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보일드 로스팅 원더랜드
자신의 커피전문점에 어울리는 커피머신을 찾으려는 예비 창업자분들을 만나서 상담을 하다 보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오류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비싸고 성능이 좋은 커피머신을 구매하면 커피의 품질이 상승한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커피의 품질은 산지에서 재배해서 수확하는 순간 대부분 결정되고 가공과 추출을 하는 과정에서 품질이 떨어지는 일은 발생할 수 있어도 머신으로 인해 품질이 상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고품질의 커피가 바다를 건너 이동하는 중에 보관의 문제로 품질이 저하되거나 로스팅을 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열이 전달되지 못해서, 추출방식에 따라 적절하지 못한 분쇄와 적정한 양과 온도의 변수나 추출 중의 실수로 커피 본연의 맛을 구연하지 못하는 경우는 발생할 수는 있지만 머신으로 인해 커피 본연의 품질을 뛰어넘는 맛이 구현되는 상황은 벌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류 요리사가 호텔 주방에서 좋은 오븐과 레인지 같은 주방기구가 갖춰져 있다고 해서 질이 떨어지는 식재료로 좋은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 그래서 일류 호텔 요리사가 항상 최상품의 식재료를 선호하는 것은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최상의 요리는 최상의 식재료라는 기본 전제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죠.
직접 로스팅을 하고 납품까지 하는 분들도 커피머신을 구매하기 위해서 상담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이 불특정 한 매장을 운영하는 고객에게 납품을 위해 로스팅을 하면서 로스팅된 커피를 하이엔드 머신을 통해 추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커피가 잘 로스팅되었는지 알 수 있다는 이유로 말이죠. 추출 온도가 조절되고 유지가 되며 1,2천만 원은 가볍게 뛰어넘는 고가의 머신으로 말입니다. 스스로를 전문가로 믿고 있지만 커피머신이 가지고 있는 메커니즘과 머신을 제조하는 브랜드의 밸류를 잘못 이해하다 보니 벌어지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테스트된 커피가 납품되는 매장은 커머셜 한 보급형 머신을 사용하는 곳들이 대부분인데 말이죠.
머신의 성능이 커피의 품질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면서 온도 조절이 힘들고 기본적으로 편차를 갖고 있는 보급형 머신들을 사용하는 매장에 자신이 하이엔드 머신으로 테스팅한 커피를 납품할 때 과연 어떤 생각이 드는 걸까요? 자신이 로스팅한 커피가 보급형 머신으로 구현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으면서 납품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모순이자 아이러니가 아닐까요?
로스팅된 커피가 머신을 따져서 추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런 머신을 사용하는 곳에만 납품해야지, 보급형 머신을 사용하는 매장에 납품을 하면서 추출이 잘 되지 않는다고 머신을 탓하는 납품업체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겪은 매장의 오너가 실제로 그런 이유로 머신을 교체하기 위해서 문의를 해오거나 머신 때문에 커피의 품질이 떨어진다고 믿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이죠.
결론적으로는 어떤 머신으로 추출을 해도 좋은 커피, 잘 로스팅된 커피는 맛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신이 커피를 따지는 것도, 커피가 머신을 따지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최종적으로 불특정 한 고객을 대상으로 납품용 원두를 로스팅하는 업체가 특정한 머신을 고집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좋은 커피는 특정 머신과 관계없이 좋은 커피이고 좋은 커피는 어떤 머신에서도 좋은 맛을 드러내기 때문이죠. "머신은 단지 거들뿐"
소싯전에 락밴드 보컬로 활동을 하면서 앨범 녹음을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로스팅업체가 하이엔드 머신을 고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동으로 그때가 떠오르게 되는데요. 전혀 다른 분야이지만 결과물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할까 합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커피가 우리 삶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과도기에 있는 이 시대에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 지식인지 생각해보고 공유와 소통, 그리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지식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시대로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앨범은 아무데서나 틀어도, 들어도 좋아야 한다.
십수 년 전, 록음악을 한다고 머리 기르고 녹음실을 기웃거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운 좋게 중견 밴드에 합류해서 노래를 할 수 있었지만 미천한 실력이라 하늘 같은 선배님들 앞에서는 늘 두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거리며 몸짓하나 말투, 단어 하나 놓칠세라 바라보고 좋은 것은 따라 하며 배우곤 했었습니다. 음악을 배운 적도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다 보니 곁눈질로 귀동냥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죠.
우연찮게 정부에서 비용을 지원받아 디지털 싱글 음원을 음악포털 사이트에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밴드와 함께 녹음실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늘 빈둥거리며 왔다 갔다 하면서 들락날락 거리기만 했지 실제로 녹음을 위해 부스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처음이다 보니 커다란 녹음장비와 스피커 그리고 무심한 듯 시크한 엔지니어 앞에 서있을 생각만 해도 저절로 긴장이 되어 발바닥에 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리더군요.
녹음을 해본 경험이 있었던 다른 밴드의 보컬형이 이야기해주기를 녹음실, 특히 녹음 부스에 들어가면 긴장감도 장난이 아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목소리가 나에게 너무나 적나라하게 들리기 때문에 벌거벗겨진 것처럼 창피하고 이전에 알고 있던 본인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전혀 낯선 사람의 소리를 듣고 멘붕이 올 테니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을 해줬습니다.
실제로 크게 도움이 안 되는 조언이었지만(들으나 마나 한 것이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소용없는 긴장감.) 어쨌든 각오와 파이팅은 미리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형은 녹음이 잘 안돼서 나중에 녹음 부스에 불을 끄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밤새도록 노래를 불러서 겨우 녹음을 끝냈다고 했으니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실제 녹음은 그 형이 조언한 것처럼 창피하지도 옷을 벗고 노래를 하지도 않았지만 긴장감은 정말 엄청났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보다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마주 보는 일이 훨씬 긴장된다는 것을 이 날 처음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던 녹음을 끝내고 마무리 작업을 할 때의 일입니다.
모두가 마무리 작업인 마스터링이 끝난 곡을 녹음실에 모여서 듣고 마음에 들어했지만 디렉팅을 맡았던 형은 음원을 꺼내 들고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며 밖으로 나가자고 말했습니다. 앨범 작업이 처음이었던 저는 어리둥절 했지만 일단 따라나섰습니다.
밖으로 나간 디렉터형은 자신의 구형 소나타 2(10년도 더 된 차다.)에 올라타더니 음원 시디를 차량 오디오에 넣고 틀었습니다. 녹음실의 빵빵한 스피커보다는 조금 덜 세련되게 들리긴 했지만 우리가 녹음한 음악은 무리 없이 잘 들렸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음악을 듣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물었습니다.
"형. 왜 이런(똥) 차에 와서 음악을 듣는 거예요?"
"응, 평소에 너는 음악을 어디서 듣냐?"
"거의 CD플레이어나 MP3로 듣죠."
"그래, CD나 MP3로 듣지?, 우리가 작업했던 녹음실에까지 와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며 녹음실처럼 장비를 갖추고 음악을 듣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 대부분 집에서, 차에서 이동 중에 CD플레이어나 MP3로 듣잖아, 녹음실처럼 음향시설이 빵빵한 곳에서는 어떤 음악을 가져다가 틀어도 웬만하면 다 좋게 들리기 때문에 이런 평범한 상황과 평범한 장비에서 얼마나 음악이 잘 들리는지 확인해야 하고 이런 상황에서 음악이 밸런스도 맞고 제대로 들려야 비로소 곡 작업이 끝난 거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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