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축제 와 헤비메탈.
제2 화.
고교 축제 와 헤비메탈.
양철판에 금속성의 물체가 부딪히는 소리와 유리그릇들이 맞부딪치는 소리들로 인하여 아득한 혼돈 속 무의식에서 깨어나는 미라처럼 몸이 깨어나기 전에 눈꺼풀이 먼저 스르륵 떠졌다. 부지런한 녀석...
경민이가 학교 갈 채비를 마치고 아침을 챙겨 먹기 위하여
중앙에는 자주 빛깔의 알 수 없는 장미 같기도 하고 국화 같기도 한 꽃과 나비 그림이 그려져있는 얇은 양철로 된 둥근 밥상에 반찬이 담긴 그릇들을 분주히 가져다 나르고 있었다. 시큼하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은, 오히려 어금니 부근 어딘가로부터 짜릿하게 자극을 주어 군침이 돌게 만드는 묵은지. 적당한 붉은 고추기름이 감도는 똥을 따낸 멸치볶음.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바다 내음을 품은 감칠맛 나는 짭조름한 미역줄기 볶음. 나는 이 중에서도 오도독 씹히면서도 짭조름하며 매끈하고 먹을수록 끌리는 미역줄기 볶음이 좋았다. 식당을 운영하시는 경민이 어머님이 자주 하시는 반찬인데 언뜻 봤을 때 다진 마늘과 식용유 말고는 별다른 양념은 보이지가 않는데도 자꾸만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부스스한 몰골로 엉금엉금 기어서 밥상에 앉아있으니 경민이가 라면이 담긴 냄비를 마치 마술사가 등장할 때 스모그를 헤집고 나타나듯이 김을 가르며 냄비를 들고 온다.
"안성탕면이구나 난 이라면 이 좋아. 맛도 없는 건더기 스프도 없어서 입에 걸리는 것도 없이 솔직 담백한 맛이랄까? 게 다 가 국물 맛이 다른 라면이랑은 달라."
고등학생이 담배를 피울 정도면 술은 안 마셨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안성탕면을 좋아하는 만큼 이것을 안주 삼아 술도 제법 마신 우리다.
"그래그래... 알았어. 빨리 먹기나 해 늦을지도 몰라. 먹고 빨리 가자."
"아이씨 학교 가기 싫다. 학교 가면 또 살모사가 못살게 굴 텐데... 공부할 맛도 안 난다."
투정을 부리는 나에게 라면 국물을 냄비째로 후루룩 마시던 경민이가 힐끗 쳐다보며 말한다."어제는 그렇게 음악에 대해서 밤늦도록 열변을 토하더니 그새 식은 거냐?""야 야 그거랑 별게 문제지... 학교 때려치운다고 음악을 못하냐? 오히려 더 잘할 것 같은데."미역 줄기 볶음을 한 움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툴툴거리는 나에게 경민이는 동냥하듯 말을 내뱉는다.
"그러면 때려치우던지... 그런데 때려치울 때 때려치우더라도 다음 달에 열리는 학교 축제나 즐기고 가라."
"학교 축제? 우리 학교도 그런 걸 다 한데? 웬일이래 그런데 왜 난 몰랐지?"
"너 어제 살모사한테 잡혀서 교무실에 있을 때 방송반에서 안내방송해주던데."
"그럼 다른 여학교에서도 온다던?"
"그런 거 같던데... 그것도 두 군데에서... 우리 쪽에서도 몇 팀 가고.""오.... 그래? 끝내 주는데."
다시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내 모습에 경민이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웃는다.
"야 너는 잘 곳도 없어서 이난리인데 여자애들이 눈에 들어오냐?"
"야 인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내가 눈 인상으로 쏘아붙이며 밥상 옆에 놔두었던 식은 밥이 들어있는 양푼 그릇을 집어 들자 경민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야 밥 말아 먹을 시간 없어 빨리 가자."
"안 먹을 거면 왜 꺼내 놓은 건데?"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됐잖아."
"기다려봐 잽싸게 먹어치우면 돼."
나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밥을 라면 국물에 던져놓다시피 하고는 숟가락으로 꾹꾹 눌렀다가 휘휘휘 젓자마자 국물 마시듯이 라면에 말아져있는 밥을 마셔버렸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먹는 것에 대한 예민함은 어쩔 수가 없는듯했다. 못 먹을 때를 대비하여 먹어둬야 한다는 남들에게는 없는 후천적 습식 장애 같은 것이리라.
