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미술관과 어반가든

by 르코
263A3E5054D74FDE0930ED

"나는 당신의 그림을 밀라노 화상이 30만 리라에 사서 다음날 300만 리라에 파는 걸 알고 있어요.

당신은 이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러자 조르조 모란디가 대답했다.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를 수도 있겠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 할 일이 있단다.

그 사람은 상인이고 나는 화가란다.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지."

(조르조 모란디의 다큐영화에서 나오는 한 아이와 모란디의 대화)


1890년에서 1960년대를 산 작가의 그림은 내가 책에서 보아온 어떤 화풍에도 속하지 않고 오롯이 그 만의 그림이었다.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개념미술, 팝아트가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을 뒤로하고 색감, 구도, 그리고 그림에 투영된 사상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그의 말년 작품까지 이어지는듯하다.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


사물과 배경이 마치 한 덩이인 듯하다.(정물을 두고 그리지만) 그래서 추상적이다.

그림을 보는 내내 작가가 어떤 사람일까 너무 궁금했다.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영상 상영관에는 그의 다큐가 나오고 있었다. 60분짜리 영상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꼭 끝까지 보면 좋다. 다큐는 나와 작가를 더 깊은 공감으로 이끌어 냈고 이후 관람은 더 없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전시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2층에 또 다른 전시가 있어 올라갔지만 관람을 포기했다. 모란디전의 여운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주말의 여유로운 덕수궁을 산책하며 미술 식당에 참여한 사람들과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모란디의 작품이, 그리고 전시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조금씩은 다른 모양일지라도 분명 각자에게 전달되었다. 우리는 어느 때 보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미술작품은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콘텍스트(일생)의 단 한 장면이 발현된 것만 같다. 적어도 모란디의 작품은 그렇다.


그렇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 할 일이 있다.

그 사람은 화가이고 나는 기업가이다.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르지만 공평하게도 자기 할 일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서울시립미술관과 아리아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