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cker 3화.

베이스 기타와 첫 합주

by 글싸라기

3화 베이스 기타와 첫 합주.


나는 그날 이후 철이 내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집에 들어오면 온통 음악 얘기와 음악 감상에 빠져 살았고, 그런 핑계로 술도 자주 마셨다. 예술가 흉내 내기에 불과하였으나 두 사람은 마치 락커가 된것마냥 자아도취되어 있었다. 나는 어느새 블루스 락과 헤비메탈에 심취하게 되었으며 외국락커들은 나에게 신적인 존재가 되어있었다.특히나 레드제플린의 존 폴 존스와 블랙 사바스의 기저 버틀러의 베이스 라인에 거의 미쳐있는 지경에 이르렀다."어쩌면 라인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지? 베이스라인이 기타를 받쳐주는가 싶다가 어느새 드럼과 어우러지다가 갑자기 뒤로 다시 받쳐주고.... 와 진짜 대단하다."나의 감탄과 멍한 모습을 보고 철이도 나름 흐뭇한 듯 미소를 띠며 팔짱을 낀 채 손가락질을 하면서 한곳을 가리켰다.

깁슨 일렉트릭 기타!!

길거리 악기 상점이나 TV에서나 본 적이 있는 기타를 직접 내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거 얼마나 해?"

"글쎄... 미국에 특별히 주문해서 석 달 만에 받은 건데 대략 우리나라 돈으로 4~5백 정도 할걸?"

"와.... 엄청 비싸네. 좋겠다 넌 이런 기타 도 있어서."

철이는 기분이 좋은 듯 시키지도 않은 연주를 시작한다.

앰프에 연결을 하지 않아서 크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녀석이 무슨 곡을 치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stairway to heaven의 앞부분 아르페지오 연주...

철이 녀석이 다른 사람같아 보였다. 마치 기타리스트인 지미 페이지를 본듯하였다. 그러자 궁금증이 생겨서 재촉하듯이 질문을 한다.

"이런 연주는 어디서 배운 거야? 악보 있어?"

연주를 하며 지긋이 바라보던 철이는 연주를 중단하고 일어서더니 책상 앞으로 다가간다. 그러고는 종이상자를 꺼내들더니 힐끗 쳐다보며 굳은 표정으로 주의를 준다.

"너 이거 어디 가서 이런 거 있다고 소문내면 안돼! 그리고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면 안 되고... 필요한 건 내가 복사해서 줄 테니 소중히 다뤄줘 알았지?"

나는 무엇인지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그러겠다고 빠르게 대답을 하고 새끼 새가 어미 새에게 먹이를 받아먹으려 주둥이를 빼는 것과 같이 고개를 빼고는 철이를 바라보았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고서는 꺼내든 것은 일본어가 잔뜩 적힌 악보와 잡지책 같은 것이었다.

"이건 내 생명과도 같은 소중한 거야 물론 구하기도 힘들었고 비싸기도 해. 물 건너온 거라서... 이 잡지 속에는 악보가 한 개씩 들어있는데 어디서도 구하지 못하는 희귀 악보가 있어.. 물론 레드제플린 꺼 까지도..."

레드제플린이라는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질문을 한다.

"그럼 베이스 악보도?"

"당연하지 그런데.... 너 악보 볼 줄은 알아?"

"아...... 아니."

"흠... 그래 뭐 악보야 보조수단일뿐이지 미국의 흑인 블루스 연주자들 대부분이 악보를 볼 줄 모른다고 하더라... 들은 얘기지만. 어쨌든 너 같은 사람을 위해서 일본에서 만든 타브 악보라는 게 있어 악보를 몰라도 연주가 가능하도록 만든 일종의 맹인들을 위한 점자 표 같은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오선지 대신 기타줄의 선을 나타낸 선위에 몇 번째 지판 위에 몇 번째 줄 이런 식으로 표기가 되어있어서 초보자들이 접근하기 쉬워. 대신 이런 것은 오래 사용하면 습관이 돼버려서 나중에 정말 악보를 못 보게 돼. 되도록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고 빨리 낮은 음자리표를 익히는 연습을 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외국 연주자들의 사진이 인쇄된 잡지책을 내 가슴에 얹어놓는다.

"고마워..."

조심스레 펼쳐진 잡지들은 신세계였다. 처음 보는 락커들의 연주 모습 일상 모습 등 희귀한 사진자료들이 있었으며 몇 장을 넘기다 보니 처음 보는 희한한 선이 그어진 악보 같은 것이 나타났다. 레드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

"stairway to heaven"

베이스 타브 악보였다. 갑자기 가슴이 크게 뛰었다. 다음 장에는 베이시스트인 존 폴 존스와 기타리스트인 지미 페이지가 나란히 연주하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베이스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건 얼마쯤 할까... 멋있네. 갖고 싶다."

철이가 잡지를 힐끗 보더니 무심하듯이 대답한다.

