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랜만에 책상에 앉았다.
비를 닮은 눈물의 완결 편인 애수를 쓰기로 호언장담을 해놓고 그 뒤로 맨탈이 완전히 바사삭 나갔었다.
물론 지금도 완전 회복이 된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의 멘탈도 중요하지만 크고 작은 악재가 연이어 터지다 보니 그야말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글을 못 쓰는 상태'의 괴로움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그리고, 온몸과 마음이 마치 마비된 것 같은... 그야말로 좀비 같은 몰골로 6개월을 만신창이가 되어 버텨왔다.
그중에 제일 괴로운 것은 외로움이었다.
어차피 스스로가 감당해야만 하는 외로움은 힘든 생활 속에서 더욱 치명적 이었다. 그러다 보니 뻔히 알면서도 악순환의 고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술을 마시다 지치면 잠에 빠져들고, 다시 정신 차리고 햇살을 받고 일어나면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음식을 먹으려 하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술이라도 한 잔 들어가면 그제서야 안주라도 넘어가기에 또다시 술을 찾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한 달 한 달을 넘기고 있었다. 술을 마실 때면 그만큼의 눈물도 함께 흘린 것 같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지난 시간, 누구나 힘든 시기는 있기에 징징거리지 말자라고 다짐하며 안으로 눌러가며 살아온 날들에 대한 스스로의 회의와 원망 그리고 실망감은 좀처럼 머릿속과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찌어찌 살아보겠다고 간신히 얻은 보금자리는 전세사기를 당해서 모두 날려먹고 그래도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경차 트렁크에 절반을 차지하는 책들도 더 이상 나를 지켜주지 못했고, 서쪽 해안가에 위치한 해수욕장을 돌아가면서 차박을 하며, 저녁 검은 바다의 파도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평소에 그토록 좋아하던 바다는 이제 더 이상 즐겁고 아름다운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가족들이 누울 월셋집을 간신히 마련해 주고, 나는 다시 건설 현장의 숙소로 돌아왔다. 보통 숙소는 2인 1실이 기준인데 다행히 한 사람이 출퇴근을 한다기에 방 하나를 혼자 사용하는 호사를 누린다. 이방에 옵션으로 책상이 있는 걸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어서 와 힘들었지? 이제 우리 앉아서 차분히 얘기도 하고 글도 써보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사라지고, 책과 글쓰기만이 나의 전부가 된 것이다. 이것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불평불만은 하지 말자라고 생각한다.
나보다도 더 힘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용기를 내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유튜브에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를 틀었다. 몇 분 동안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자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러자 미친 듯이 애수를 써 내려갔다. 그렇게 미뤄왔던 소설을 다시 쓰게 되었다.
이제는 술에 의지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마시고도 중독이 안된 걸 보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다시 시작해야지...좋은 글을 쓰도록 다시 노력해야지... 그렇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좋은 글을 쓰는 일만큼 한 가지 소망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내 집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그녀에게 다시 사랑을 받고 싶다. 아니 그냥 관심이라도 받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그녀와의 행복한 시간이면 내 인생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사실 글쓰기, 독서도 필요 없다. 그녀와 같이 웃을 수만 있으면....
조그만 경차를 타고 혼자 돌아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너무 한 가지에만 몰두했구나. 니체도 사실 쇼펜하우어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염세주의라고 해서 부정적으로 판단할 게 아니다. 어쩌면 나는 니체보다는 쇼펜하우어가 맞을지도..."라는 생각.
그동안은 염세주의 철학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두려움에 지식 탐구에도 남의 눈치를 보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지금 머리맡에는 니체와 쇼펜하우어 책이 있다.
그리고, 잠들기 전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잠을 청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경차를 타고 바닷가에서 갑자기 떠오른 글귀가 있어서 적어본다. 술김에 생각난 글이라 창피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나의 흔적이기에 이쁘게 다듬지 않고 그대로 틱톡에 올렸고 그대로 적어본다.
밤바다
삶의 마지막은 바다를 원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내 사람아
제발 그렇게 하지 마오.
보잘것없고 못난 이 사람의 영혼이
파도에 다시 떠 밀려와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부러운 마음과 미련으로
파도 속으로 산산이 흩어질까 두렵습니다.
그저, 아무 곳에 흩뿌려주고
어느 날 길을 지나가다 내가 떠오르면
내가 기억하는 그 밝은 미소 한 번만 보여주시오.
난 그것 하나면 기쁠 것 같습니다.
오늘도 밤바다가 서럽게 웁니다.
해송
바닷가 해송은 가지를 뻗어 듣는다.
바다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저 묵묵히 세찬 바람 속에서
기쁘고 억울한 사연을 듣는다.
절대 흔들림 없이 듣는다.
자지러 지듯이 파도가 치는 오늘도
해송은 그저 귀 기울여 듣고 있는다.
오늘따라 바다의 알 수 없는 투정이 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