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화 기명의 예언.
토요일 오후 5시경 익산의 중심가.
찬혁은 주말이라 잔업 없이 일찍 끝났다. 일찍이라고 해봐야 오후 3시까지 근무를 해야 하지만 평일보다 다만 몇 시간이라도 일찍 끝나는 토요일은 마치 휴가를 얻은 듯 들뜨기에 충분했다. 서둘러서 샤워를 마친 후 십 킬로미터가 넘는 익산 번화가까지 차를 몰고 나왔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믿어지지 않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복권 판매소 앞에 도착했다.
“손바닥을 보면 그놈의 말이 그럴듯하긴 한데 정말일까? 참내, 그렇다고 안 살 수도 없고..”
복권 판매소 간판을 올려다보니 1등 당첨자가 무려 열다섯 명이나 나온 명당이었다. 게다가 2등 당첨자는 스무 명이 넘었다.
“그래 뭐 어차피 만 원어치만 사는 건데 안되면 어때! 아니지, 안되면 기명이 새끼 나한테 죽는 거지.”
찬혁은 혼자 피식하고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토요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서둘러 로또용지에 체크를 하며 잠깐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한 줄에는 자신의 생일과 은미의 생일을 조합하여 여섯 개의 번호를 써넣었다. 그러고는 용지를 들고 줄을 서기 위해 뒷 쪽으로 걸어갔다. 출입문 앞까지 줄을 서 있었기에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출입문이 열리면서 남자 한 명이 들어오더니 찬혁을 몸으로 밀며 새치기를 했다.
“아저씨! 제가 먼저 왔는데 새치기를 하시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뭐?”
남자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오히려 못마땅한 듯, 위아래로 훑어보며 반말로 찬혁의 심기를 긁었다.
“뭐요? 지금 뭘 잘 했다고 그러는 겁니까? 그리고 왜 반말인데?”
“이 양반이 어디서 시비야? 내가 먼저 들어왔는데 당신이 끼어든 거잖아!”
“참나 어이가 없네.”
안 그래도 회사일과 집안일 때문에 힘들었던 감정을 꾹꾹 누르며 참아온터라 도저히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너 오늘 잘 걸렸다‘라는 마음으로 한바탕 싸움을 하려는 순간, 기명이의 당부가 떠올랐다.
[누군가 너를 새치기하면 화내지 말고 양보해 줘]
기명이가 당부했던 말을 생각하며 잠시 멈칫하자 남자가 다시 도발했다.
“어이가 없으면 어쩔 건데? 뭐 뭐?”
기명이의 말을 믿어 보기로 하고 화를 누르고 참았다.
“알았어요. 됐으니까 그만합시다. 앞에 서요.”
“진작 그럴 것이지, 어디다 대고 시비를 걸어!”
씩씩거리는 남자 뒤로 줄을 선 뒤 찬혁은 자신의 오른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 정도라면 뭐가 있어도 있겠지. 참자 참어.’
드디어, 두 장의 로또복권을 손에 쥐고 가게를 나왔다. 새치기 때문에 기분은 엉망이었지만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길 건너편에 있는 통닭가게로 향했다. 찬혁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만의 소확행을 즐기곤 했는데, 그것은 바로 좋아하는 통닭을 안주삼아 차 안에서 혼술을 하는 것이었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저렴한 옛날치킨 하나로 우울함을 달래는 것 그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식당에서 국밥 정도면 모를까, 혼자 앉아서 고기를 구워가며 혼술을 하기는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주말이라 숙소 근처 텅 비어있는 주차장에 도착한 후, 옛날 치킨 한 마리와 소주 한 병 맥주 한 캔을 펼쳐 놓았다. 사람 기분이 간사해서 이런 안주거리 하나로 기분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종이컵에 소맥 한 잔을 만들어서 입안으로 털어 넣은 후, 해 질 녘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저무는 붉은 해가 솜사탕 같은 구름 주변을 옅은 주홍색으로 물들이며 산 뒤로 엉금엉금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오르자, 은미의 얼굴과 그동안의 지나온 시간들이 영사기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립고 안타까운 시간들..
답답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다시 종이컵에 술을 따랐다. 힘 조절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취해서인지 술이 넘쳐 버렸다. 찬혁은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넘쳐버린 술잔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자신의 지나간 시간들이 어쩌다 넘처 버려서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술잔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해는 산 뒤로 숨어 버렸고, 낡고 허름한 경차는 점점 짙은 어둠 속으로 숨어 버렸다.
