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도요의 <내일의 건축>을 읽고
디자인 전공자라면 누구나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 있다. 디자인의 시작과 끝이 '어도비와 친구들'이던 나의 학창 시절, 간지 나고도 폼 나는 무언가를 내 손으로 창작해낸다는 사실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디자이너와 예술의 경계에서 뭣이 중헌지도 모른 채 오락가락 줄타기를 하곤 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ever follows Function)
시카고의 스카이 라인을 완성시키며 근대건축의 첫 장을 열어젖힌 시카고 건축 학파의 루이스 헨리 설리번(Louis Henry Sullivan, 1856~1924)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그의 이 한마디는 내게 디자인과 예술 사이에 스트록 10px 정도의 명징한 선을 그어주며 나를 디자인의 세계로 인도했다.
이토 도요, 안도 타타오와 함께 일본의 건축을 대표하는 양대산맥, 2013년 프리츠커상, 베네치아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왕립영국건축가 협회 로열골든메달... 알겠고. 이 책을 다 읽은 후, 이토 도요의 건축에 대해 굳이 내가 찬양 1ts(티스푼) 더 얹기보다는... 젊은 건축가(디자이너)를 대하는 이토 도요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 책의 전반에 흐르는 이토 도요의 메시지는 "젊은 건축가들은 겉모습의 아름다움만을 좇는 미적 실현으로서의 건축을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환경을 고려하여 보다 현장중심의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 때문에 디자인의 실용성(기능)과 멋(형태)이라는 두 가지의 개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듯,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겪는 자아성찰 프로세스이다. 대개 전공 초기엔 멋 부리기에 심취했다가 어느 순간 "그래 디자인이란 이런 거지"라며 본인의 디자인관을 조금씩 녹여내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의 반복과 심화를 거쳐 졸업을 하게 되고, 이후 사회에 발을 딛는 순간, 이 모든 과정이 무의 상태로 회기 하면서 형태고 기능이고 나발이고 '돈인가 재미인가"의 심각한 고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이다.
"내 나 이땐 안 그랬는데, 요즘은 편하게 공부하잖아." 2015년을 살고 있는 스무 살이다. 과거에 사람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는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요즘 응답하라 1988을 보면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차라리 그때가 좋았다"라고. 공부 열심히 하면 취업되는 시절이니까. 1988년에 추운 날 나무 난로 때어 가면서 공부한 거랑 지금 냉난방기 틀어가며 공부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꼰대 안되기 수업 중 발췌)
글을 읽는 내내 놀라움의 연속이었는데 그것은 작품 때문이 아니라 그의 모순적이고 꼰대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나이나 직책을 이용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행위, 꼰대 짓." 이토 도요에게 꼰대츠커상을 수여해봄직 하다. 수여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꼰대적 근거 1>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열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하면서 대화할 때도 가능하면 건축론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세대를 향한 충고, 꼰대 프레임에 촉촉하게 젖어있다. 왜 굳이 본인의 건축세계와 그 결과물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책에서 젊은이들에게 괜한 충고를 넣어서 꼰대 인증을 하는지... 매우 안타깝다. 범인에게는 성공한 사람의 삶 자체가 가장 강력한 충고이고 영감의 원천이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이라는 표현은 넣어두시라. 누구에게도 이롭지 아니하다.
<꼰대적 근거 2>
졸업하면 여기에 들어오고 싶습니다. 받아주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자리에서 "그렇게 하게."라고 흔쾌히 대답해줬다.
성공한 사람들이 쓰는 전형적인 방법의 '편집된 성공담'을 매우 쿨하고 담담하게 섞어 넣었다. 인턴이 건축사 사무소에 취직하는 과정이 단 한 번의 질의로 성사되다니. 주커버그는 단지 다른 학교 여학생의 얼굴이 궁금해서 페이스북을 만들었고 유저가 수억이 되었다지... 세상은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꼰대적 근거 3>
클라이언트에게 바라는 것.
