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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싸라기 Aug 25. 2022

어느 하루 (단편소설)

3화 (마지막) 저녁


저녁 7시 30분


오늘 아침 전쟁통처럼 난리가 났었던 출근길 그 장소 건너편에 버스가 정차하였다. 버스에서 내린 우진은 이미 어두워진 동네를 향해서 터벅터벅 걸어간다.

모퉁이를 돌아서 카센터를 막 지날무렵 우진만 보면 무언가 억울한 듯이 마구 짖어대는 강아지를 또 만났다. 가던 길을 멈추고 우진은 문 닫은 카센터를 지키고 있는 강아지 앞에 슬그머니 쪼그리고 앉았다.

경계하며 짖어대는 것인지 자신을 봐달라고 짖어대는 것인지 매번 저녁 퇴근길만 되면 자신에게

짖어대는 강아지가 궁금하였다.

아침 출근길에는 짖기는커녕 없는 것처럼 조용한 녀석이기에 더욱 궁금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아침엔 늦잠을 자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며 우진은 빙긋이 웃으며

녀석에게 조금 더 다가간다.

그러자 녀석은 더욱 흥분한 듯이 꼬리를 흔들며 짖어댄다.



꼬리를 흔들며 짖어대는 것은 두 종류로 볼 수 있는데 흔히 알고 있는 반가움의 표현과 공격성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공격적일 때 꼬리 흔들기는 자세히 보면 파르르 떤다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꼬리에 힘이 더 들어가 있으면서 아주 빠르게 흔든다. 녀석은 아마도 반가움보다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생김새는 그냥 평범한 믹스 견으로 보이는데 말티즈종에 가깝다.

어지간히 꾀죄죄한 걸 보면 아마도 주인은 집 지키는 용도로만 키우는 것이리라. 측은하면서도 왠지 모를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우진은 매일 저녁 조금이라도 친해져보려고 항상 주머니나 가방에 가지고 있는 던 소시지한 개를

꺼내어 녀석 앞으로 내밀어본다.

"오늘은 성공하려나...?" 하고 혼잣말을 하며 조금 더 다가갔으나 소시지는 관심 없고 마치 주인에게

보고하며 나오라는 듯이 더 짖어댄다.

"나쁜 놈... 마음도 몰라주고... 나도 됐어 인마! 쳇."


일어나서 돌아서려는 순간 우진은 서운함과 측은함이 밀려오면서 녀석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순간 울컥 뭔가 목구멍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다. 심지어 눈물까지 고이는 것이 아닌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며 돌봐주는 이 없이 어둡고 침침한 곳에서 외로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짖어대는 녀석과 그저 하루하루 고단한 일과와 의미 없는 자신의 삶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휴~집에나 가자.. 잘 자라 꼬맹아."


저녁 8시 00분


우진은 깊은 한숨과 함께 녀석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한다. 녀석의 짖는 소리가 거의 멀어질 때쯤 집 앞 슈퍼마켓에 도착했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풍경소리같이 들리는 조그마한 꼬마 종이 문 위에 매달려서 방정맞게 몸을 떨어댄다.

"딸랑딸랑~"

주인은 가게 안쪽 작은방에서 방에 불도 켜지 않은 채 텔레비전 빛으로 만 의지한 채 저녁을 먹고 있었고, 누가 들어왔는지 힐끗 한번 보고는 다시 밥상으로 고개를 돌린다.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나왔겠지만

아는 손님이기에 안심한다는 태도였다.

"어서 와~."

인사를 듣고 우진은 여러 종류의 과자들과 라면들, 각종 통조림류와 안주용 건어물류가 진열되어 있는 코너들을 무심한 듯 휘이 한 바퀴 돌아본다.

그러면서 한숨 섞인 어조로 혼잣말을 한다.