다음날 일요일 이른 아침.
찬혁은 온몸이 뻐근해짐을 느끼며 눈을 떠보니 차 안이었다. 술에 취한 채 차 안에서 잠이 든 것이었다. 넘처버린 술잔은 술이 가득 담긴 그대로였고, 먹다 남은 치킨 조각이 검은색 비닐봉지 위에 흩어져 있었다. 해는 이미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서둘러 새벽 내 틀어놓은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렸다. 한여름의 습한 바람이 꼬릿한 흙 내음을 품고 콧속을 파고들었다. 도시에서는 맡아볼 수 없는 신선함 이었다. 혼자만의 파티를 즐겼던 흔적들을 주섬주섬 치우고 있을 때 은미에게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야. 오늘 쉬는 날이지?”
“그래. 오랜만이네. 무슨 일 있어?”
“그게.. 할 얘기가 있어서 전화했어.”
“할 얘기? 무슨 일인데?”
“여기 이사해야 할 것 같아.”
“아.. 집주인이 연장 안 해준다던?”
“연장하려면 천만 원 달래.”
“백만 원도 아니고 천만 원이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전화했어.”
찬혁은 난감했다. 여유자금도 없을뿐더러 입사한 지 고작 한 달 정도라서 대출도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주인한테 두 달 정도만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어봐. 버팀목 대출 이라도 받으려면 최소한 3개월은 지나야 하거든.”
“글쎄.. 그렇게 해줄까 모르겠어.”
“다시 한번 말해봐.”
“알았어.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왜?”
“왠지 힘이 없어 보여서.”
“여기 텃세가 심하네.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너무 힘들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자기가 힘들어도 버텨야지 도리가 없잖아.”
“자긴 여전하구나..”
“현실 그대로 말한 거야. 어쩔 수가 없잖아.”
“그래 나도 알지. 그래도 빈말이라도..”
“그만해. 또 싸우겠다. 나로서는 그 말밖에 해줄 수가 없는 거 알잖아.”
“그래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또 또 그런다. 무슨 말만 하면..”
“알았어! 그만하자. 주인한테 한 번 더 말해보고 연락 줘. 잘 지내고..”
“그래, 잘 지내고 수고해.”
여전히 두 사람의 사이는 가까워지지 않은 상태로 건조한 대화를 마무리했다. 전화를 끊은 후 찬혁의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잠시만이라도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고 싶었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는 현실이 우울하기만 했다. 회사로 들어가 주차한 뒤 숙소로 들어갔다. 방 바닥에 어지러이 깔려있는 이부자리 위 머리맡에는 오래전 바닷가에서 은미와 함께 찍었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 두 사람은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찬혁은 사진을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다시 이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찬혁은 사진 속에서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은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두 달 뒤.
은미와 은정이가 마주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사를 가야 한다고?”
“그래 집주인이 보증금을 천만 원이나 올려달라고 하니 어쩔 수가 없어. 두 달 정도는 이자 내는 셈 치고 반전세로 봐줬는데 몫 돈이 필요하다고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하네.”
“잘 말해보지 그랬어.”
“말했지. 안 했겠니? 지금까지 한 부모 가정으로 혜택을 받은 게 있는데 이제는 그게 없어졌고, 손해는 볼 수 없으니 올려 달라는 거지... 게다가 요 앞 사거리에 전철이 들어와서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그러더라.”
“참내, 없는 사람들은 죽어라 죽어라 하네. 그래서, 어디로 갈지 알아봤어?”
“그게 걱정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서울은 고사하고, 부천이나 경기도 쪽도 어렵겠다. 아저씨랑 의논해서 대출이라도 받아야...”
은정은 아저씨라는 말이 나오자 발끈하며 은미의 말을 끊어 버렸다.
“아 됐어! 맨날 힘들다고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하는 사람한테 무슨 기대를 해?”
“그만해. 네가 잘 몰라서 그래. 아저씨도 나름대로 힘들어.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살려고 그러잖아.”
“싸울 때는 언제고 이젠 아저씨 편드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넌 잘 모르면 입 다물고 있어!”
