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내 별장 만들기 프로젝트
2016년 오월 제주를 찾았을 때, 모슬포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3일을 보냈다. 그곳은 내게 정신과 시간의 방이었다. 딱히 나다닐 것도 없이 조용한 시골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주인 부부와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5일 뒤, 나는 제주로 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주 1주년이 된 2017년 오월 오늘, 다시 이곳에-우연히도 그때 묵었던 그 방에-앉아 있으니 1년 전의 기억이 몽글몽글 되살아 난다.
제주 여행 후, 짐을 싸서 다시 내려오는 데는 열흘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무 준비도 없이 내려왔겠냐마는 그렇다고 대단한 준비를 하고 온 것도 아니다. 가진 것이 없기에 가능한 웃픈 현실. 열흘 동안 한 몇 가지 일중 가장 잘한 일은 부모님께 5일 전에 미리(?) 통보한 일이다. 학창 시절부터 이어진 나의 '개썅마이웨이'라이프 스타일에 학습이 되어버린 부모님은 속으론 걱정이셨겠지만, 겉으론 대수롭지 않은 눈치였다. 그래서 자식 포지셔닝이 중요하다. 좋은 자리는 일찌감치 선점해야 한다. 사실 부모님의 '자식 내놓음'은 그간의 나의 행실에서 비롯되기에 말은 안 하시지만 아들을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 그렇겠지? 허허. 지구 어디에 떨어뜨려놔도 그곳에서 먹고 살 사업계획서(알래스카에서 빙수를 팔 궁리를 진지하게 해봤고 멋들어진 계획이 있기도 하다.)한 장 정도는 쓸 수 있고 누구랑 붙여놔도 3등 안에는 들 수 있다는 경험치를 통한 나름의 근거'있는'자신감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광석은 용기나 결단력 따위의 강함을 내재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이런 결정을 하고 실행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인 것 같다. 분명한 이유와 목적에 의한 결정이지만 한편으로는 나중에 뒤돌아 봤을 때, '내 삶이 이런 선택지를 가졌었다는 사실에 매우 뿌듯할 거야'라는 세상 먼 미래의 즐거움을 상상하며 결정에 힘을 보태기도 한다. 선결정 후수습의 삶. 빠밤.
아는 사람이라곤 1도 없는 제주에서 한국 사람과 매우 닮은 제주 사람들과 지내며 그야말로 현무암에 헤딩을 했다. 바람이 잘 통해서인지 시원하게 헤딩했다. 창업 6년 차의 습자지 같은 전략으로 갖은 삽질을 한 결과, "제주는 말이 통하는 외국이다."라는 명쾌한 결론에 도달했다. 이거슨 매우 큰 깨달음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다행히 잡귀에 능하고 지혜로운 두뇌를 소유한 나는 하루하루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살면서도 제주 이주의 꿈에 다가가고 있었다. 아직 꿈을 실현하지 못한 이유는 말이 좋아 이주였지 실상은 사업의 성패에 따라 한 달 살기의 연속인 살얼음판 제주 라이프를 살았기 때문이다.
연세의 천국 제주에서 월세의 삶을 살기 위해 부동산 아저씨를 사이에 두고 얼굴 없는 집주인과 밀당을 좀 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달 살기는 비싸므로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집을 보러 갔는데 딱 봐도 잘 안 나가서 수개월째 빈집인 듯 보였다. 집주인이 되어본 적이 없어 슬프지만 집주인에 빙의해서 나와의 거래를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월세 극딜, 핵극딜의 가능성을 보았고 제주는 연세가 아니면 안 된다는 공고한 룰을 되새김질하시는 꼰꼰한 부동산 아저씨에게 "제주에 이제 막 와서 사업을 하려고 해요. 미술관과 일을 하고 있어요. 못해도 반년 이상은 제주에 머물 것 같아요."라는 팩트에 근거한 미끼를 던졌다. 이는 건실하고 세련된(?) 남자사람이 깨끗하게 집을 사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신구간(제주민들이 이사를 다니는 시기)까지는 월세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해볼 만한 딜이었다. "저는 월세만 가능할 것 같아요."라며 쿨 내 나게 뒤돌아서서 부동산을 나온 지 2시간 뒤, 한층 나긋한 목소리로 부동산 아저씨가 전화를 하셨다. 2016년 7월, 나는 한라산 중산간의 깨끗한 집으로 이사를 했고, 집주인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았다. 젠장
앞으로 시작될 삽질 라이프는 모르는게 약이지. 한라산자락 어딘가에 두 발뻗고 잘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럼그럼. 미래는 예측하니까 두려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