"먹을게 이렇게 많은데 먹을만한 게 없네."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어제 먹었던 번데기 통조림을 한 개 집어 들며 캔의 윗부분을 입으로 후후 분다. 그러고 나서는 항상 문 옆이나 계산대 쪽에 걸려있는 대왕 문어발을 날렵하게 낚아챈다.S자 갈고리에 걸려있는 이것은 한 번에 당겨서 빼지 않으면 잘 안 떨어지기에 때문이다.

여러 번 즐겨 구매하던 터라 나름 터득한 노하우였다.




그렇게 두 가지 안주를 선택한 우진은 갑자기 기억이 난듯한 표정을 하고는 과자 코너 쪽으로 걸어간다. 라면을 먹을때 빠지면 서운했던 김치 같은 존재의 과자를 한 봉지 집어 든다. 이렇게 고른 안줏거리를 계산대에 올려놓는 소리가 들렸는지 주인은 계산대 쪽으로 힐끗 쳐다본다. 그러다 다시 우진이 냉장고 쪽으로 향하자 주인도 다시 밥그릇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술과 음료들이 준비되어 있는 냉장고 역시 우진이 늘 즐겨마시던 소주 두 병과 맥주 피처 병을 하나 고른다. 그러고는 주인 바라본다. 주인은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사장님~계산이요~!."

혹시 못 들을까 봐 우진이 꽤 큰소리로 주인을 부르자 그제서야 놀란 가게 주인은

입속에 음식을 씹어내면서 나온다.

"다 골랐어?"

"네.."

입을 오물오물거리며 슬리퍼를 끌고 계산대로 나온 주인은 슬그머니 미소를 비추며 우진을 바라본다.

"오늘도 한잔하는 거야? 거의 매일 그렇게 먹고도 괜찮은 겨?

적당히 마셔~한순간 훅 간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가게 주인을 보며 우진은 혹시 밥알이라도 튈 거 같아서 슬쩍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가게 주인은 왼손으로는 검정 비닐봉지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물건을 담으며 계산을 한다.

금액을 우진에게 제시하자 우진이 한마디 한다.

"문어발이 이천 원이에요? 와~오징어가 비싸진다 해서 대용품으로 싼 맛에 먹었는데 이것도 이젠 오르네요... 참 내."

그러자 가게 주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한다.

"오징어가 비싸지니 덩달아 오를 수밖에.. 이것도 수요가 늘어나고 히트치니까 금세 다 나가. 아무래도 저렴하니까. 조만간 500원 더 오른다는 말이 있어."

심각하다는 듯 말하는 주인을 보면 우진이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닝기리 없는 놈들만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만!"

"허 허..."

그러는 우진을 보며 가게 주인은 미적지근한 웃음으로 토닥여준다.

우진은 검은 비닐봉지를 힘껏 들어 올리며 인사한다.

"수고하세요."

"고마워 잘 가."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우진은 가게를 나선다. 다시 문 위에 달린 조그만 종이

방정맞게 울려댄다

"딸랑딸랑~"

우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작은 종을 힐끗 한번 보고는 문을 닫고 가게를 나선다.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우진은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다.

가게 건너편에서 팔고 있는 전기구이 통닭을 보았기 대문이다.

두 마리에 만원 한 마리에 육천 원 하는 통닭인데 그 통닭 안에는 밤과 대추와

찹쌀까지 있어서 식사 대용으로도 좋고 전기구이라서 껍질이 바삭바삭하고

기름기가 쏙 빠진 터라 가격 대비 훌륭한 우진의 안주 목록 1위인 것이다.


사실 우진은 치킨광이다. 닭으로 만든 요리는 뭐든 좋아하지만 치킨을 제일

좋아한다. 그것도 양념이 첨가 안된 플레인 형태를 고집한다. 이유는 양념이 너무 과하면 식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없고 오로지 양념 맛으로 먹는 것에 대해 납득이 안 가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을 하던 우진은 결심을 하고는 전기구이 차량 옆에서 앉아있던

주인에게 다가간다.

"아저씨 한 마리짜리도 지금 돼요?"