"펜더야... 일반적으로 그렇게 고가의 악기는 아닌데 저 사람이 쓰는 것은 오래전 거라 비싸겠지 더더욱 유명인이 들고 연주한 거니까 프리미엄이 더 붙을 거고.."

"그렇겠지...?"

철이는 갑자기 불쑥 일어나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더니 갑자기 먼지가 조금 낀 커다란 악기 가방을 꺼내온다.

"이거 오래전에 빌린 국산 베이스 기타인데 돌려줘야 하니까 잠깐 연습용으로 써라 좋은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 공연 정도는 커버가 될 거야."

깜짝 놀란 나는 베이스 가방의 지퍼를 내려보았다.먼지가 지퍼 사이에 끼어서 그런지 뻑뻑하게 지퍼가 잘 내려가질 않는다.처음으로 마주한 베이스 기타 비록 내 것은 아니지만 마치 짝사랑하던 여자를 만난 듯 황홀한 기분마저 들었다.번개 모양을 한 바디라인에 노란색과 검은색이 사선으로 그려진 전형적인 락 베이스 기타였다. 처음 만져본 베이스 기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두껍고 넓은 지판과 큼지막한 헤드 그리고, 호랑이 무늬 같은 색감과 저돌적인 번개 모양의 바디라인.무엇보다도 긴장을 하게 된 것은 스트링 두께였다.가볍게 왼쪽 검지손가락을 제일 굵은 4번 줄에 가져다 대고 눌러보았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을 줘야 겨우 눌려질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연주 하나하고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어정쩡하면서도 겁을 먹은듯한 내 모습을 본 철이가 빙긋읏으며 낚아채듯 네크를 잡아 쥐더니 베이스를 연주하는 시범을 보여준다. 저녀석은 도대체 못하는 게 무엇인가.

"너 잘 치네... 어떻게 연습해야 할지 도대체가 감이 안 잡히네."낙담하는듯한 말을 꺼내자 철이가 이번에는 영문 R자와 B자가 크게 적힌 베이스 교본을 꺼내어준다.

"베이스 교본이야... 기본기가 중요하니 이것으로 공부해. 음악도 공부야."

당연한 말이다. 오늘 너무 많은 숙제를 받은 것 같다. 들어야 할 음악에 악보에 기타와 교본까지...

기대와 흥분에 이어서 뭔지 모를 무게감이 엄습했다.

이어진 철이의 충고에 전쟁에 참전하는 군인처럼 긴장감에 몸이 굳어졌다.

"밴드가 합주를 할 때 다른 악기들은 실수를 해도 어지간해서는 잘 티가 안나 하지만 베이스는 근음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딱 티가 나지. 전체를 아우르고 받쳐주는 베이스 기타가 그래서 더욱 중요한 거다. 밴드의 모든 악기를 이해하고 앞으로 전개될 음악의 흐름을 리드하는 것도 베이스다. 명심해야 해."

그렇게 몇 시간을 음악과 베이스에 대하여 얘기를 하다가 어두워져서야 철이네 집을 나섰다. 어깨를 짓누르는 베이스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에 기분은 황홀했다.

"이번 주말에 요 앞 사거리 레스토랑 4층에 기타 학원이 있어. 그곳에 합주실이 있는데 그곳으로 와라. 연습 열심히 하고... 그날 멤버들을 만나게 될 거야. 레퍼토리 잊지 말고."

"그래... 고맙다."

무거운 베이스 기타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서 버스를 탔다. 워낙에 길고 큰 기타 가방에 버스 안에 승객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걸 알 수 있었다. 뿌듯했다. 나도 이제 락커가됐다.게다가 베이시스트다. 버스는 경민이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낭패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봤을 때부터 걱정인 베이스 기타의 굵은 줄이 문제였고 더욱이 1번 줄은 4번 줄보다 가늘었지만 그동안 만지지 않았던 1번 줄을 연습한답시고 주구장창 튕겨대다가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동그랗게 물집이 잡혀서 살짝만 건드려도 통증이 심했다. 게다가 왼 손가락 사이사이는 베이스 기타의 넓은 지판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쇠자로 내리치다 보니 벌겋게 부어있었다. 내일 합주해야 하는데 큰일이 난 것이다. 지금은 연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양쪽 손이 화끈거리며 아팠다. 그렇지만 이겨내야 한다. 나는 락커가 아닌가! 이 정도쯤은 이겨내야 락커라고 할수 있잖은가 말이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보니 이까짓 고통쯤은 별거 아닌 것 같이 느껴지면서 용기가 생겨났다.

"어쭈 이젠 제법 기타리스트 폼이 나는데?"

경민이가 커다란 베이스 기타를 붙잡고 씨름을 하는 나를 보며 칭찬반 장난반 삼아서 한마디 한다.

"멍청아 기타리스트가 아니고 베이시스트라고 하는 거다!"

그동안 조금 배웠다고 경민이한테 아는 체를 해본다. 이렇게 둘은 아웅다웅하며 시간을 보냈고 밤은 점점 깊어갔다.




