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cker.

듀란듀란과 일렉트릭 베이스.

by 글싸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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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영웅들이 탄생했고 사라져갔는가. 현재 우리 주변에는 담배연기 자욱한 소규모 공연장의 아우성과 울부짖음, 어두운 작은 모퉁이의 카페 구석에서의 중저음의 사운드와 몸부림, 새벽이 되어서도 식을 줄 모르는 주황색 포장마차 천막 사이로 들려오는 혈기왕성하고 반짝이는 눈빛을 가지고 있던 광인들의 열정적인 음악 논쟁.... 이제 이런 풍경들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너무나 눈물 나도록 그립다.

이제는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아니 전설이 되고 별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영웅들을 기억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락음악을 연주하며 생활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도 지금도 어디에선가 꿋꿋이 옛날의 그 찬란하고 눈이 시리도록 빛났던 영웅들의 시대를 재현하려 노력하는 젊은 락커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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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화.

듀란듀란과 일렉트릭 베이스.


1980년 봄 햇살이 따스한 서울에 한 남자 고등학교. 왁자지껄한 쉬는 시간 옷차림부터 남다른 여럿의 무리들이 학교 뒤편 쪽으로 부리나케 뛰어간다.

"야 어서 꺼내봐. 시간 없단 말이야."

"자식 성질 더럽게 급하네 자, 여깄다."

일명 날라리라고 불리는 친구 녀석의 재촉에 나는 필통 속에 숨겨둔 담배를 꺼내서 건네준다.

"야 몇 개 있어? 끝나고 피울 건 있지?

"야 인마 내 거밖에 없어... 돛대야."

"아놔 이 새끼 치사하게."

녀석은 한대 칠 기세로 주먹을 움켜쥐고는 때리는 시늉을 한다. 사실 여분의 담배는 있었지만 허구헌날 나한테 빌붙는 녀석이 꼴 보기 싫어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렇게 쥐새끼처럼 둘은 가슴을 졸이며 숨어서 담배를 피워댔다. 두어 모금 담배를 빨고는 휴~하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빚을 감당하기 힘든 부모님 때문에 우리 가족들과 며칠 전 아침에 헤어지고 나서 친구들 집에 하루나 이틀씩 잠자리 구걸을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져서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졌기에오늘은 어디서 자야 할지 어디 가서 끼니를 때워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사실 학교도 다니지 못할 형편이지만 어찌어찌 해서라도 고등학교는 졸업하라는 부모님의 당부로 인해 형과 누나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학교는 다니게 도와주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공부가 머리에 들어 올리는 만무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을 잡을 수도 없거니와 결국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까지 하게 된 것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매일 거지같이 구걸이나 하고 다니는 처지가 너무나도 억울하고 창피했다. 부모님이나 형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걱정도 되었지만 지금은 오늘 당장 끼니와 잠자리가 급하다 보니 그런 걱정 꺼리는 머릿속에 오래가질 못하였다. 그때였다. 둔탁한 파열음이 들리자마자 눈앞이 하얗게 보이질 않았고 기절할 듯이 다리가 후들거렸으며 이윽고 뒤통수에서 깨질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아!.... 욱!"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내 뒤에는 입을 꾹 다문 채로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우리 둘을 쳐다보는 담임선생인 일명 살모사가 절반 정도 자른 당구 채를 곧추세워들고 있었다."이노무 자식들이 둘 다 따라와!"

학교에서 블랙리스트로 명단에 올라서 크고 작게 사고를 친 이력이 있어서인지 우리 둘은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올 게 왔을 뿐이라는 이상한 적응력으로 담담하게 체육 선생님 겸 담임선생님인 살모사를 마지못해 어기적 어기적 거리며 따라갔다. 복도를 지나가자 홍해의 기적을 보듯이 복도 가장 가리로 갈라서서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며 우리를 보고는 키득거린다. 재수 없는 놈들... 재수 없어서 들켰을 뿐 저놈들 중 일부도 흡연자들인데 자기들은 운이 좋아서 안 걸렸고 우리는 재수없어서 걸렸기에 고소하다는 표정이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우리를 쳐다보는 선생님들이 한마디씩 한다. 매번 듣는 소리지만 늘 똑 같다. 레퍼토리가 바뀌지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뒷짐을 지고 고개를 숙인 우리 둘을 책상 옆에 세워두고 살모사가 성난 공룡처럼 한숨을 코로 내뿜으며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이 연설도 저번에 듣던 내용하고 다를 바 없다. 조금 다른 점은 요번에는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것이었다. 내 옆에 있는 놈은 집안이 부유해서 나보다 사고를 많이 쳐도 상관없는듯 하였다. 대충 합의금이나 선생님들에게 용돈 봉투 정도로 무마가 가능하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나였다.