“집안 형편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나랑 같이 월세라도 알아봐. 내가 생활비 보탤게.”
“어이구 이제 다 컸네.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말이라도 고맙다. 이제 밥 먹자.”
은미는 저녁밥을 준비하면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나이에 아직 천만 원이 없어서 이사를 가야 하는 처지가 한심했다. 한평생 돈 때문에 이렇게 시달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반찬을 들고 밥상에 옮겨 놓으려는 순간, 오른쪽 눈이 마치 빠질 듯한 통증 때문에 비틀거리며 넘어지려 하자 은정이 놀라며 부축했다.
“엄마 왜 그래?”
“아니야 잠깐 어지러워서.. 눈이 갑자기 아프네.”
“눈이? 갑자기 그런 거야?”
“아니, 평소에도 가끔 어지럽기도 하고 가끔 눈이 아프기도 했는데 최근 들어서 점점 심해지네. 밖에 나갈 때는 선그라스 없으면 외출을 못하겠어.”
“진작 말을 하지 왜 병을 키워? 내일 꼭 병원에 가봐.”
“괜찮아, 피곤해서 그렇겠지. 요즘 이사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 거야. 걱정하지 마라.”
“엄마! 엄마가 의사야? 우리는 몸이 재산인데 없는 살림에 몸까지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 아무 소리 말고 내일 꼭 병원 가봐. 응?”
“얘는, 됐어!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으이구 고집은.. 저 고집을 누가 말려. 누가 최 씨 고집이 세다고 했는지 몰라. 내가 보기엔 배씨가 제일 센 거 같은데.”
“얘가 요즘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졌는지 모르겠네. 잔소리 그만하고 여기 밥하고 국 좀 날라!”
“칫!”
두 사람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사 문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자 은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며칠 뒤.
이사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찬혁이 은미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 동안 계속해서 알아봤는데 다행히 은행에서 버팀목 대출조건이 된다고 했어. 내가 서류 준비해서 대출받아 줄게. 집은 알아본 거야?”
“그래? 다행이다. 집은 알아봤는데 부천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고, 인천 쪽으로 이사해야 할 것 같아.”
“인천?”
“알아보니까 인천 미추홀구 쪽에 거의 신축 빌라같은 매물이 있는데, 버팀목도 되고 평수에 비해서 가격도 저렴해.”
“그래? 자기가 가서 직접 보고 부동산도 잘 알아봐. 등기도 잘 살펴보고.”
“알았어. 주말에 은정이랑 보고 와서 전화할게.”
“그래 알았어. 나 일하러 들어가야 해.”
“수고해.”
그 뒤로 이사 문제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출도 순조롭게 받아냈고, 이사할 집도 깨끗하고 넓어서 은미는 안심이 되었다. 다만 계약할 때 집주인을 직접 만나보지 못한 점과, 등기상에 근저당이 잡혀있었지만 부동산 업자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관리하는 건물이며 보험도 들었으니 괜찮다고 안심을 시켰다. 은미는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보증금에 비해서 넓은 평수와 신축에 가까운 집을 놓치기 싫었다. 은미는 이사를 한 후 부천보다 비교적 넓고 깨끗한 집에서의 생활에 만족을 하며 지냈으나, 그 만족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가을이 시작될 즈음 은미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야.”
“왜? 무슨 일인데.”
“나 어떻게 해.”
이미 은미의 훌쩍거리며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기에, 찬혁은 본능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무슨 일인데?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봐.”
“여기, 집 말이야.. 경매 넘어갔데.”
“뭐라고?”
그 순간 기명이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이사할 곳에서 사기를 당할 거야. 그래서 지금보다 여러 가지로 더욱 힘들 거야]
‘젠장..’
그동안 회사일이며 이사 문제 때문에 기명이의 말을 깜박 잊고 있었다.
“자세히 말해봐! 왜? 뭣 때문에?”
“우리 집뿐만이 아니고, 여기 건물 전체 대부분이 다 당했데..”
“뭐라고? 그게 대체..”
“주인은 전화도 안 되고, 부동산도 전화를 안 받아.”
“아니 이런..”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은미의 울음소리가 귀에 들리자 찬혁은 정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잘 알아보라고 했잖아!”
“이게 내 잘못이야? 왜 나한테 소리를 질러?”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거 하나 못 보고 뭐 하는 거야!”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렇게 된 거야?”
