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합목적성
평소 새로운 미술관을 찾게 되면 줌인 하듯 감상을 한다. 먼저 미술관을 둘러싼 주변의 모든 공간을 보고 그다음 작품을 감싸고 있는 건축물을 유심히 본 다음 안으로 들어가 작품이 놓인 내부 공간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품을 감상한다.
주변을 살피긴 하지만 어쨌든 미술관 방문의 Goal은 작품 감상이다. 그래서 문이 닫힌 미술관은 내게 최종 Goal을 달성할 수 없는 목적 상실의 공간이다. 칸트는 취미(미적 취향)의 판단의 원리를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라 정의했다. 쉽고 명료한 말하기, 쓰기를 선호하는 나는 이런 부류의 정의들은 직접 경험하여 깨닫기 전까지는 머리로만 이해하는데 만족한다.
평일 오전 미술관을 찾았다. 기대감에 차 먼길을 달려온 나를 맞이한 것은 ‘휴관’이라고 적힌 팻말이었다. 오늘은 수요일이므로 이것은 매우. 전혀. 뜻밖의 일이다.'왜 때문이죠'라고 외쳐보지만 들어주는 이는 없다. ‘월요일 휴관’이라는 미술관과 관람객의 중대한 룰을 깨버렸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술관은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몇몇 관광객들은 휴관 따위 개의치 않는 듯 미술관 입간판 앞에서 사진 한 장 남긴 채 쿨하게 돌아섰다.
결정의 순간.
가보자.
조용하다. 이 넓은 미술관에, 화단을 매만지는 어르신 두, 세분을 제외하곤 오로지 나뿐이다. 마음이 누그러지자 오감이 살아난다. 참새 소리조차 듣기 힘든 도시에서의 생활, 이곳은 어림잡아도 다섯 가지의 새소리가 귀에 꽂힌다. 입구를 따라 조금 걸어가니 본관 주변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나타난다. 나무 사이로 조각 작품들이 자리 잡고 있고 작은 분수에서는 연신 물을 쏘아댄다.
향유享有이자 향유香有. 미술관은 예술이 짙게 밴 어떤 장소이고 감상은 그것을 감싸는 모든 향기를 맡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닫힌 미술관은 작품을 본다는 목적은 상실했다 하여도 예술을 향유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더 느리게, 더 오래 작품과 건축물과 자연이 뒤섞인 모습을 감상했다. 작품에는 의미 없는 선이 없듯, 미술관에도 의미 없는 놓임은 없다. 칸트 님에게 물어볼 수는 없지만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따라가 본다.
조용하지 않다. 새들은 끊임없이 지저귀고, 물은 쉬지 않고 떨어지며, 바람은 나무 흔들기에 여념이 없다. 닫힌 미술관은 짙게 밴 예술의 향기를 나에게 끊임없이 전해주고 있었다.
사람의 소리는 없이 온전히 자연과 예술만이 치열하게 왕래하는 이곳에 있으니 돌아서던 발길을 멈추고 감상을 남기고 싶었다. 무지개 분수옆 정자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오월의 제주현대미술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