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cker 5화.

제5화 군악대 입대.

by 글싸라기


축제에서의 첫 무대는 개인적으로 큰 충격이자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아쉬움이 짙은 시간이었지만 그것과 맞먹는 크나큰 추억이자 연주자로서의 굵은 생채기 같은 기억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사실 좋은 것보다 실수한 것에 대한 후회의 기억이 더 많았다. 그러나 왜 그렇게 틀렸는지 왜 준비를 철저하게 못했는지를 오랜 시간 원인 분석을 한다는 것은 베이스 기타와 음악에 마음이 뺏겼다는 것을 나중에야 느끼게 됐다. 어쨌거나 후유증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멤버들도 오랜 시간 공연에 대한 얘기를 멈추지 못하였다. 시간이 흘러서 졸업식을 얼마 안 두고 모두 모였다. 10대들의 열정이 다들 그러한지는 모르겠으나 현실적인 목표가 없으니 연습량도 적어지고 점점 의욕도 잃어가는 모습이었다. 새로운 앨범이나 악보 얘기는 여전히 의욕적으로 얘기를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합주 시간도 줄어들었다.

음악으로 인하여 느끼지 못했던 나의 현실적인 부분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달콤한 꿈을 꾸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현실에서의 고달픔이 점점 깊은 고민으로 다가왔다.

결국 졸업식을 몇 달 남기고 나는 결국 무단결석을 하게 되었고 잠잘 곳과 먹을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경양식 레스토랑이나 숙식 가능한 술집에서 서빙 일을 하며 홀에 있는 소파에서 잠을 자야 했다. 내 곁에는 오랜 된 클래식 기타만 있었다. 클래식 기타는 플랫 간의 간격이 넓어서 베이스 기타 대용으로 연습하기 좋았다.

느지막이 레스토랑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시간에 가게 뒤편으로 기타를 들고 길가에 주저앉아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도시의 밤하늘에 비하여 별빛이 잘 보인다.

오로지 나만 알 수 있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크로매틱 스케일과 펜타토닉 스케일을 연주할 때였다. 멀리서부터 들리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리지만 누군지 알 것 같아서 애써 모른척하며 연주에 집중하는 척한다.

"오...베이시시트.열심히하네?"

철이가 연습하는 것을 보고는 대견한 학생을 대하듯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서서 지켜본다.

"왔냐?"

기타 지판에 눈을 떼지 않고 입으로만 대꾸하니 철이도 물끄러미 쪼그리고 앉아서 유심히 지켜본다.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며 고개를 살짝 들어 철이를 바라봤다.

역시 이놈은 음악이나 연주를 볼 때 눈빛이 달라지는데 그 모습이 또 보인다.

"너 지금 그 크로매틱 스케일 연습이 손가락 운동하는 거냐? 음과 음 사이의 박자가 절름발이잖아 안 맞아... 그렇게 연습하면 백날 해봐야 헛고생인 거야!"

순간 짜증이 났다. 아무리 많이 아는 철이지만 매 순간 지적질을 당하니 기분이 좋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라구...."

연주하던 손을 멈추고 힐끗 쳐다보면서 퉁명스럽게 대꾸하니까 철이도 눈치를 챘는지 애매한 미소를 띠며 옆에 앉는다.

"되도록이면 메트로놈으로 연습해... 나쁜 습관이 몸에 배면 나중에는 고치기 힘들어서 그래."

철이한테 기타를 던지듯이 맡기고는 한마디 한다.

"그럼 보여줘 봐."

철이는 기타를 받아들고는 튜닝을 해보다가 놀란 듯이 말을 한다.

"야야... 그거 튜닝도 안 된 거네..."

나는 순간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참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시비조로 그러는지 모르겠네."

"야! 너 도움 되라고 하는 말 아니냐..."

나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짐짓 놀라면서도 할 말을 하는 철이다.

사실 철이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학교 문제도 그렇고 하루하루 아슬하게 살아야 하는 신세가 이렇다 보니 예민해진 것이리라.

나는 입에 담배를 송곳니로 깨물듯이 씹어대며 말을 이어간다.

"그래그래... 어련하시겠어... 내가 못나고 까막눈이라 그렇지 뭐.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

"으이구...알았어.가자."

우리 둘은 철이 내 집으로 향했다.

"나 호주로 유학 갈 거야..."

