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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R Jun 02. 2016

추억 하나

1987년 여름의 기억

그때가 아마 국민학교 3학년(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쯤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이때 전후가 가장 즐겁고 행복한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많은 것 같다.- 내가 살던 동네는 서울 도시 한복판에 있었지만 커다란 재래시장과 아주 가까웠고 십수 년간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있던 곳이라(지금도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다.) 대부분 단 칸방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부자라고 할만한 집이 없었다. 뭐.. 한두 군데 정도는 커다란 집이 있었지만 누가 사는지도 몰랐고 관심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젠 보기 힘든 분뇨수거차/자료:서울사진 아카이브

하여튼 그렇게 평범에서 조금 떨어진 사람들이 사는 동네다 보니 집들이 따닥따닥 옆으로 앞으로 뒤로 붙어 있고 공동으로 수도시설(수돗가라고 불렀었다.)을 사용하고 화장실은 불도 들어오지 않는 푸세식(정화조가 없어 정기적으로 분뇨를 수거하는 차가 왔었다. 일명:똥차)이었다. 집(말이 집이지 옆방 수준)과 집 사이에 벽이 얇다 보니 방음은 전혀 안돼서 옆집 사정을 서로 물어보지 않아도 다 알고 지낼 정도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그 조그만 동네에 사는 아이들도 정말 많았다. 짐작이 안 되겠지만 아주아주 작은 동네인 건 분명하고 명절이라도 되면 이곳은 정말 발 디딜 틈 없는 시장통 그 자체였다. 또래 아이들만 모여도 3-40명씩 모여서 놀았으니까 정말 바퀴벌레 같이(나를 포함) 많이 있었다. 무슨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었는지...

1980년대 상습 침수지역이었던 "망원,풍납동 일대"

그때 동네에는 제비가 많이 살아서 땅위를 낮게 날아다니다가 눈앞에서 위로 솟구치듯 날아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매일 땅위에서 솟구치는 제비를 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멋진 모습이어서 나도 저렇게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그러다가 그 생각을 실제로 이룬? 일이 있었다. 그 해 여름은 전국적으로 장마와 태풍으로 인해 홍수가 서울 곳곳에 생겨 어딜 가도 물이 넘쳐나던 때였다.(지금 보다 비도 많이 내렸었지만 배수처리 시설이 지금과 달리 열악해서 툭하면 물이 넘쳤다.) 물이 넘치면 어른들은 살림살이를 건사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를 포함한 동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여기저기 물이 고여 있는 곳에 가서 물놀이를 하곤 했었다. 철없던 시절의 기억이다. 

홍수가 났는데 아이들은 대부분 이러고 놀았다.

홍수가 한차례 지나가면 또 다른 재해가 항상 있었는데 그 뒤에 따라서 오던 태풍이 또 문제였다. 그 때문에 우리 동네같이 허술한 집들의 슬레이트 지붕들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제비처럼 하늘 위로 날아다니기 일쑤였고 괜히 집 밖을 돌아다니다가 하늘을 떠돌다 떨어지는 슬레이트 지붕에 맞아 다치는 일도 있었다. 그때만큼은 제비 대신에 슬레이트 지붕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실컷 볼 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이 날 지경이지만 그 당시에 어른들은 정말 매년 겪으며 개선되지 않는 이 상황이 지긋지긋했었을 것이다.


그날따라 내가 왜 밖에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커다란 우산을 들고 동네에서 가장 큰길로 나가는
골목 입구에 서있었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우산이 자꾸만 뒤집어지고 있었다. 다시 뒤집고 뒤집기를 반복하며 돌아다니다 문득 바람이 세게 불 때 우산을 펼치면 바람을 타고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산을 펴고 안쪽을 뒤집어지지 않도록 꼭 잡고 있다가 바람이 불어올 때 타이밍을 때 맞춰 앞으로 있는 힘껏 크게 뛰었다.

나는 그날 날았다고 믿는다.

이게 웬일인가, 그게 내가 날고 있었다. 앞으로 크게 뛰었을 때 앞에서 세게 부는 맞바람에 위로 솟구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로 위로 솟구쳤냐면 동네 집들의 지붕들이 내 발 바로 아래 보이고 있었다. 그 기분이란 뭐랄까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기묘하고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게 날고 싶긴 했지만 설마 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뛰어 봤던 것이니까 진짜 날고 있는 거야? 하는 당황스러움과 한 번 날았다는 성공의 기쁨? 그리고 곧 찾아온 공포.. 여러 가지가 뒤섞인 그런 기분이었는데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주 잠깐이지만 우산을 타고 하늘은 아니지만 공중으로 잠시 날았고(솟구쳤고) 땅으로 떨어져서 두 발바닥에 모두 금이가고 무릎이 탈골돼서 병원 신세를 한 동안 지게 되었다. 그때 부모님은 내 얘기를 믿어주지 않았다. 하긴 나라도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으니까...


어쨌든 굉장히 스펙터클한 기억이다.라고 느껴서 쓰긴 썼는데 쓰고 보니 애들은 위험한 장난 하면 안 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인지 태풍에는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가 모험을 즐기라고 권하는 것인지 헷갈리지만 애들은 절대 따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따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이젠 바람이 세게 분다고 지붕 위를 날아다닐 슬레이트 지붕도, 빠르고 낮게 땅위를 날아와 눈앞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제비도 쉽게 볼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 날 공중에서 느꼈던 그 복잡한 기분의 순간만큼은 잊히지 않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날의 시간들은 이제 돌이켜 보는 것조차 버거운 일상에 치여 사소한 일이 되었지만 그날의 기억들은 불현듯 예고 없이 찾아와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게 해주며 나이도 현실도 잠시 망각한 채 기억의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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