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을 읽고
작년 초, 덕수궁 미술관에서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돌담길을 걷고 궁궐 안을 산책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경험을 얻을 수 있기에 전시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입장 후, 넓지 않은 전시관 1 개층의 작품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약 2시간이었다. 규모 대비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한 전시였다.
미술관에 그림이 한점만 있었으면 좋겠다.
얼토당토않아 보이는 이 말이 실현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미술관을 찾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란디의 전시에서 내가 본 작품은 수십 점 중 서너 점에 지나지 않는다. 모란디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상 관람에 1시간을 할애한 뒤,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자 고작 몇 점의 작품을 진지하게 들여다봤을 뿐이다. 전시 말미에 놓인 어설픈 작품-정물을 재연해 놓은-은 오히려 거슬리기까지 했다.
미술관은 관람객이 품고 올 수도 있는 필요의 범위는 안중에도 없다. -책 내용 중
많은 관람객에게 있어 미술관이-큐레이터의 의도가-주는 것을 모두 알아차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명하고 솔직한 설명문' 대신 그들은 난해한 언어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곤 한다. (어떤 경우에는 관람객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것도 안다.)
'작은 캔버스에는 단순화된 형태와 모노톤의 세련된 색조가 담겨있다. 이 안에는 유럽의 전통과 근대성, 지역성과 국제성, 구상과 추상, 시간과 공간, 지각과 관념의 복잡한 관계가 그물망처럼 얽혀있다.'는 설명글에는 아랑곳하지 않던 나의 영혼이 움직인 것은 아래의 대사 때문이었다.
"나는 아저씨의 그림을 밀라노 화상이 30만 리라에 사서 다음날 300만 리라에 파는 걸 알고 있어요. 아저씨는 이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러자 조르조 모란디가 대답했다.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를 수도 있겠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 할 일이 있단다. 그 사람은 상인이고 나는 화가란다.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지."
-조르조 모란디의 다큐 영상 중_한 아이와 모란디의 대화
예술은 자기 인식을 누적시켜 타인에게 그 결실을 전달하는 훌륭한 수단이다. -책 내용 중
결실의 최종면은 중요하지 않다. 작품에는 끊임없는 자기 인식의 과정이 축적되어 있다. 자기 인식은 대게 인간의 보편적, 본질적 특질에 대한 침잠이다. 관람객은 작품이 가진 수많은 인식의 서랍 중 단 하나를 열어볼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작품과 커뮤니케이션 할 것이다.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 -오스카 와일드
어떤 것에 대해, 익숙함을 넘어 습관이 되는 순간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게 된다. 예술은 그것에 시점을 부여함으로써 우리의 눈길을 돌린다. 우리가 매일 쓰는 변기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중요함의 범주에 있는 사소함에 마음을 다시 쓸 필요는 있다. 모란디의 작품에서 꺼낸 서랍에는 '신뢰'라는 클리셰가 들어 있었고 사업 5년 차에 이르러 한껏 우쭐해진 내가 보지 않았던 안개였다. 작품은 그 어떤 성공한 사업가의 말보다 단호하고 명료하게 다가 왔다.
알랭 드 보통은 미술관이 보다 더 관람객의 입장에서 예술의 역할과 전시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바라건데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지금보다 크기가 더 작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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