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싸라기 Aug 30. 2022

비를 닮은 눈물. 15화.(마지막 화)

마지막 기도


15화 마지막 기도.


차가운 비와 비를 닮은 뜨거운 눈물이 얼굴에서 뒤섞이며 찬혁의 얼굴에서 흘러내린다. 



찬혁의 고통스러운 공장생활은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면서 흘러갔다. 휴가를 받으면 몰라도 언제 보게 될지 모르는 은미를 그리워하며 찬혁의 마음은 어두워졌으며 표정은 웃음을 잃은 목각인형처럼 무표정하게 굳어져갔다. 자고 일어나면 일하고 또 자고 일어나면 일만 하는 노예생활과 다름없는 찬혁의 일상은 아무런 낙도 없이 영혼까지 증발해버린 사람처럼 살아갔다.그나마 유일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일은 주말과 휴일에 잠시나마 통화할 때 들을 수 있는 전화기 속에서의 은미 목소리가 유일한 낙이었다.시간은 흘러 일한 지 두 달이 되는 7월이었다.장마로 인하여 안 그래도 무더운 작업 현장이 높은 습도로 인하여 찬혁을 비롯한 직원들은 지쳐만 갔다.그렇게 힘든 환경 때문에 신입 직원들은 며칠도 못 버티고 그만두기도 했지만 그래도 꿋꿋이 버텨낸 찬혁은 회사 간부들에게 칭찬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작업자에서 작업반장 보조까지 승격이 되었다. 말하자면 단순 작업자에서는 벗어난 것이다.이런 소식에 찬혁보다 은미가 더 반가워했다.

"자기야 정말 잘 됐다. 축하해."

"말 안 하려 했는데... 자기 안심하라고 말한 거야... 내 입장에서야 인천 못 가는 건 똑같은데 뭘..."

"그래도 자기가 잘 버티고 잘하니까 윗사람이 그렇게 승진시켜 준거 아니야?"

"승진까지는 아니고...."

"그래도....힘내...로또될꺼야.그러면 그때는 예전처럼 다시 잘 지내면 되지."

"그래... 그래야지 그것 말고는 자기랑 생이별밖에 안되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힘내자... 잘될 거야."

"알았어 고마워."

찬혁에겐 보잘것없는 변화지만 은미의 밝은 반응에 찬혁도 조금은 기분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며칠 후 목요일,

매주하는 일이지만 찬혁은 당첨자가 많이 배출됐다는 로또 판매점에서 로또를 두 장 샀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주님 도와주세요."

그런 기도의 응답인지 기적이 일어났다. 장맛비가 장대같이 내리던 토요일 저녁 8시까지 근무를 마친후 샤워를 마친 찬혁은 간절한 마음으로 QR코드를 사용하여 로또용지를 가져가 대었다. 늘 그렇듯 마음속으로 여섯개 번호가 가로로 뜨는 것을 상상하며....

1등 당첨!!!

평소에는 당첨되는 상상을 할 때는 소리를 지르며 난리 법석을 떨 것으로 상상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입만 벌어질 뿐 입 밖으로는 아무런 소리가 나오지를 않았다. 자신의 경차 안으로 뛰어들어가서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다가 

이내 큰소리를 질렀다. "이야~~~~"

은미가 떠올랐다. 바로 알리려고 전화를 들다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차에서 내려서 기숙사로 들어가서 중요하고 필요한 짐만 챙기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그렇다 전화를 안 하고 바로 인천으로 가서 놀래주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얼마나 놀랄까, 얼마나 좋아할까... 놀라고 좋아할 은미의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신났다. 드디어 그녀가 원하던걸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찬혁은 몇 개월만에 자신의 웃음을 찾았다.

"주여 감사합니다.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거센 비가 내리치고 있었지만 그런 장맛비마저 축복이라고 생각이 들었으며 빗소리는 음악처럼 들렸다.

계기판을 보니 차에 기름이 부족했다. 인천으로 가려면 가득 주유를 해야 한다.

찬혁은 가까운 주유소에 들려서 주유를 한다. 주유를 하는 중에도 꿈인지 생시인지 볼도 꼬집어보고 

당첨된 로또용지도 다시 확인한다.1등 당첨이 확실히 맞다.

아직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악셀을 힘껏 밟는다.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늦은 시간인데다가 장맛비까지 내리기에 고속도로엔 차들이 별로 없었다. 제한속도가 110인 도로이지만 빗길이라 찬혁은 들뜬 기분을 억지로 자제해가며 속도를 줄여서 운전을 한다.

그렇게 들뜬 기분으로 달리고 달려서 시흥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여전히 고속도로 합류지점인 이곳은 점점 차들이 늘어나면서 속도도 줄어들고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찬혁은 그것이 다른 날과 달리 크게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평소처럼 궁시렁대지는 않았다.

"가자 빨리 가자 나를 막지 마라 하하."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리고 있었고, 무료한 시간을 라디오에 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비가 오기 때문에 DJ들도 비 내리는 배경이나 비를 주제로 한 가사가 나오는 곡들로 선정했다. 그중에 찬혁이 좋아하는 음악인 Guns  N' Roses의 "November Rain"이 흘러나왔다. "When I looking into your eyes I can see a love restrained~"

예전에 많이 듣던 곡이라 탄성을 지르면서 큰소리로 따라 부르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렇게 빗소리와 어울리는 팝송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와 피아노 선율에 젖어서 차창밖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바라보며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일 때였다.

"쿠..... 쿠 쿵!! 쿵 쿵 쿵...!!!"