"5분만 기다리면 됩니다."

"네 기다릴게요."

조금 전에 다른 사람이 다 익은 여섯 마리를 한꺼번에 사갔기때문에 조금만 늦게 왔으면 20분 이상을 기다렸을 거라는 부연 설명을 듣고는 우진은 대단한 횡재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가게에서 산 안줏거리들은 내일 먹어야겠군. 그럼 어쩔 수 없이 내일도 술이네.."

내일의 퇴근 후 술계획까지 저절로 생겨버리자

우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 술을 안 마신다면 뭐 다른 일이라도 있긴 하나.. 훗."

그렇게 생각하던 중 김이 모락모락 나며 겉이 노릇노릇 먹음직스러운 닭이

포장되었다. 소금을 두 개 더 받아서 넣고 치킨용 무도 들어있는지 다시금 확인한다.

(사실 무는 잘 먹지 않는 우진이지만 그래도 꼭 챙긴다.)

치킨값을 지불하고 봉투를 집어 든다. 왼쪽엔 가게에서 산 물건으로 손가락이 아파지기 시작했는데

오른쪽 팔에 치킨까지 들려있었다.

오른쪽 손등 위로 누런 봉투가 활짝 열린 사이로 따끈한 김이 올라와서 손등이 후끈하다.

치킨이 눅눅하지 않게 열어둔 것이다.

우진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현관을 지나 대문 앞에 이르렀다.

양손에 물건을 들고 있었기에 열쇠를 꺼내기가 난감하다. 전부 음식들인데 바닥에 내려놓기가 찝찝한 것이다. 그러다가 비교적 가벼운 치킨 비닐봉지를 왼쪽 손목에 끼우고 다시 가게에서 산 비닐봉지를 왼쪽 손에 들었다. 순간 무게와 치킨의 후끈한 김이 왼손의 무게감을 더했지만, 괜찮다.

문을 열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저녁 8시 30분


"철커덕 끼릭~"

문이 열렸고 날렵하게 몸을 돌려 현관 입구 방안 안쪽 가장 가리에 내려놓는데

성공한다. 모기나 파리가 날라들까 우진은 방문을 서둘러닫고는 신발을 벗어놓고 옷을 갈아입는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음료수통에 쌓인 재떨이에서 풍겨 나온 퀴퀴한 냄새에 기분이 안 좋다.

환기를 시킬 요량으로 창문을 열어 재낀다.

일반적으로 집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불을 켜서 방이나 집을 환하게 밝힌다.

하지만, 우진은 방에 불을 잘 켜지 않는다. 나름대로 전기세를 아낀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보다도 혼자인 상태, 지저분한 모습 그런 것들을 자신 스스로가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버리는 게 싫은 것이었다. 대신 우진은 컴퓨터 모니터를 키거나 텔레비전을 켜둔다. 그래도 그럭저럭 보일 것은 다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두 개다 켰다. 그래서 다른 날보다 방안이 더 환해졌다.



가게에서 사 온 물건들과 술들을 냉장고와 찬장에 대충 던저버리듯이 넣어두고 치킨은 컴퓨터 책상 위에 펼쳐놓는다.

그러고는 담배를 한대 문다.

"후~우~."

우진은 열려있는 창밖을 응시하며 차분하면서도 살짝 다운된 기분으로 담배연기를 뿜어낸다. 담배가 끝에 다다르자 꽁초가 모인 음료수통에 던져버리고는 씻을 준비를 한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으로 왼쪽 엄지쪽 양말을 눌러 왼쪽 발을 빼낸다. 같은 방법으로 오른쪽도 빼낸다. 그러고 나서는 오른쪽 어깨를 빼고 왼쪽을 빼고 상의를 벗는다. 버클을 풀어버리고 지퍼를 내린 후 다리를 차례로 꺼내고 바지를 벗는다. 마지막으로 속옷을 오른손 하나로 아래로 말아내리고는 빨래 통으로 던져 넣는다. 이틀 뒤에 모아서 빨래를 한다. 알몸이 된 우진은 다시금 담배를 한대 더 물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저녁 9시 00분



오늘 우진은 이상하다 담배도 더 자주 생각이 나고 서러움처럼

뭔가 자꾸 울컥인다.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수건으로 대충 문질러닦는다.

