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꺼내보는 시간
조조 영화처럼 조조 그림을 볼 수는 없지만 할인보다 더한 매력이 조조 그림에는 있다. 영화는 100명이 보든 1명이 보든 불 꺼진 방에 앉아있긴 매 한 가지라 인원의 영향을 덜 받지만 미술관에서는 100명과 본 그림과 혼자 본 그림은 같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사뭇, 아니 매우 다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예술의 전당을 가지 않는다.
오전 9시에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찾았다. 개관을 30분 앞두고 오매불망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미술관에서는 아무래도 조용한 분위기에서 찬찬히 감상하고 싶기 때문에 가능하면 일찍 찾는 편이다. 단단한 철문이 열리고 조금 더 순수한 마음으로 미술관으로 입장했다.
사진작가의 미술관 답게 카메라를 목에 건 돌하르방이 앉아있다. 손을 짚고 기대앉은 모양새가 앞으로 100년은 거뜬하게 이곳에 있겠다 말하는 것 같았다. 잘 가꾸어진 정원의 나무와 갖가지 꽃은 코스 요리의 애피타이저 마냥 나의 감각을 돋운다. 천천히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온전히 미술관의 전희를 즐긴다.
그럭저럭 단장을 끝낸 두모악 담벼락에 기대 밤새워 별을 쳐다보는 날이 많아졌다. "움직일 수 없게 되니까, 욕심 부릴 수 없게 되니까 비로소 평화를 느낀다. 때가 되면 떠날 것이고, 나머지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철들면 죽는 게 인생. 여한 없다. 원 없이 사진 찍었고, 남김없이 치열하게 살았다." 마지막 해의 봄. 유채꽃이 질 무렵엔 혀의 근육도 굳어져 더듬더듬 말을 잇던 김영갑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을 채근하듯 두모악에 바람이 불었다. -정희성 시인
제주가 좋아 정착하고 오름이 좋아 평생 중산간의 오름만을 사진으로 담아온 작가는 루게릭병으로 2005년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기다리던 몇 해, 두모악 담벼락에 기대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작품이 걸린 미술관에 기댄 채 더 이상 손으로 찍지 못하는 사진을 눈으로 찍고 싶었을지도. 뼈마디가 앙상했을 그의 등 뒤로 걸린 작품이 더욱 아련하게 다가온다.
폐교한 삼달 분교를 그대로 보전해 만든 김영갑 갤리러 두모악. 분교에서 뛰어놀았을 아이들의 순수함을 닮아 공간도 작품도, 그리고 그의 삶도 날것 그대로였다.
조조 그림. 조용히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보고 내 삶을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