담임선생님은 아직까지 나의 집안 형편도 모르고 있었고,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살모사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모르겠는지 유독 나에게서 더욱 따가운 시선을 떼지를 못하고 있었다. 내 기억에 살모사는 봉투를 바라고 부모님을 오시라고 한 것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기에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는 불량학생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생각이 들자 구토가 올라올 것 같은 역겨움이 속에서부터 차올랐다. 사실 학부모에게 봉투를 받는 선생들 몇몇은 학생들이 이미 알려진 사실이기에 놀랍지도 않았다. 그런 봉투를 줄 수 없는 형편인 나는 그런 부도덕함에 합류하지 못함이 억울할 뿐이었다. 살모사가 명명한 일명 채벌을 위한 잘라진 당구채로 몇 대 맞고 복도에서 한 시간 정도 무릎 꿇고 손들고 죄의 댓가를 치렀다. 학교에서의 정규 시간이 끝나고 말 같지도 않은 자율 없는 자율학습 시간이 되었다.

낮에 담배 사건으로 인하여 살모사는 우리 둘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기에 땡땡이는 엄두도 못 냈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책상머리에 붙어있어야만 했다. 랜덤으로 복도를 지나가는 당직인 살모사로 인하여 맘 편히 잘 수도 없고 떠들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카세트 플레이어를 틀거나 라디오를 듣기 위하여 이어폰을 귀에 꽂는것도 허용이 안되었다. 그러나 나라는 인간은 그런 것에 굴복하지 않았다.

© bubbyman, 출처 Unsplash


어릴 적 강남 8학군 출신에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이 무우밭 이었을때 부터자란 강남 토박이인 나는 짜장면 값이 5백원짜리 지폐로 지불하고 먹을 그 당시 돈으로 백만 원 하는 개인 과외를 할 정도로 부자였지만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인하여 지금은 잠잘 곳도 없는 신세인 것이다. 우리 집이 잘살고 반포 아파트에 살 때는 오지 말라고 해도 꿀 통에 달려드는 벌떼마냥 사과박스며 고기 선물 세트며 사가지고 오는 친척들은 지금 내가 하룻밤이라도 재워달라고 할까 봐 덜덜 떨며 귀신 보듯이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모 내 아파트 지하실 바닥, 아파트 놀이터 벤치 등에서 자야 했고, 운 좋은 날엔 친구 집에서 며칠을 자기도 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사정을 듣고 측은한 마음에 허락하신 친구 부모님들의 시선이 내 입장에서는 창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친구 집에서 잘 때는 밥이라도 챙겨 먹을 수 있었지만 공원 벤치나 아파트 지하실에서는 굶는 일이 더 많다. 돈이 없다 보니 라면 한 봉지를 4등분 하여 먹어야 하는데 한 끼가 스프를 뿌린 1/4조각이 전부다. 지하실과 벤치에서 흘린 눈물은 두려움과 서러움과 원망 그런 것들이다. 이런 환경에서 울며 잠들다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깨다가 잠들다가 이렇듯 제대로 잠을 못 자는 환경에서 유일하게 의지가 되는 것이 있었으니 새벽에 방송되는 음악 프로그램이다. 낮에 하는 일반 정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듣기 힘든 팝송을 틀어주어서 좋았다. 그러면서 락음악과 팝송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음악에 눈을 뜨고부터 어디서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처지인 나에게 위로를 주는 락음악은 유일한 취미이자 포근한 안식처 같은 존재였다. 내 형편에 카세트 플레이어를 살 돈은 없었지만 라디오만 가능한 조그만 라디오는 있었기에 그나마 이게 얼마나 다행이냐 하는 생각이었다. 그 뒤로는 이 조그만 라디오만 가지고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오늘도 자율학습시간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평소 듣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시간이기에 초저녁 음악방송을 들으려고 선생님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틀고서는 이어폰 꽂은 귀를 왼쪽 손으로 막았다. 마치 왼쪽 턱을 괴고 책을 보는듯한 모습을 만든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기발한 생각을 해낸 것이다. 그렇게 디제이가 떠드는 소리도 듣고 사연을 소개하며 신청곡을 들으며 자율학습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던 나에게 가슴이 뛰며 눈이 동그랗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왼쪽 귀로만 전해지는 사운드. 이퀄라이저나 성능 좋은 헤드폰 등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놀랄만한 음색의 사운드가 내 귀를 파고들고 내 영혼까지 구원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뭐야 이거 뭐야.... 무슨 사운드가 이렇지? 어떤 밴드야? 그리고 이건 무슨 악기 소리지?"


