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바꾼 스웨덴의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 수업을 듣고
'지속 가능성', 환경오염과 그로 인한 기후변화를 직접 목격하고 있는 현세대의 가장 큰 과제이다. UN(United Nations) 차원에서 매년 기후변화 총회를 통해 당사국들로 하여금 기후변화를 위한 환경 관련 조치를 촉구하는 만큼 다양한 국가에서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공부하고 있는 이곳 스웨덴은 지속 가능성과 친환경 정책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활발한 편이며, 덕분에 관련 석박사 프로그램이 항상 인기가 많다. 내가 속한 룬드대학교 사회복지학부(School of Social Work/ https://www.soch.lu.se/en/)에도 최근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Sustainable Social Welfare)'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실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라 신기했는데, 알고 보니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학제 간 연구 분야이며 특히 룬드대학교에서 2020년부터 연구 프로젝트로 다루면서 주목받게 된 분야라고 한다. 그만큼 학부 교수님들이 이 분야에 큰 자부심과 열정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번 학기 석사 과정 수업으로 편성되어 그 내용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수업을 듣고 나서 나의 삶의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따라서 오늘 글에서는 나를 변화시킨,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와 관련 담론들을 수업을 통해 내가 배운 내용을 토대로 나눠 보고자 한다.
지속 가능한 담론, 그린 성장(Green-growth)을 넘어 탈성장(Degrowth)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기반이 되는 담론인 '탈성장(Degrowth)'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인류문명은 지난 100년 간 성장 패러다임을 토대로 발전해왔다. 끊임없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모두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고, 실제로 경제성장이 우리의 삶을 과거보다 훨씬 부유하고 편리하게 바꿔주었다. 그러나 그 폐해로 우리는 과도한 성장이 불러온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목격할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친환경적인 노력과 함께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그린 성장(Green-growth)' 담론이 2000년대에 등장했다. 그린 성장은 환경오염이 경제성장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며, 재생 가능한 에너지와 친환경적인 자원 사용을 통해 탄소 배출은 줄이고, 더 효율적인 생산을 통해 경제성장을 함께 이뤄낼 수 있다는 관점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린 성장도 결국 여전히 기존의 성장 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않으며 친환경을 위한 노력에도 여전히 탄소 배출량에 극적인 변화는 없다는 점에서 그린 성장을 넘어 성장 패러다임 근간 자체에 반하는 급진적인 관점을 내세우는 담론이 있는데, 그게 바로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의 기반이 되는 탈성장(Degrowth)이다.
탈성장(Degrowth)은 인간의 번영과 행복이 경제성장에 달려 있다는 기존의 성장 중심적인 사고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역성장(degrow)하면서도 인류가 잘 먹고 잘 사는 법, 즉, 이전보다 덜 갖고도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이때의 역성장은 외부 요인으로 인한 일시적인 경기 침체와는 달리 인류가 스스로 지구의 환경적인 경계선 안에서 성장을 거스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매우 높은 GDP로 어마어마한 경제 성장을 이뤘음과 동시에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는 북반구의 선진국들 (Global North)의 역성장을 통해 남반구의 저개발국 (Global South)으로 재분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 연구는 이러한 탈성장 담론을 기반으로 하여, 재분배와 가치의 변화를 통해 경제적인 성장은 낮추고, 사회의 평등은 높일 수 있는 사회복지정책들을 연구한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필요(Human need)'에 초점을 맞춰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모든 인간의 권리이며 이는 미래세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권리이기에 현제 세대가 미래세대의 필요를 앗아갈 수 없음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정책은 세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필요 이상의 것을 지나치게 가짐으로써 타인의 필요를 앗아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의 핵심 개념이다. 그 간의 사회복지체제가 사실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발전한 것을 생각해보면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의 개념은 굉장히 급진적이고 신선한 개념이다. 나 역시 한국에서 학부를 공부할 당시 배웠던 가장 새로운 관점이 사회복지를 인간에게 투자하여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방법으로 바라보는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 관점이었기에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에 대한 수업은 내가 갖고 있던 기존 사고의 틀을 깨뜨려 주었다.
최저임금이 있다면 최고 임금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앞서 말했듯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가 오래되지 않은 개념인 만큼 관련 정책이 아직은 연구와 제안 단계 정도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다양한 사회 분야에 따른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들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최고 임금(maximum wage)' 제도에 대해 수업에서 중점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최고 임금제도는 말 그대로 한 사람이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데 얻어야 할 최소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최저임금이 존재한다면, 지나치게 노동의 가치 그 이상으로 얻어지는 임금의 최고 상한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미국 아마존의 CEO 앤드류 제시는 아마존 직원들의 평균 연봉의 6000배가 넘는 연봉을 받는다. 그렇다면 기업의 CEO들은 일반적인 직원들보다 6000배가 넘는 가치의 노동을 해내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사실상 한 사람이 타인에 비해 가진 6000배의 물질적인 풍요가 6000배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 또한 아니다. 최고 임금제도는 이러한 기형적인 임금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임금 차이를 10배 또는 20배로 엄격히 제한하여 최대 상한을 넘어가는 임금에 대해 100% 세금을 부과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초고 임금으로 가능했던 과한 소비를 줄이고, 현세대에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미래 세대의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고 임금제도를 현실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Buchhanson & Koch (2018)의 연구와 샘 피지개티(Sam Pizzigati)의 2018년 저서 최고 임금(The Case for Maximum Wage)을 읽으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니,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덜 갖고도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이자 에코페미니스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 Hodge)가 쓴 책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에는 인도의 작은 마을 라다크가 소개된다. 책에서 묘사된 라다크의 사람들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급자족하고 필요한 만큼 다 같이 나눠 쓰며 현대 문명사회의 발전된 모습과는 다소 동 떨어져 보이지만 지구의 그 어디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라다크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고도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라다크의 모습과 똑같지는 않더라도, 사람들은 이전보다 덜 갖고도 모두가 더 행복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은 탈성장 개념에서 역성장을 통해 가진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이미 인간의 필요(Human needs)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주체들을 말한다. 사실 사회의 변화라는 것이 개개인이 느끼기에는 내가 살아가는 오늘의 하루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더군다나 탈성장과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의 개념은 굉장히 새롭고 이상적이기 때문에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 분들께서는 이미 고개를 젓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수업을 듣고 삶에 대한 나의 관점이 완전히 바뀐 것은 분명하다. 항상 더 많이 갖는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히 단정 지어왔었는데, 생각해보면 필요 이상으로 내가 가진 것들이 딱히 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 나의 옷장에는 작년에 새로 산 옷들로 꽉 채워져 있지만, 여전히 나는 입을 옷이 없다며 쇼핑을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또한 내가 필요 이상으로 가질수록 그것이 현세대가 되었든, 미래 세대가 되었든 누군가의 필요를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도 상기하면 더더욱 나의 삶에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연도에는 굳이 꽉 찬 옷장에 새로운 옷을 사지 않기, 휴대폰과 같은 전자기기는 기능을 다해 사용하지 못하기 전까지는 굳이 새로 사지 않기 등등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 수업을 듣고 나의 일상에는 몇 가지 새로운 수칙들이 세워졌다. 이렇게 개개인의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부터 덜 갖고도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탈성장과 지속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커버 이미지: photo by 온리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