"하여튼 대단해 우리 집식구들의 식사량의 딱... 두 배라니까."개걸지 게먹는 모습을 감탄하는 경민이가 마음이 급한 듯 신발을 신는다. 마지막에 먹은 사람이 밥상을 치우는 것을 서로 약속을 한 적은 없지만 늘 그래온 것처럼 주방으로 밥상을 나르며 경민이를 부른다.
"야야 내 토큰 있지?"
"나중에 안 갚기만 해. 다 기억하고 있다."
"쩨쩨한 놈 나중에 몇 배로 갚는다 됐냐?"
"얼른 나와 늦었어."
부리나케 가방을 챙기고 버스 정거장으로 걷듯이 뛰어가는 경민이 뒤를 따라간다.
늘 그렇듯 담배의 중독성도 이유겠지만 하지 말라는 것을 더할 나이라는 이유도 한몫하는 것처럼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일당들의 아슬아슬한 탈선은 학교의 구석진 모처에서 늘 벌어지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곳에 항상 끼어있었다. 탈선하는 아이들은 각자의 이유가 있었지만 나 또한 핑계가 있었으니 그것은 파산 때문에 벌어진 가족과의 헤어짐, 그로 인한 외로움과 불안감이라고 나의 상태를 스스로 정의하고 있었다. 오늘은 다행히 살모사한테 들키지 않았다. 살모사가 바쁜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사악한 의도인 강자가 베푸는 호의쯤으로 생각해야 할지 어쨌든 무리들은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듯했다.
"이번 축제 때 밴드가 나온다며? 우리 학교에 밴드부 있냐?"
"밴드부는 없고 3학년 선밴가 밴드를 만들었는데 그 밴드랑 우리 2학년에서 하나 나온다 했는데 멤버를 다 못 구한 거 같아 특히 베이스를 칠 사람이 없다고 하던데..."
다른 무리들의 대화 속에서 유독 두 사람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뒤를 돌아보니 누가 봐도 날라리 같아 보이는 녀석 둘.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몇 안 되는 녀석들 중에 두 놈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다가가자 그둘은 눈을 째려보듯 옆으로 보면서 의기양양 하면서도 허세 가득 어색한 어깻짓으로 경계하듯한 태도를 보인다.
"혹시 그 2학년 밴드 말이야. 리더가 누군지 아니?"
평소 친하지 않지만 오며 가며 라이터 정도는 빌려준 녀석들이라 말을 붙일 수 있었다.
"왜? 악기 좀 다루냐? 웬만해서 힘들 텐데... 축제날 호흡 맞추려면 어지간한 실력 아니면 힘들걸? 게 다 가 빡센 곡이 한 곡 있어서."
둘 중에 머리를 아세톤으로 탈색한 녀석이 아까보다 좀 더 과장된 어깻짓으로 으스대며 관상 좀 볼 줄 아는데 너는 힘들겠어 하는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옆으로 삐딱하게 뿜어내며 무시하는 어조로 내뱉는다.
"어? 어... 뭐해보면 되지 누군데 이름만 얘기해 줘."
"아서라... 우리 반에 베이스를 원래 치던 애도 합류하려고 합주하다가 관뒀어. 물론 합주 시간이 안 맞아서 그렇다지만 사실 레퍼토리 세곡 중에 한 곡 때문에 그렇거든... 명곡이라..."
"어느 밴드의 무슨 곡인데?"
"너 레드제플린이라고 아냐?"
"......."
"헤비메탈은? 너 모르는구나? 그럼 힘들어."
"듀란듀란은 알아."
나의 아는 체로 인하여 그 둘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만 작았지 표정 자체는 박장대소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계집애 같은 음악을 어디에 명함을
갖다 대는 거냐?"
"계집애?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왜 선입견을 갖고 보냐?"
"야야 넌 헤비메탈을 먼저 들어봐야... 아니 아니 레드제플린 먼저 들어야 하겠다.
그렇게 좁은 음악성으로 어떻게..."
노란 머리는 아까처럼 의기양양하며 무시하는듯한 어깻짓으로 담뱃불을 끄며 뒤돌아서서 동냥하듯 한마디 내뱉고 간다."2반 이과반에서 철이를 찾아가 봐 말이 통할지는 모르지만..."