수업시간이 왜이렇게 긴지 하루가 너무 지루했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합주 때 연주할 레파토리 연습 때문에 베이스 기타 넥의 1번부터 4번을 톱으로 잘라서 겉옷 주머니에 넣고 크로매틱 연습을 하며 교본과 악보를 계속 보았다. 수업 시간에 몰래 보는 것 때문에 선생님에게 압수당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압수는 하지 않았다.심지어 윤리 선생님 경우에는 딴짓을 하는 나를 발견하시고 잘려진 기타넥과 교본 그리고 악보를 보시더니 깊은 생각 끝에 "너의 진로를 이것으로 정했다면 내 시간만큼은 음악 공부를 해도 좋다."라고까지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놀라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나는 윤리 시간만큼은 눈치를 보지 않고 악보와 교본으로 맘 편히 음악 공부를 했으며 놀랍게도 모의고사 때는 다른 과목들은 점수가 형편없었지만 음악성적만큼은 90점 이상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고등학교 음악이론은 이제 나에게 너무나 가벼운 문제가 돼버렸다.서둘러 베이스 기타를 메고서 교실을 나서니 이미 정문 앞에는 철이와 처음 보는(사실 간간이 스쳐지나면서 보았던 친구들이었다.) 친구 둘이 같이 있었다.

한 녀석은 덩치가 좀 있었는데 드럼을 친다고 했고 한 녀석은 비쩍 말랐는데 보컬이라고 했다. 둘 다 나름 락음악에 일가견이 있는지 서로 지기 싫은 듯 밴드 이름과 연주자 이름 그리고 노래 제목을 나열하면서 이것이 좋다 저것이 더 좋다 하면서 열띤 논쟁을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어때? 연습 좀 했어?"

철이가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궁금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어? 어... 근데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서 어떻게 하지 아파죽겠다."

나의 손가락 상태를 본 세 사람은 별것도 아니라고 그런 것도 하나의 훈장이라고 떠벌리며 좀 있으면 그 자리에 굳은살이 생겼다 사라지면 다시는 물집이 안 잡힐 거라며 병 주고 약까지 주는 말들을 쏟아낸다. 이러저러 얘기들을 하다 보니 합주실에 도착했다.합주실은 생각보다 허름했다. 원래는 초보 내지는 취미 통기타 교습소인데 워낙에 수강생이 없다 보니 통기타 연습하는 공간 옆 작은방을 합주 실로 운영하고 있었다.

띵띵~퉁퉁~땅 땅 땅~~

각자 튜닝을 하느라 작은 공간에 넋을 빼놓을듯한 소음으로 가득 찼다.

어느 정도 각자의 워밍업이 끝나자 너 나 할 것 없이 볼륨을 높여서 자신이 좋아하고 개인기를 뽐내는 프리스타일 연주를 하느라 또다시 굉음에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리더인 철이가 나섰다.

"자자... 조용히 해봐 오늘은 베이스도 합류를 했으니 제대로 된 사운드를 좀 만들어보자. 시작은 약속했듯이 드럼이 스틱으로 카운트를 주고 한다. 알았지? 첫 곡은 몸도 풀 겸 빠른 곡으로 해보자 틀리더라도 그냥 쭈욱 끝까지 가자. 틀린 곳은 각자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다시 맞춰보고 안되면 개인 연습 다시 잘하고 오케이?"다들 고갯짓으로 응답을 한다.고갯짓 하던 두 친구의 눈빛이 아까와는 다른 모습이다. 순간 그 모습이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반짝거리는 별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딱 딱 딱~

드럼이 스틱으로 신호를 보내자 너 나 할 것 없이 악보대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마약을 투약하면 이런 느낌일까? 아니면 섹스를 할 때 느낀다는 오르가즘이 이런 걸까? 아니 솔직히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보다 더 강렬한 환희가 느껴졌다. 그리고 머릿속의 고통과 고민이 사라지고 무의식의 상태로 들어간듯했다. 정확히는 진공상태에서 아무런 감각도 고통도 없는 무아지경인 것 같았다. 행복했다.

서로 악기로 대화하듯 호흡과 연주가 맞아떨어질 때의 감격스러움이란....

나는 쫓아가기 바쁜 상태여서 내 연주에만 정신이 팔려있었지만 기타의 선율과 드럼의 리듬, 보컬이 부르는 노래는 두성으로 울려 퍼져서 순간 나의 골까지 띵하게 만드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점점 몰입하게 되었다.

짜 자 자 잔~짜자자자자잔~~~~

첫 곡이 끝나면서 깊은숨을 몰아쉰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미소를 띄운다.

중구난방... 우당탕 거리는 첫 곡. Loudness의 Like hell이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형용하기 힘든 우리들만의 첫 합주가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락 밴드의 시작을... 그리고 베이시스트가 탄생되었음을 이 작은 합주실에서 세상을 향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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