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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R Jul 09. 2016

또 다른 추억 하나

1988년 여름의 기억 두 번째

가끔 어릴 적 추억들이 고장 난 형광등처럼 깜빡거리면서 짧고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때 있다.


5-6살 무렵부터 중학교 1 학년 때까지 매주 교회에 다녔었다. 생각해보면 독실한 크리스천은 못되었어도 착실하게는 다닌 것 같다.


매주 일요일 아침만 되면 엄마는 곤히 자는 나를 깨워 아침밥을 챙겨 먹이고 교회를 보내시곤 했다. 그때는 신경 쓰지 않았던 일인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상했던 점은 엄마와 아빠와 여동생은 교회에 가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엄마와 함께 교회에 갔었던 기억이 있지만 대부분 나 혼자 교회를 다녔다.


왜 나만 교회에 보냈었는지 궁금했지만 엄마에게 물어보지는 않기로 했다. 분명 시답잖고 귀찮다는 말투로 기억이 안 난다고 얘기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4학년 때 교회 여름 수련회를 갔었을 때의 일이다. 장소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또렷하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붉은색 카펫이 깔린 넓은 강당에서 모두 모여 앉아 찬양과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었고 목사님이 열심히 설교를 하신 후 마무리 기도를 드리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만 그런 건지 몰라도 마무리 기도는 항상 너무 길다.

어렸을 때는 이 단어의 뜻을 알지 못했다.

그 기나긴 마무리 기도 중에 난 눈을 꼭 감고 이리저리 딴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금니 하나가 혀에 살짝 밀려 흔들하는 것이 아닌가 살짝 놀라긴 했지만 겁먹지 않고 새로운 놀거리에 흥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침착하게 이 기나긴 마무리 기도시간을 보내기 위해 흔들리는 이를 가지고 신중하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건드릴 때마다 잇몸을 찌르는 고통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허무하게 빠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혀와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한껏 희열을 느끼고 있던 와중에...


이번엔 반대쪽 어금니까지 흔들거리는 것이 아닌가 주여, 이 기나긴 마무리 기도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멋진 놀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나도 모르게 기도 속에서 또 다른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금니 두 개를 번 갈아 가며 고통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느끼며 놀고 있는데 아무런 예고도 고통도 느낌도 없이 어금니 하나가 쑥~ 빠지는 것에 아닌가! 아쉬움이 몰려왔지만 이내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머지 하나의 어금니로 시간을 보내려 했으나 금세 허무하게 빠져 버렸다.


아.. 너무나 아쉬웠다. 인생 최초로 허무함을 느끼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아직 목사님의 저 기나긴 마무리 기도는 이제 막 절정에 다다르며 연신 주여!~를 외치시는 걸 보니 끝나려면 아직 먼 것 같은데 비루해진 나는 그 지루한 시간을 때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허무함을 달래며 빠진 두 개의 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이번엔 앞니 옆의 이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기뻐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주여!~를 다시 한 번 외치는 순간이었다. 연이어 다른 쪽 이 하나가 또 반응을 보여서 아까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고통과 카타르시의 시간을 보냈고 마무리 기도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기도가 거의 끝날 때쯤 나머지 두 개의 이도 모두 빠지고 4개의 이를 손바닥에 꼭 쥔 채 눈을 감고 이제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집사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엇. 상길아 너 입에서 피난다! 어떻게 된 거니?"


피? 그렇다. 4개의 이가 한꺼번에 빠지면서 다량의 혈액이 입안에 넘쳐 입술을 타고 새어나오고 있던 것이다. 이가 빠진 후에는 아무런 통증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일로 난 관심 환자로 분류되어 남른 수련회 기간 동안 특별대우를 받게 되어 더 이상 그 기나긴 마무리 기도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유소년기의 이갈이를 하던 때의 기억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가 한 번에 4개가 빠지는 일은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그날의 기억은 이렇게 추억이 되어 시간과 나를 스쳐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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