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garden] 전의 '문답'이라는 주제의 공간
들어설 때 탱화의 크기에 압도되어 탄성이 나온다.
"세상에 이렇게 큰 탱화가 있다니!"
통도사에 소장된 작품인데 일반에게 잘 공개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작품은 승려 14명이 그린 것으로 높이가 어림잡아 10미터는 됨직했다. 그리고 반대편의 어두운 곳에 스크린이 있다. 잠시 후 탱화의 불이 꺼지고 영상이 켜진다.
"우어!!"
부끄럽지만 계속 탄성이 나온다. 빌 비올라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비디오 아트 작업이다. 탱화보다 약간 작은 화면, 하지만 충분히 압도적인 스크린에서 불길이 치솟고 한 여인이 서있다. 한참 뒤 이 여인이 물속으로 뛰어들자 화면이 바뀐다. 한 남성이 어둠 속에 누워있고 물이 떨어지는 듯 소리가 들린다. 모든 화면은 리와인드되어 물도 남성도 하늘로 치솟으며 영상이 끝이 난다.
약 20분(?) 상영한 듯한데, 세로로 긴 스크린에 끊임없이 상승하는 불과 물의 이미지, 그리고 실감 나는 사운드로 인해 보는 내내 관객을 압도한다. 물과 불의 반복적인 움직임과 한참을 멈춰있는 주인공을 쳐다보고 있으면 작품이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물과 불, 빛과 어둠, 남성과 여성, 서있는 자와 누워있는 자, 상승과 하강.
대립적인 요소들의 병치가 삶과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게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데 문득 등 뒤에 자리한 탱화가 생각났다.
"이거구나!"
공간에서 두개의 전혀 다른 작품-국립현대미술관에 탱화가 있으니 더욱 놀랍다-을 마주 보게 설치한 것이 무척이나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서양의 오페라[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동양의 [불교]는 대립적이지만 분명 의미적인 연결고리가 있지 싶었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태도에 대해 각각의 작품은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을지도.
뒤에 알게 되었지만, 이 작품의 모티브인 바그너의 오페라가 밤의 죽음을 찬미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불교의 윤회사상과 묘하게 어우러져 들어간다. 작가의 의도야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관객이 이 공간에서 굉장히 많은 질문을 던졌고, 생각했고, 그리고 감동했다는 사실이다.
상영이 끝나고 나도 모르게 조용한 박수를 쳤더랬다. 각 작품도 훌륭했지만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 영상과 페인팅의 전혀 다른 두 작품을 한 공간에 마주 걸어 놓았다는 것과 두 작품과 그 사이의 관객이 정. 말.로. 문답하게 된다는 것이 소름 끼치게 좋았다.
일하다 잠시 짬을 내어 만난 작품 치고는 너무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