위장부터 식도에 이르기까지 왠지 모를 분하고 창피하며 분노 같은 것까지 치밀어 올랐다.
"개새끼들 지들은 뭐가 대단해서... 레드제플린? 그게 다 뭐라고 뭐 대단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다고."
나는 그런 이유로 담배 끝을 송곳니로 깨물듯 물고서는 연달아 두 번 빨아재낀다. 찌릿하면서도 자극적인 검은 타르의 쓴맛이 침샘을 자극한다.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끄고 담벼락 뒤로 넘기고는 교실로 향한다.
이과반에 있는 철이를 만나기 위해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미리 해치웠다. 철이는 경민이 와도 조금 아는 사이였다.얼굴은 적당히 남자답게 생겼으며 중학교 때 야구를 해서인지 체구가 크고 단단했다.
"니가 철이니?"
나의 갑작스러운 방문과 질문에 의아스러운 눈빛이다.
"응 왜?"
"혹시 이번 축제 때 네가 밴드를 한다고 들었는데 같이 할 수 있을까 하고..."
나의 예기치 못한 등장과 제안에 작은 눈이 조금 커진듯하다가 살짝 미소가 흐른다.
"그래? 무슨 악기? 락이나 메탈 좋아해?"
"아니... 이제 하면 되지... 난 듀란듀란이 좋더라."
철이는 아까보다 좀 더 크게 미소를 짓는다. 역시 이놈도 똑같은 놈이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래... 듀란 듀란도 좋지 그런데 그런 음악은 보기보다 쉽지 않아.. 뭐 어떤 음악이든 마찬가지지만."
아세톤으로 탈색한 노란 머리보다 그래도 인간미는 있는 놈처럼 느껴졌다.
"악기는.. 정했고?
"음... 그게... 베이스가... 어떨까 해서."
"베이스... 지금 공석이라 필요하긴 한데 우리가 하려는 레퍼토리가 초보자가 하기엔 좀 무리일 것 같은데."
살짝 고개를 숙인 철이는 고민을 하는듯했다.
"악기도 없지? 악기도 없고 초보에다가.... 음..."
왠지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 괜한 짓거리를 하나 싶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물러서지 못하게 누군가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 내 뭔가 결심을 한듯한 철이가 말을 한다.
"좋아.. 어차피 우리도 급하고 안되면 그때 가서 내가 베이스를 치고 기타를 구하든지 하면 되니까 기타는 구하기 쉬우니까.... 베이스는 우리 집에 연습용 베이스로 하고... 너 끝나고 우리 집에 가자. 일단 해줄 말도 있고 음악도 듣고 레퍼토리도 악보도 줘야 하니까."
뜻밖이었다. 되면 좋겠다 싶었지만 막상 밴드 멤버가 되고 나니 겁이 나기 시작했다. 비록 축제 때문에 뭉친 일시적인 멤버지만 나에게는 큰 사건이었다.철이는 이과반에서 성적이 중간쯤 했다. 그렇다고 모범생은 아니었으나 나보다는 성적이 좋았다. 그런 녀석도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집에 가서 알게 되었음에 놀랐고,
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LP 판을 보고 두 번 놀랬으며 TV에서나 봤었던 전자기타를 실물로 가까이서 보고는 세 번 놀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전축의 양쪽 스피커에서 크게 울리는 처음 듣는 음악에 기절할 뻔했다.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e"
천둥 같은 드럼 소리
마법사의 지팡이에서 나오는듯한 기타 소리,주문을 외우는 마법사 같은 노랫소리
모든 사운드의 뒤편에서 지긋이 지원사격하는듯한 베이스 소리....
놀라웠다. 생전 처음 듣는 사운드. 이것은 음악이라기보다 천상의 그 무엇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형용하기 힘들었다.
"우리가 할곡은 세 개야... 그중에 하나가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이야. 들어봐... 그리고, 레퍼토리는 아니지만 너의 음악성을 위해서 요즘 내가 듣는 음악도 틀어줄게. 녹음도 해서 줄 테니까 시간 나는 대로 듣고 음악 하려면 독서하듯이 여러 음악을 꾸준히 들어야 해."
stairway to heaven이 끝나고 Black sabbath의 heaven&hell, M.S.G(Michael Schenker Group)의 Armed and ready 등등
이날 저녁 난 새로 태어나는 느낌 이었고 감동과 환희는 어떤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