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초 스산하게 비가내리는 신병교육장. 실내에있는 나무 책상위에는 날카로운것으로 새겨진듯한 글씨가 있었다.얼마나 힘들었으면...이런생각을 하다가 하루를 간신히 버텨낸 일과를 생각하면 매우 빠른 긍정을 하게되면서 한편으로는 큰 걱정이 밀려온다. 앞으로는 더욱 더 힘들것이라는 말인가?그것도 그럴것이 여긴 동기들만있는 훈련소이고 무서운 고참이 기다리고있는 자대배치가 남았으니 말이다.
인간의 공포와 고통은 형제이며, 그것의 태생은 예측 불가능한 무지와 알수없는 외부로부터 온다.언젠가는 닥칠 일일지라도 당장은 인정하기싫고 외면하고싶은것이 인간이다.당장의 행복과 안일함이 우선이다.내일 고통스러워도 오늘의 즐거움에 행복해 하는것이 인간 아니던가.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마치 그 거친 글자를 못 본듯이 비에젖은 노트를 책상위에 놓는다.기억에서 지우려는듯 억지로 오른쪽 손바닥을 날까지 세워가며 위에서 아래로 노트를 훑어낸다.그렇게 하루를 버텨내고 또 하루를 참아내며,어느새 시간은 거칠게 새겨진 글씨를 잊은듯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훈련소 생활이 적응될무렵 어느새 겨울같은 초봄과 운명의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마음처럼 무거운 보급품을 어깨에 짊어지고 선임의 뒤를 따라가는 중에 선임의 군복이 보였다.나와 같은 군복인데도 선임의 군복은 계급에 걸맞게 반들반들했고,어깨와 등 그리고 팔과 다리선까지 각이 잡혀있었다.얼마나 다리미질을 하였는지 그야말로 칼같이 선이 살아있는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저것이 말로만듣던 군악병의 복장이구나 생각하던 찰나에 천둥같은 고함이 들렸다.
"어쭈 빠져가지고 빨리 안와?"
"네 시정하겠습니다."
"시정? 말로만?"
"아닙니다."
"뭐? 안한다고?"
"....."
"어쭈 관등성명없지?"
선임은 군기를 잡으려고 했는지 일부러 꼬투리를 잡으면서 대답이없자 난데없이 군화발이 나의 정강이로 날라왔다. "퍽!!"
"윽!!"
생각지도못한 발길질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눈물이 핑돌았다.이것이 입대전 얘기만듣던 악명높은 군악대군기로구나 라고 생각이들던순간 선임의 고함이 다시 들려왔다.
"어쭈 아픈거 티내냐?"
"아..아닙니다."
왼쪽정강이에 힘이들어가지 않았지만 이겨내야했다.겨우 일어섰다.그런데 왠지 느낌이 이상해서 살짝 내려다보니 정강이쪽에서 검붉게 피가베어나오고있었다.
선임도 그모습을 보았지만 마치 늘상 보는일인듯 대수롭지않게 또 무덤덤하게 고개를 돌렸다.마음속에서 서러움과 분함이 솟구쳤지만 다른 방법이없었다.피할길이없다는것이 더욱 서럽고 공포로 다가왔다.이렇게 35개월을 버텨야한다는 생각이 더더욱 암담했다.
신고식을 치르고 각내무반의 고참들과 대면을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첫 저녁점호를 하게되었다.여기저기서 "필승"하는 구호소리가 들리고 분주하게 점호를 준비하는 선임들을 지켜보고있었다.그러자 작대기 네개인 병장이 우리들의 앞에서서 명령을내린다.등병선임! 35개월인 공군군악대에는 워낙 개월수가 길다보니 물상병 물병장이라는 제도가있었다.즉,진급하고 3개월동안은 전단계 계급취급을하는것이고,등병선임은 말그대로 이등병부터 상병까지계급을 관리하는 위치를 말하는것이다.병장들의 불만을 등병선임에게 전달하면 등병선임이 상병을 상병은 일병을 일병은 이등병을 구타한다.단계별로 군기잡기가 내려가는것이고 그 단계가 내려갈수록 집합과 구타는 그 강도가 강해진다.
"야! 번데기들.너희는 이제 군인이다.군인은 뭐다? 군인은 사람이 아니다.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인이다.게다가 너희는 번데기다.감정이없는 번데기란 말이다.맨앞줄에 서있는 너희 맞기수들의 말을 잘듣도록하고,두번째줄에 서서 점호하는거 잘 보고 익혀둬라."
"네 알겠습니다!"
우리보다 한기수 먼저 입대한 맞선임들의 행동을 보고배우라는것이다.점호가 시작되고 앞줄에서있는 맞선임들의 빠르고 정확한 번호외침.조금이라도 엇박자가나거나 실수하면 점호후 집합을해서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하에 구타가 행해지는것이다.
번데기....자대배치를 받은 우리는 즉 다시말해서 이등병중에서도 1개월부터3개월까지는 특별교육기간으로 눈도 귀도 입도없이 무조건 시키는일만해야하는 그야말로 번데기같은 기간인것이다.물론 감정표현도 못한다.일부러 짖궂은 고참중에는 일부러 웃긴표정이나 유머를 듣게 해놓고 조금이라도 미소를짓거나 웃으면 웃는다고 때린다.오전에두번 오후에두번 그리고 저녁에두번...기본적으로 하루에 야섯번의 집합은 기본인데 그 집합이라는것 자체가 단체기합 즉, 군기잡기위한 구타시간인것이다.집합의 이유야 어떻게든 만들면 그것이 이유가 되는것이다. 그렇게 고통스럽고도 긴하루가 지나고 취침시간이되서야 이불속에서 나만의 자유를 느끼지만 얼마가지못하고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면서 잊고있던 문구가 생각이난다.
"집을 팔아서라도 오지말았어야 했다."
잊고있었는데 지금와서 너무나도 절실하게 그 말이 생각이드는것이다.
그렇게 기대했던 군악대...이곳에 와서 경험과 음악적 성장을 기대했던 내자신이 원망스러웠다.실기시험을 치루던당시 준위님이 했던말씀처럼 음악대학처럼 배우는곳아니었다.나는 이제서야 현실을 깨닫게되었고 좌절했다.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며 무조건 이겨내고 버텨내야한다 나의 선택을 감내해야한다. 이 지옥같은 35개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