찬혁의 몸이 갑자기 뒤로 젖혀지는가 싶더니 그 반동으로 다시 앞의 핸들 쪽으로 숙여졌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지만 고개가 앞으로 꺾이는 동시에 목이 꺽이면서 통증도 느낄 겨를도 없이 핸들이 가슴을 짓누른다. 순간 엄청난 가슴 통증을 느끼는 순간 거세게 내리는 빗물이 차 안으로 들어온다. 이 모든 순간이 10초도 걸리지 않은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커....커억...헉...헉헉."

빗길에서 서행하던 찬혁의 차량 행렬 뒤로 트럭이 서행하는 차량 행렬을 미처 보지 못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연쇄 추돌을 하면서 찬혁의 경차가 앞뒤로 샌드위치처럼 끼어버린 대형사고가 난 것이다.

목과 가슴에 심한 통증과 함께 입안으로 짭조름하면서 비릿한 냄새가 역겨울 정도로 올라와서 코와 입으로 흘러내린다. 핸들에 가슴이 눌리면서 갈비뼈가 골절되어 폐를 찌른 것이다. 목구멍으로 역류한 피가 질식할 정도로 계속 올라왔을 때 찬혁은 본능적으로 은미를 떠올렸다.

"아...... 안돼... 안돼 안돼!!!"

입안에 가득 찬 피 때문에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입모양만 계속 우물거리는 상태였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한 가지 생각만 했다.

"로또용지를 은미에게 전해줘야 해. 힘을 내자."

찌그러진 차 안으로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으며 구슬픈 팝송은 애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찬혁은 입으로 연신 검붉은 피를 뱉어내며 흐릿해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켜고 은미 연락처를 찾아낸다. 그리고 전화를 연결하고 은미가 받는다.

"안녕? 오늘도 수고가 많았어."

"큭....흑...어...안녕?"

"어... 자기야 어딘데 이렇게 시끄러워? 밖이야? 아직 안 끝났어?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큭....크 아니... 야. 시간이 없으... 니까 내가 하...는 말. 잘...큭..잘들어."

"왜 그래? 어딘데? 어디 아파?"

"흑.... 아니야... 후~목이 좀 아파서...큭."

찬혁은 자꾸만 입에 고이는 피 때문에 말을 연이어서 하기가 힘들었다.

"후..... 아.. 크 은미야... 나중에 누군가에게....후..흑,전화오면....놀라지..말...고 꼭 꼭 내 휴대폰을 꼭 찾아서... 윽... 받아... 꼭 그리고 ....으... 카드 넣는 곳에 자기 주려고..... 흑.. 선물 넣어... 놨어. 알았지?

찬혁은 말을 마치자마자 점점 숨이 가쁨을 느끼고 자꾸만 정신이 흐릿해진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은미가 다급하게 묻는다.

"은 미야..... 흑흑.... 정말 사랑했어.. 흑 크큭... 그리고... 정말 미안해... 나를.... 용서해 줘.... 그리고 꼭...후아후아...교회다녀 알았지? 고마웠어...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 이쁜 봉봉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찬혁의 힘없는 손에서 휴대폰이아래로 떨어진다.

휴대폰에서는 뭔가 잘못됨을 감지한 은미가 울며 계속해서 찬혁을 부른다.

"자기야.... 여보야..."

찬혁은 겨우겨우 힘을 내서 휴대폰을 집어 들고 휴대폰 케이스 뒷면 카드를 넣는 곳에 1등 당첨된 로또용지를  접어서 끼워 넣는다. 그러고는 혼잣말을 한다.

"그래도 다행이야... 이렇게라도 전해줄 수 있어서 이렇게라도 내 할 일을 다할 수 있어서... 남편 자격을 이제야 마치고 떠나는구나...."

이때 구조대가 도착하고 찬혁의 차 문을 뜯어내고 찬혁을 끄집어내려 하지만 찬혁은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 크.. 윽.. 퉤! 아니요.. 아니... 다른 사람 먼저구..해 주세요...전 잠시 이대로 좀....있을..게요."

"안돼요 지금 위험해요 빨리 이송하셔야 해요."

구조 대원이 다급하게 움직이며 말한다.

"잠시만요...잠...시만..큭 크윽."

찬혁은 계속 고집을 피우며 손사래를 친다.이미 틀린 걸 알기에 혼자 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집을 피우다 보니 구조 대원도 버럭 하며 일단 다른 곳으로 뛰어간다.

빗물과 피로 범벅이 된 찬혁의 몸에 비가 세차게 내린다. 찬혁은 몸이 나른해짐을 느끼며 생각한다.

"다행이야... 이렇게 울어도 비가 씻어주니... 나중에 은미가 보더라도 내가 울며 떠난 걸 눈치 못 채게 돼서 다행이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소원을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이제 고단한 몸을 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미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 곁으로 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런 믿음도 감사합니다."

비는 더욱 거세게 찬혁의 몸과 얼굴을 적셨고, 찬혁은 기쁨과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며 옅은 미소를 흘린다.그리고는 하늘과 주변을 둘러본다.비내리는 하늘과 평소에는 못느끼는 평범한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은미야 안녕.... 행복해야 해 반드시... 못난 남편은 이제야 벌을 다 받고 이제 좀 쉬러 갈게 사랑해"

차가운 비와 비를 닮은 뜨거운 눈물이 얼굴에서 뒤섞이며 찬혁의 얼굴에서 흘러내린다. 찬혁은 마지막 힘을 내며 휴대폰을 겉옷 안주머니에 꽂아 넣는다.그리고는 찬혁의 팔이 힘없이 옆으로 떨어진다.

찬혁은 인천으로부터 한 시간 거리를 남겨두고 그렇게 그리워하던 집과 은미에게는 가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고 만다.

비를 닮은 눈물 끝. 

작가의 이전글 비를 닮은 눈물 14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