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영화가 끝나자 함께 관람한 친구가 말했다.
"존 말루프라는 저 사람 정말 용기 있는 것 같지 않아?"
"글쎄... 저 친구가 용기를 내서 저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데...내 생각에 존 말루프를 움직인건 '용기'가 아니라 단지 '호기심' 아닐까?"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프랑스 태생의 거리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마이어는 2009년 사망할 때까지 외부에 자신의 사진을 공개하지 않은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영화는 2007년 부동산 중개인이자 아티스트인 존 말루프가 옥션 경매에서 380달러를 주고 인화되지 않은 마이어의 필름통이 담긴 박스를 우연히 구입한 경위에서부터, 이를 현상, 인화하여 보급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영화의 감독이기도 한 존 말루프의 노력에 의해 음지에 묻힐 뻔했던 주옥편들이 뉴욕, 시카고, 유럽을 통해 전파되었다. 마이어의 사진을 외부에 알리는 과정과 함께 존 말루프는 사물과 인간의 심부를 꿰뚫는 심미안의 비밀을 캐기 위해 그녀의 생애를 더듬는다. 마이어는 편집증적으로 신문을 모았던 ‘팩트’의 수집가였고, 평생을 유모로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을 돌보며 살았으며, 또 그들을 소재로 사진을 찍었다. 마이어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탐문과 사진들, 유모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찍은 홈 무비 등이 한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을 증언한다.
(2014년 제15회 전주 국제영화제_장병원)
영화를 보는 내내, 비비안 마이어라는 아티스트의 일생과 작품도 훌륭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녀를 세상에 선보인(?) 존 말루프의 행동과 의사결정의 과정들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고 또한 호기심(재미)을 느끼는 일에는 의사결정을 위한 고민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자연스럽게 뛰어들었다. "제 임무는 비비안 마이어를 역사책에 넣는 것입니다."라며 말하는 그의 눈빛은 대단한 결심이 선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일을 앞두고 설렘이 가득한 사람의 것에 더 가까웠다.
용기가 필요한 삶
좋은 대학을 가는 것, 대기업을 다니는 것, 서른 즈음 결혼하는 것, 그리고 아이를 가지는 것...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결정의 순간에는 항상 '남들처럼'이 접두어처럼 붙어 다녀서 그것이 배제되는 결정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대학에 가지 않을 용기, 창업할 용기, 독신으로 살 용기, 입양할 용기... 아웃사이더를 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결과에 따라 허무맹랑하거나 용기 있거나.(모마와 테이트 모던에 편지를 보내던 때의 존 말루프를 보았다면 허무맹랑하다 느꼈을 것이다. 지금이야 너무 잘됐으니까.)
호기심이 필요한 삶
취업을 한다(A)와 창업을 한다(B)는 그저 두 가지 선택지에 불과하다. 내 꿈을 실현하는데 취업이 충분한 도구가 된다면 A를 선택하면 되고, 그 꿈을 실현시켜줄 회사가 없다면 B를 선택하면 된다. 남들이 A를 선택하는 일-이 경우 꿈의 실현으로써 선택이 아니라 안정적인 삶을 위한 선택-이 내가 B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순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어버린다. 결정의 순간 고민이 길어지는 건 대게 남의 시선과 스스로에 대한 불신 때문인데 고민의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할 수 있을까 없을까'가 아니라 '한다, 안한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면-답이 없는 일일뿐더러-용기가 필요하지만 '한다, 안한다'를 결정하는 일에는 그저 호기심이면 충분하다. 재밌으면 해보면 된다. 정하고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세상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말은 마시라. 불행한 삶은 가난한 삶이 아니라 만족하지 못함에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삶이다.
비비안 마이어는 죽고 나서야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과연 불행한 일일까? 50년간 매일 8장을 찍어야 하는 분량의 사진을 남겼을 정도로 그녀가 그토록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건,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을까?
영원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차에 탔을 때처럼 남의 자릴 만들어줘야 해요. 좌석 끝으로 가줘야 다른 사람이 와서 앉죠. 이제 여기까지 하고 빨리 다음 작품을 하러 가야겠어요.
-비비안 마이어 녹취록 중
그녀는 사진 찍는 그 자체를 사랑했고,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 그녀는 자리를 비워주었고, 그것을 채운건 존 말루프의 호기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