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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

by 글싸라기

새해가 시작되고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월 초 새벽 4시경, 아직 어둠이 깔린 거리는 한산했고, 찬바람을 피하느라 차들도 어디론가 서둘러 오고 갔다.

새벽부터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은 두터운 겉옷 안으로 움츠려든 사람들의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급기야 창문을 부여잡고 거칠게 흔들기까지 했다.

그 때문일까 마음이 시리도록 아팠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가증스러운 핑계일 것이다. 거의 4개월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같잖은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들로 구르는 돌멩이만도 못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스스로 해결해야만 할 것들이 게을러터진 몸과 아둔한 두개골 안에 자리한 뇌 속에 가득했다. 속이 썩어 들어가는 듯한 마음고생과 자기혐오 때문에 극단적인 용기나 허탈함에 포기하는 마음조차도 결심하지 못한 채, 그렇게 꼽추마냥 시선을 땅에 고정하고 살았다. 글쓰기도 사치였으며 염치없는 사기꾼의 어림없는 잔재주였다. 그저 글쓰기로 어찌어찌 일확천금이라도 바라는 못돼먹은 파렴치한일 뿐이었다. 연재를 했었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마치 발가벗겨진 우스꽝스러운 몸뚱이를 보는 것처럼 창피했다. 하지만, 그 모든 글들을 차마 지우지 못한 채 한숨만 푸짐하게 토해냈다. 또다시 가슴 깊숙한 곳에 응어리가 느껴지며 아려왔다. 이런 염치없는 사기꾼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내 안의 문제도 슬픔도, 분노도, 미움과 원망도 모두 내가 싸질러놓은 찌꺼기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제야 간신히 주제 파악이 되는 듯 이렇게 고해성사 같은 글이라도 쓰게 된 것이 그나마 눈물 나도록 감사하다. 지금까지 나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은 나 자신의 주제 파악이 안되었기에 일어난 결과였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걸 지금 이 나이에 간신히 깨닫게 됐다니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과연, 내가 글 다운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유익한 흔적이라도 남기고 세상을 떠날 자격이 있을까?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일까? 껍데기를 탈피한 연약한 번데기가 아직 꿈틀거리고 있다. 겨우 한번 탈피를 했을 뿐인데 머릿속에 어쭙잖은 걱정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연재소설은 쓰기 힘들 것 같다. 그나마 몇 명 안 되는 구독자분들에게 심사숙고하여 몇 번이고 수정 후 탈고해서 정성스럽게 내어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죄송하다.

간간이 에세이 형식이든 일기 형식이든 뭐든, 소소하게 아직은 숨이 붙어있음 확인하는 정도의 교류하는 것 말고는 힘들 듯하다. 나의 삶을 누르고 눌러서 참고 참아서 또, 견디고 견뎌서 언젠가 꼴불견인 이 몸뚱어리를 곧추세우고 가슴을 편 채, 당당하게 한번 읽어 주십사 간청하는 그런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지금 현재 나의 유일한 낙이며 희망이다.

쓸쓸하고 메마른 바람이 햇살에 잘게 부서지며, 앙상한 소나무 가지에게 시비를 걸고 도망간다. 조그만 방구석으로 돌아가는 그림자가 느리고 길게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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