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4월 25일 다리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빨간 가죽 코트를 입은 여자가 다리 난간에 위태롭게 서있다. 곧 뛰어내릴 것 같다. 놀란 토끼 눈으로 그 모습을 좇다, 뛰어들어 그녀를 낚아챘다. 오늘은 학생들의 시험이 있는 날이다. 나는 그녀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그녀는 순순히 따라왔다. 강의실은 다리 난간보다 그녀를 더 주목하게 했다. 나는 그녀의 코트를 받아 옷걸이에 걸어두고 시험지를 배부했다. 빗물에 젖어버린 시험지는 학생들의 머릿속에서 더욱 축축하고 선정적인 질문이 되었다. 답이 될 수 없는 그녀는 입술에 검지를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주고 강의실을 떠났다. 창 밖으로 교정을 떠나는 그녀를 보기가 지글거렸다. 결국 그녀의 코트를 들고 그녀를 찾기 위해 강의실을 나섰다. 행방이 불명인 그녀가 남기고 간 코트 주머니에는 책이 한 권 있었고, 책 속에는 기차표가 한 장 있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였다. 열차 출발 까지는 15분.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이렇게 시작한다. 늙은 교수인 그레고리우스는 생전 처음 느낀 강렬할 끌림에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녀가 남긴 책은 저자 아마데우가 자신의 자전을 담은 회고였다. 그레고리우스는 그의 삶에 빠져든다. 헤어질 결심의 작가 정서경은 이야기의 전개가 인물들의 선택에 있고 그 선택은 결점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레고리우스가 자각한 결점은 무미한 자신의 삶이었다. 아마데우는 달랐다. 아마데우와 그의 친구들은 독재에 맞서 치열하게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늙은 교수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와 자신을 비의하며 ‘그 사람들의 인생은 강렬하고 활력이 넘쳤어요. 자신의 인생을 살았잖아요. 내 인생은 어디 있죠? 여기 머문 시간 외에는.’ 라며 토로했다. 영화는 그레고리우스가 아마데우와 관련된 인물들에게서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을 찾으며 이어진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경 중에 4월 25일 다리가 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긴 테주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아마데우의 동료였던 주앙을 만나러 가는 길임과 동시에, 그들이 꿈꾸었던 혁명을 상징하는 오브제이다. 4월 25일이라 독특하게 불리는 다리의 이름은 원래 당시 독재자의 이름을 붙여 ‘살라자교’였다. 하지만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으로 독재가 붕괴되면서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4월 25일 다리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무혈혁명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시민들의 혁명군에게 카네이션을 건넸고, 혁명군은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아 화답했다고 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그레고리우스가 좇던 아마데우도 이날 죽었다. 혁명과는 상관없이. 혹은 상관 있이.
리스본에 있을 때,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미처 보지 못했었다. 여행 떠나기 전부터 친구가 추천을 해줬었는데, 이런저런 사소한 이유로 감상을 미뤘다. 나는 리스본 예수상 앞에서 다리를 보았다. 독재자를 축출한 뒤 이름을 변경했다는 사실만 알았을 때는 형태의 아름다움만 눈에 보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영화를 보고 나니 다리에 얽힌 인물들의 사연이 출렁여서 아쉽다. 미리 영화를 보고 갔다면 주인공이 다니던 길을 따라 걸으면서 아마데우의 메세지도 좇았을 텐데. 정신없이 닿은 리스본에서는 이런 아쉬움이 하나 더 있다. ‘불안의 서’를 쓴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이나, 다른 흔적들을 찾지 않은 것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그렇지만, 페르난두 페소아가 리스본 사람인지도 몰랐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와는 다르게 불안의 서는 읽었으므로 후에 아쉬움이 조금 더 컸다. 다만 이럴 때 아쉬움을 달랠 문장이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있었다.
언젠가 남겨둔 나와, 그들의 흔적들을 찾으러 다시 여행을 떠날 일이, 더불어 나를 더욱 알아갈 시간이 있을 것이다.
*사진은 모르게 담아왔던 리스본행야간열차의 흔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