소리에 와인을 마시며 해안도로를 달려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만나지 못하는 것. 그것은 두려움과 좌절이 아니라 희망으로 둘 일이다. 문제를 만나 해결하고 또 만나고 해결하다 보면 또 문제를 만날 것인데 그럼 언젠가는 꿈에 도달하는 것에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그 순간에 즐거움을 둘 수 있겠지'


#통영의 맛

"이건 우리 집사람이 그냥 드셔 보시라고 내주네요. 허허"

7,000원에 나온 한상 가득한 보리밥 차림에 눈이 휘둥그레질 찰나, 인심 좋은 주인장이 내 온건 해삼 수육이었다. 첫 끼부터 통영의 끝내주는 음식과 인심을 맛봤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숙소에서 식사시간을 가졌다. '막 썰어 회'라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그것과 해물 칼국수의 조합은 봄날의 집의 낭만과 어우러져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식으로 나온, 통영의 봄에만 맛볼 수 있다는 도다리 쑥국까지. 로컬의 추천은 진리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통영의 맛은 평생 아름답게 남겠다.


#대화

"연민도 사랑인가요?"

여행의 중간중간 각자 세 가지의 질문을 적기로 했다. 그림에서, 글에서, 그리고 통영의 어떤 모습에서 우리는 평소 않던 생각을 할 것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하하호호 웃기만 하는 것 말고. 깊이 있는 대화. 우리는 Wine Talk 시간에 각자의 질문을 꺼내 대화를 했다. 낯섬도 잠시, 15가지의 질문 중 우리는 고작 4가지의 질문만 꺼낼 수 있었다. 저녁 식사부터 새벽이 되도록 우리는 10년 지기 친구마냥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연민과 사랑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오래도록 이야기를 했을까.


"덕분에 꿈같기도 하고, 긴 여행의 일부 같았던 이틀이었어요. 앞뒤 생각 안 하고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정신줄 놓고 즐긴 기억은 아마 평생 간직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두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받은 메시지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낯선 사람들과 여행한 통영은 세상 어디보다 먼 여행지, 아니 그보다는 그래도 만나지 못하는 곳인 듯 느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이고 꿈이었다.

*미술식당, 통영의 봄편에 함께 해주신 분들과 봄날의 집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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