순간적으로 나의 모든 감각이 지금 귓속에서부터 나의 온몸을 녹여버리는 사운드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이미 나는 선생님에게 들키거나 말거나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었다. 음악이 끝나면 디제이가 밴드명과 제목을 말해줄 것이기에 초집중을 하면서 음악에 몰두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특히 굵직하면서도 매력적인 악기 소리에 넋이 나가버렸다. 음악이 점점 페이드아웃되면서 끝나갈 무렵 밴드명과 제목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에 꽂힌 이어폰을 힘주어 누르면서 눈을 질끈 감아서 집중한다.


"이번에 들으신 곡은 DuranDUran의 New Moon On Monday였습니다."


듀란듀란 뉴 문온 먼데이. 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 소리에 가까운 짧은 감탄사가 튀어나왔고, 귀에는 이미 다른 팝송이 흘러나왔지만 넋이 나간사람마냥 멍하니 정신줄을 놓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입구에서 망을 보고 있던 친구 녀석 덕분에 성실하게 자습을 하던 친구들은 빼고 나를 포함하여 그 이외의 다른 행동을 하던 녀석들은 마치 숲을 헤치고 지나갈 때 메뚜기나 여치 때들이 후두 득하고 날뛰는 모습처럼 일사불란하게 열공하는 모드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아니나 다를까 살모사가 눈만 빼꼼히 빼고서는 창문으로 쳐다보고 지나갔다. 오늘따라 저 살모사는 더욱 뱀같이 생겼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교실에 한바탕 살모사 소동? 덕분에 나는 제정신이 들었고 곧바로 주변 친구들에게 음악과 악기를 입으로 흉내 내며 무엇이냐고 탐문을 하기 시작했다. 베이스... 일렉트릭 베이스 기타였다. 그리고, 그룹명은 듀란듀란으로 영국 뉴웨이브 밴드라는 것과 베이시스트는 존 테일러인데 이쁘장한 미소년이라는 것에 힘주어 말하며 입술 한쪽을 삐죽 올리는 것을 보면 별로 달갑지 않음을 암시하였다. 마치 자신은 미소년이라는 것을 싫어하며 남자다움이 멋진 것이라는 역설을 표정으로 대변하는듯한 행동이다. 역겨웠다. 왜 음악을 외모로만 평가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일단 음악은 방과 후 공테이프를 사서 녹음을 하던지 리어카에서 파는 팝송 모음 테이프를 사든지 하면 되고, 베이스 기타라는 악기가 무척 궁금했다. 지금까지의 음악을 들으면서 굵직한 사운드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들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친구의 카세트 플레이어로 다른 팝송을 집중해서 다시 들어보았다.무엇인가 이상하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까지의 사운드가 안 들린다. 각 악기들의 매력적인 음색들이 또렷하게 들리면서 음악의 참맛을 느끼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것은 소믈리에가 와인을 감별할 때 그런 종류의 느낌과 비슷한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음악에 심취하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노래의 멜로디 즉, 보컬의 노랫소리나 가사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악기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으며 그저 멜로디 뒤편에서 들러리 같은 존재로만 인식하다가 뉴웨이브라는 새로운 장르의 밴드의 음악으로 악기에 대한 눈이 떠진 것이다. 그것도 일렉트릭 베이스 기타에 대해서 말이다.알 수 없는 희열과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으며 알 수 없는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일렉트릭 베이스 기타"라는 것을 먼저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오늘은 친구 경민이 내 집으로 가서 자기로 했는데 이친구 집에는 공테이프 녹음이 가능한 큼지막한 라이디오가 있어서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안듣는 성경구절이 녹음된 테이프밑에 화장지같은것으로 밀어넣거나 테이프로 봉하면 다른것을 녹음할수 있다.나보다 조금 작은 키의 경민이는 성남에 사는 다른 반 친구인데 순한 성격과 키는 작은 편이지만 대화를 하다보면 다른사람의 입장도 잘 헤아려주는 착한 친구다.오늘은 다행히 경민이의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시기 때문에 여러모로 횡재한 기분에 들떠서 경민이와 교문을 나서기 시작하면서부터 듀란 듀란 얘기로 또 밴드 얘기들로 대꾸하기 귀찮아하는 경민이에게 보물섬을 발견한 사람처럼 떠들어대며 함께 버스정거장쪽으로 걸어갔다.이런 순간이 훗날 나의 인생에 어떤 갈림길이 되는지도 모른체 마냥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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