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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R Jun 25. 2016

커피머신 얼마예요?

평범한 하루 


#1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 가끔 커피머신을 보러 왔다면서 다짜고짜 이건 얼마인지, 저건 얼마인지, 여기 있는 것이 다냐는 둥, 사장님이 누구시냐, 여기가 그렇게 유명하다던데 싸게 주냐는 둥, 뭐라 말할 틈도 안 주고 마구 쏟아내며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소한의 소개도 하지 않는다. 그 순간 나는 백화점의 잡화코너의 직원이 된듯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백화점 직원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는 백화점이 아니다. 이리저리 친절하게 안내하며 다양한 제품을 소개하면서 기분을 맞춰줄 생각도 그럴 시간도 없는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업소용 커피머신과 주방기기를 수입하는 회사의 직원일 뿐이다. 


하루에 최소 100여 통의 통화는 기본이다. 회사에서 지급한 핸드폰은 몇 분 간격으로 울려댄다. 대부분이 주문과 결제에 관련된 전화라 모른 척할 수 없기 때문에 고객이 옆에 있어도 전화를 받는다. 최대한 빠르게 전화를 받고 가격을 이야기하고 결제가 되면 바로 출고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문 전화도 받고 제품을 들어서 옮기기도 하고 택배 포장도 한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묻지도 따지지도 않던 손님은 이내 나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백화점 직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2

가끔 이런 모습에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나는 그렇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양해를 구한다. 그다음엔 여기는 백화점이 아니라고 설득한다. 서비스직이 아니고 기술직에 가깝고 가정용이 아니고 업소용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그래서 나긋나긋하고 우아하신 사모님들을 접대하는 백화점을 기대하지는 마시라고 그렇게 해명해도 기분이 나빠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직원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대표자를 찾으며(여기 사장이 누구야! 당장 나오라고 그래!) 소란스러운 항의를 하기도 한다. 나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린다고 정중하게 이야기한다. 그 순간에도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상담이 시작되면 나는 항상 이 질문을 먼저 한다." 어떤 커피머신을 찾고 계신가요?"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고객이 대답을 한다. 그다음부터는 순조롭게 상담을 진행한다. 정해진 대답은 없다. 나는 그냥 고객이 어떤 말이든 먼저 이야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말이던 대답을 하고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고객은 이미 여기저기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온 것이고 어렵사리 장비를 직접 수입하는 업체까지 찾아와서 아무런 소득이 없으면 안 되는 걸 알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준비했으리라. 개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대답을 하는 대부분의 고객은 커피머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노력해온 흔적을 보인다.


그걸 느낀 나는 그때부터 최적의 장비를 제안해주고자 하는 직업정신(직업병)이 발휘된다. 업계에 처음 발을 들인 게 2002년이니까 올해로 15년 차다. 그동안에 필드에서의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프랜차이즈 본사와 장비회사에 근무하면서 익힌 전문지식까지 총동원해서 상담을 진행한다. 때로는 나의 입모양과 몸짓 손짓을 섞어서 설명하는 모습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고객 앞에서 나는 마치 마지막 무대에 오른 광대처럼 본분을 잊은 채 시키지도 않은 컨설팅도 마다하지 않는다.(가끔 내가 누군지 뭐하는 사람인지 잊을 때가 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와 차분하게 내용을 정리하고 견적서를 출력하여 주문을 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사항들을 꼼꼼하게 알려주고 상담을 마무리한다. 



#3

충분한 고객과의 소통은 결과적으로 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 처음 사용해 볼 수도 있는 장비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고객의 상황에 맞춰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오류를 줄이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고객은 납품이 이루어진 후 제품에 만족도가 높다. 창업 후에 사업도 분명히 순조로울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하지만 내 질문에 적당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두서없고 우아한 백화점 사모님은 결국 상담이 아니라 교육으로 변질된다. 그나마 태도가 적극적이고 협조적일 때는 판매로 이어지지 않을 줄 알면서도 시간을 들여 설명하기도 하지만 비협조적이고 성의 없이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가격을 깎으려고만 하는 고객과의 시간은 서로 힘들고 소모적인 시간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적당히 몇 가지 품목을 견적서에 출력해서 돌려보낸다. 추후에 이런 상담이 납품으로 가는 확률은 0%에 가깝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잘 되기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4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객관적이지도 일반적이지도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외식사업을 시작하는 순간 본인도 더 이상 고객이 아닌 접객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 예비사업자와 장비회사는 갑을 관계가 아니고 수평적인 파트너 관계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아무런 준비와 노력 없이 창업을 시작하는 순간 호황을 누리는 창업시장의 재물이 된다는 사실,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말 잘 잊거나 듣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백화점 직원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백화점에서도 2년 정도 일해보았기 때문에 백화점 직원의 고충을 알고 있다. 따지고 보면 상위 1%의 사람을 빼고는 위아래로 신경 쓰는 모양새는 거의 비슷비슷하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비슷한 처지끼리 너무 막대하고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무 모르면서 용기만 부리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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