“그럼 지금 이게 내가 잘못한 거야? 자기가 알아서..”
“알았어. 다 내가 잘못한 거야. 내가 알아서 할게. 그만 끊어!”
찬혁은 어찌할 줄 을 몰랐다. 길거리에 나가앉을 은미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느라, 한동안 땅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김 반장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거기 앉아서 뭐해요? 일 안 해요?”
찬혁은 순간 피가 거꾸로 치솟는 기분이 들었다.
“갑니다.. 가요.”
“시간만 나면 쉴 생각만 하네.”
“간다고...”
“어서 가서 원료 준비해 놔요.”
그 순간 찬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김 반장에게 걸어갔다. 그러고는 김 반장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자! 이거 받아!”
김 반장의 손위엔 작업용 장갑이 놓여 있었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찬혁을 바라보았다.
“지금 뭐 하는 거요?”
“보면 몰라요? 때려치우는 거지.”
“뭐? 지금 뭐 하자는..”
“됐고! 혼자서 잘 해봐요.”
찬혁은 망설임 없이 돌아서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참, 그리고 한 가지! 앞으로는 뒤끝 없는 사람이라고 자랑하지 마세요. 본인 하고싶은 대로 다 하면서, 혼자 뒤끝 없다고 자랑 하는건 이기적인 인간이거나 정신병자 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렇게 찬혁은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뱉어 낸 후, 짐을 싸기 위해서 숙소로 향했다. 김 반장은 장갑을 거머쥔 채 멍하니 찬혁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찬혁은 서둘러 경차에 짐을 모두 싣고서 공장을 벗어났다. 그 순간, 걱정보다는 오히려 족쇄가 풀린 듯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멀어지는 공장을 보면서 골목을 돌아나갈 때였다. 누군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놀라서 급하게 차를 세웠다. 눈앞에 보이는 건 바로 기명이었다.
“너 이 자식.”
찬혁은 차에서 내려서 기명이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았다. 그러자, 기명이는 멱살을 잡힌 채 찬혁을 바라보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어디가? 올라가려고?”
“그래 이 새끼야. 네가 저주했던 대로 지금 전부 망하게 생겼다고!”
“저주라니. 난 그런 거 못해! 그리고, 내가 주의를 줬잖아. 하기야 운명이란 것이 피한다고 피해지는 건 아니지만..”
“뭐라고? 이 자식아 재밌냐?”
찬혁이 기명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기명이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얼굴에 주먹을 맞고 쓰러졌다. 그러고는 이상하게도 일어날 생각도 없이 쓰러진 상태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꼭 올라가야겠어?”
“그래 임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더 이상 후회할 짓은 안 할 거야!”
“너! 내 말을 안 믿는구나? 안타깝네.”
“너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믿어!”
“나 때문이라고? 난 미리 말해준 것뿐이야. 지금 올라가면 난 더 이상 네게 해줄게 많지 않아!”
“됐어! 네 도움 따위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
“필요 없다고? 그렇지 않을 텐데..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올라가지 마! 네가 고속도로를 타는 순간 난 더 이상 너를 지켜줄 수가 없어!”
“필요 없다고 이 새끼야!”
찬혁이 차에 시동을 걸자 기명이가 일어나서 찬혁의 팔을 잡았다.
“이렇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간다면 어쩔 수 없지 운전 조심해. 그리고 휴게소에 도착하면 로또를 확인해 봐. 절대로 운전 중에 보지 말고 휴게소에서 봐야 해 알았지?”
찬혁은 기명이의 팔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힘껏 악셀을 밟았다. 경차는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점점 기명이와 멀어진 후 익산을 벗어났다. 몇 분 후, 서해안 고속도로에 진입한 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로또용지를 찾기 위해서 오른손으로 가방을 뒤적거리자, 손끝에 바스락거리는 종이가 만져졌다. 질감과 크기로 느껴지는 것이 바로 로또용지임을 알 수 있었다. 찬혁은 잊고 있었던 로또번호를 곧바로 맞춰보고 싶었으나, 기명이의 신신당부가 신경 쓰였기에 첫 번째 휴게소로 달려갔다. 늦은 오후의 서해안 고속도로는 비교적 한산했으나, 하늘에는 곧 비라도 내릴 듯이 검은 먹구름이 서서히 하늘을 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