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의 사유

오종우의 <예술 수업>을 읽고

by 르코

#1.

"오늘 저녁은 저기 한번 가볼까?"

나는 가로수길인지 새로수길인지-왜 그런 이름을 붙여대는지-알 수 없는 그 어딘가, 구석진 곳에 있던 쭈꾸미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주말에는 쭈꾸미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줄까지 서있던 소위 말하는 하태하태! 맛집이었다. 퇴근 후, 회사 동료와 저녁 메뉴를 고르느라 어슬렁 거리다가 마침 자리도 있고 하니 내친김에 도저언을 해보기로 했다. 단 하나의 메뉴, 내게 허락된 선택권은 오로지 3단계의 '맵기' 뿐이었다. 평소 매운걸 잘 먹지 않던 터라 1단계를 주문하고는 약간의 긴장감(혹은 두려움)으로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딱 보기에도 '나 매움'이라 적힌 새빨간 쭈꾸미 볶음이 나왔고 우리는 허기짐에 쭈꾸미를 덥석 입에 넣었다. 잠시 후, 참으로 오랜만에 욕을 해보았다. 두 번 해보았다. 땀 벅벅에 벌건 얼굴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다가 이내 주위를 둘러보니, 세상 평온한 얼굴로 쭈꾸미를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곳은 초현실이다.(3단계는 위장약도 처방해주려나...)


#2.

SALE : 와 싸게 파나보다.

50% SALE: 와 반값에 파타보다.

초특가 SALE: 싸게 파는 건가...

울트라 초특가 SALE: 뭐야? 회사 망했어?

SALE: 뭐 맨날 세일한대!!? 그냥 애초에 세일가가 정가 아냐?


자극 일색인 세상이다. 자극에 의한 행동이 습관화되면 기존 자극을 덮을 더 크고 새로운 자극이 와야 반응하고 급기야는 본질 자체가 변질되어 버린다. "맛있게 맵다"라는 카피를 본 게 오래지 않은데, 어느새 "매워야 맛있다."로 바뀌더니 경쟁적으로 "우리 집이 최고 매움"이라며 (요리가 아닌) 캡사이신을 팔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으므로 맛집을 찾는 일은 자연스럽다. 단, '맛있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매워야 맛있다'는 명제는 결코 당연하지 않으며, 건강을 해치는 수준이라면 문제가 있다.

또한 이제 SALE이라는 팻말이 그리 매력 적이지 않은 이유는 매운 맛만큼이나 자극의 단계가 높아감에 따라 할인에 대해 둔감해지더니 결국에는 정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드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물 흐르듯 살아가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세상이다. 질문보다는 답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 그 답 조차도 '남들처럼'이라는 접두어가 붙어야 안심이 되는 타성에 젖은 답안지.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이 진실로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주변에 넘쳐나는 허상들과 그것에 익숙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갖다 놓는다고 변기가 아닌 것은 아니다. 이 행위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고 그 대답으로써 작가의 결과물인 것이다. 세상엔 당연한 것이 없어서 늘 질문하고 살아야지 다짐한다. 하물며 변기 하나도 이럴진대, 내가 평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내 생각(통념) 보다 훨씬 더 무한한 가능성 혹은 왜곡된 관념을 가지고 있을까. 모든 것을 다시금 사유할 수는 없지만 가급적 많은 것을 사유해봄으로써 '내 것'으로 만들 필요는 있어 보인다.

예술은 내 삶의 밸런스를 맞춰주고 영감을 준다. 가끔 우주에 떠있는 상상을 하곤 하는데, 눈앞의 문제들을 먼지처럼 작게 만든 후 진짜 중요한 본질을 가려내는데 좋은 방법이다. 미술관은 내게 우주공간과도 같다. 예술은 지금 중요해 보이는 것이 사실은 눈앞에 있어 커 보이는 착시일 뿐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며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게 한다. 일상의 밸런스를 회복케 하는 매우 중요한 도구인 것이다. 또한 예술은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누구도 볼 수 없는 것들을 찾아내 우리 앞에 데려다 놓는다.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을 보게 함으로써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내 삶과 업의 크나큰 영감이 되어 준다. 나는 예술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 것이다. -꿈을 기록하는 일 중, 내 인생의 중요한 10가지 중 한 가지인 예술에 대해.


예술은 '본질에의 사유'이다. 작품은 작가의 사유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며, 작품을 본다는 것은 작품을 가운데에 두고 작가와 만나는 일이다. 작품이라는 창을 통해 작가의 사유를 따라가든, 나만의 사유를 만들어내든 결과적으로 우리는 본질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Portrait of Lev Nikolayevich Tolstoy, Nikolai Ge
니콜라이 게의 톨스토이 초상화는, 사람의 머리는 물리적으로 작지만 그 안의 세상은 우주를 담고도 남을 만큼 넓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책 내용 중

톨스토이의 초상을 보며 이마와 펜대를 잡은 손이 빛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표현한 작가의 의도까지 당장 찾아내야 할 필요는 없다. (정말 엄청난 의미가 있어서 당황스럽기도 하다.) 단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글 쓰는 습관을 갖자."라는 명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될 일이다.


"글은 왜 써야 하는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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