철이의 느닷없는 말에 기분이 멍해졌다. 우리 둘은 공공연히 철이는 지미 페이지였고 나는 존 폴 존스였다. 끝까지 같이 음악을 하자고 했으며 다른 멤버는 없다고까지 다짐을 한 녀석이 멀리 간단다. 기분이 더러웠다.

"음악은 더 배울 게 없다... 음향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멜버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려고 해."

"언제 오는데?"

술이 반쯤 담겨있는 소주잔 테두리만 뱅글뱅글 돌리며 질문을 해본다.

"글쎄... 대략 4년쯤?"

소주잔의 술을 입으로 탁 털어 넣으며 한숨 섞인 말투로 툭 내뱉는다.

"그래? 잘 됐네... 근데 우리 밴드하기로 한 건 없던 일이 되는 거네?"

"기다려줄래? 그동안 너도 나름대로 성장할 것이고 우리가 더 성장해서 하면 되잖아."

"성장은 개뿔 내 주제에 무슨 수로..."

대화를 하면 할수록 속은 것 같아서 명치끝부터 뭔가 뜨끈한 것이 솟아올라서 못 참겠다.

"자식... 멀 또 그렇게까지..."

복잡한 놀이동산에서 엄마 손을 놓치고 멀뚱멀뚱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이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철이는 성격이 까칠하긴 했어도 음악적으로는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한 친구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최후통첩을 받은 후로는 음악도 생활도 시들해져갔고 나는 결국 졸업식에 참석을 못 했다. 정확히는 안 간 게 맞다. 다들 즐거운 마무리할 때 가족도 없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괴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담임선생님이 사정을 듣고서는 나의 졸업앨범을 보관하고 있고 언제든지 와서 찾아가길 바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 졸업앨범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10대는 끝나가면서 올게 오고야 말았다.

입영통지서.... 그것도 최전방. 이곳저곳으로 알아보니 연기 신청도 가능하다고 해서 일단 연기 신청을 했지만 그다지 많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 안에 공군을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형도 공군을 나온 것에 영향도 있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개월 수가 35개월이지만 매주 주말 외박이 가능하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였고 무엇보다 외출복이 멋져 보였다. 게다가 군악대라면.....

철이가 호주로 떠나기 전 몇몇 친구들은 같이 산에 올라가서 고기도 구워 먹고 평소보다 자주 만나서 술도 자주 마셨다. 철이는 군악대를 지원하겠다는 나의 말에 아주 반기는 표정으로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서의 멤버들은 각자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진학을 하고 취업을 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점점 연락도 뜸해지기 시작했고 철이도 엽서나 편지를 자주 보내다가 어느샌가 점점 뜸해졌다.

나 역시 군악대 실기시험에서 한번 떨어졌다. 맨날 하던 록 음악이나 헤비메탈 말고는 다른 곡을 연주해 본 적이 없으니 오죽했을까. 군악대의 캄보밴드는 주로 악보나 코드를 보고 경음악이나 소위 말하는 뽕짝을 연주해야 하는데 그런 쪽으로는 도무지 연주를 안 해봤으니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 시험에 떨어지면 더 이상 연기가 불가능해서 바로 육군 최전방으로 가야 했다. 절실하면 용기가 생기는 것일까? 이번에도 실기시험장은 냉냉했던 터라 나는 매달리듯이 외쳤다.

"꼭 붙여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 나의 당돌함에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악장이신 준위님이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진다.

"군대는 자네의 실력을 써먹는 곳이지 가르쳐주는 학교가 아니다."

절망했다. 아... 이젠 영락없는 육군 최전방으로 가야 하는구나. 그렇게 자포자기하며 발표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뛸 듯이 기뻤다.

이제 2월이면 나도 공군 군악대원이 되는 것이다.

철이도 이 소식을 듣고는 축하를 해주었고, 내 인생이 슬슬 풀려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음악인 생도 풀려가는구나라고 생각했으며, 제대로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1월 말... 나는 진주로 향했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었고 기차의 차창으로 보이는 남강이 물안개로 신비스러워 보였다.

그 남강의 물안개가 훈련병 학교에서 악명을 떨치는 교관의 별명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입대 하루 전날 진주시내에서 식사를 하고 긴 머리를 잘랐다.자는 둥 마는 둥 잠을 설치고는 일찍 일어나서 채비를 하고 나섰다. 기분 탓일까 새벽의 공기가 매우 차다못해 시리게 느껴졌다.그렇게 나의 20대 시작은 군 입대로부터 시작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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