제목을 보는 순간 코웃음을 쳤다. 에이전시 대표들의 전형적인 찡찡거림을 여기서도 보게 되어 반갑기까지 했다. 젊은 이들에게 사회적 환경을 고려한 주체성의 실현으로서의 건축을 하라는 그의 꼰꼰한 충고는 이 순간 잠시 넣어두시고 클라이언트(디자인에서 클라이언트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환경이다.)에게 변화할 것을 촉구-라 쓰고 찡찡댄다라고 읽는-한다. 근데 그 촉구의 방법에 있어서도 본인의 자랑질을 겸손케 하고자 서양(파리)의 선진적 업무 프로세스와 태도를 녹여내는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꼰대적 근거 4>
사회에 등을 돌리고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결과다.(본인의 젊은 시절 초기 작품을 설명하며)
젊은 건축가들은 사회적 행위에서 더욱 동떨어져 예술 작품에 가까운 건축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평가받으려 한다.
내로남불 사상이 책 곳곳에 만연해 있다.
<꼰대적 근거 5>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일본의 많은 건축가들이 젊은 시절에 개인주택으로 데뷔한다는 점이다. (젊은 건축가들의 다양한 문제점을 꼬집으며)
나의 데뷔작은 1971년에 완성한 '알루미늄 주택'이다.
꼰대의 방점을 찍으셨다. 편집자도 글쓴이도 몰랐단 말인가. 아니면 알루미늄 주택은 개인 주택이 아니라 모두의 집이란 말인가.
이토 도요는 1941년 일제 강점기에 무려 서울에서 출생했다. 그 시절 서울에서 출생한 연유가 궁금해 찾아보니 딱 한 줄 근거가 될만한 자료를 찾았다.
His father was a business man with a special interest in the early ceramic ware of the Yi Dynasty of Korea and Japanese style paintings.
아버지가 이조 백자와 일본 화풍에 관심이 많으신 사업가였다고 한다. 미소된장 관련한 사업을 하셨는데 서울에서도 비즈니스를 한 모양이다. 출생 후, 바로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도쿄대 건축공학과에 진학하는 등(전공 선택의 이유에서 "그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건축을 하겠다는 정도의 마음"이라는 표현을 쓰며 본인의 천재성을 과시하기도 한다.) 일본 건축계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1965년에 처음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1971년 이토 건축설계사무소를 설립해 지금에 이르렀다.
한국 전쟁 이후, 일본은 약 20년간 급속한 경제 부흥기를 맞고 1970년대 초부터 약 20년간 경제는 안정/성숙기를 보내다가 1991년부터 잃어버린 10년 혹은 20년이라는 장기불황이 시작되었다.
요즘 젊은이와 요즘 젊은이
형태와 기능 사이를 오가며 디자이너로서의 탐험정신을 발휘한 것, 그 결과 자신만의 건축세계를 구축했고 사회적 인정까지 받았다는 것은 매우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성취'라는 마약을 맞으며 성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학교를 벗어나서도 (형태와 기능으로 대변되는) 디자이너로서의 철학적 고찰과 도전적 탐험 정신이 지속되길 바라는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 자연스러운 성취와 도전의 과정들이 오늘날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누구도 "이게 문제야"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혀있다. 성공한 기성세대가 젊은이의 마인드를 문제 삼으며, 정작 적절한 대안 제시는 없는 공허한 문제 제기에 그치는 것은 그야말로 꼰대 프레임의 정수이다.
오늘날,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를 둔 어느 건축학도가 디자인의 형태와 기능에 대해 숭고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학자금 대출 문제로 힘겨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공허한 충고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기성세대가 겪었을 '요즘 젊은이' 시절과 우리가 겪는 '요즘 젊은이' 시절은 전혀 같지가 않다. 누구에게도 똑같은 상황이란 없다. 서로 다른 실험 조건에서는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
이토 도요의 건축 세계는 대단하다. 특히나 '모두의 집'프로젝트에 이르러서는 과연 건축가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근데 그건 그거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