그러고 나서는 컴퓨터에 앉아 즐겨 하는 온라인게임을 켜고 접속을 한다.

그 가상세계에서 만난 유저들과 몇 마디 인사와 대화를 하고는 오토 모드로 설정한다.(온라인게임하는 사람들이 게임을 안 하더라도 자동으로 캐릭터가 사냥을 하고 아이템을 수집하는 기능)

그러고는 모니터를 끈다. 방안은 좀 전보다 좀 더 어두워졌다. 하지만 우진은

지금의 밝기가 알맞다고 생각하고는 치킨을 가져다 텔레비전 앞에 놓고 술잔과 술을 가져온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일명 폭탄주를 만든다.

시린 속 안에 주저 없이 모두 털어버린다. 처음에는 얼음같이 차운 것이 잠시 뒤에는 뜨거우면서도 개운함으로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쾌감으로 느낄 때쯤

눈물 한 방울이 왼쪽 뺨에 또르르 떨어진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뭘 잘못한 거지?"

그러다가 하염없이 양쪽 뺨이 눈물로 얼룩진다.

그러다가 참았던 것이 터지듯 양쪽 팔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기까지 한다.

우진은 억울하고 분하고 어이가 없다. 도저히 아무런 방법은 없단 말인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이 든다. 어떤 이는 배가 불러서 하는소리다라든지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는데 뭘 유별나게 그러냐라든지 하겠지만,

우진은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양쪽 팔로 눈물을 닦아내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문다. 두어 모금 뱉어내니 그나마 속이 좀 진정된다.

다시금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만들어놓고 치킨을 본다. 식었다.

그래도 워낙 좋아하기에 문제는 안된다. 술잔을 비워내고 다리를 뜯어서 양껏 입안을 채운다.

그리고 저만치 바닥에 있는 화장실 패드를 본다

자기 전에 물에 불려놔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집어 들고 세제를 풀고 거품이 일어나자

패드를 잠기게 꾹꾹 눌러서 담가놓는다.

속이 그나마 개운하다. 계속 미룬 숙제를 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아무런 생각 없이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하고

술잔을 비우고 안주 먹고를 반복한다. 마치 아까 가게 주인처럼....

얼마쯤 마셨을까 제법 취기가 오르고 피곤함이 몰려온다.

"아... 패드 빨고 자야 하는데."

술기운이 오르니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먹기 전에 다 해놓고

먹을 걸 하며 후회하지만 늦었다.

"후드득~후드득~"

비가 온다. 봄비가 온다.

우진은 비틀거리면 일어나서 창가 쪽으로 간다.

또다시 담배를 피워 문다. 담배연기가 슬로 모션처럼 아주 느릿느릿 퍼져나간다.

마치 물 위에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빗속으로 퍼져나가더니 점점 옅어진다. 하지만 연기는 비를 맞고도 크게 영향을 안 받는 듯 보인다.

그런 연기를 우진은 바라본다.




이부자리는 아침에 발로 걷어찬 그대로 펼쳐있다. 좀 전보다 취기가 더 오른 우진은 그대로 이불 위에 눕는다. 그러고는 오른팔로 이마에 갖다 대고 천장을 바라본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혼자 해결해야만 한다."이렇게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리는동시에 슬슬 눈이 감긴다. 화장실 패드는 물에 담가져 있고, 티브이는 혼자 떠들고 있다. 술잔은 비워져있으나 술병에 술은 조금 남아있었으며, 치킨도 가슴살 한 조각이 남아있었다.

비벼 끈 담배꽁초는 불씨가 남아있던지 가느다란 연기가 통안에서부터 새어 나오고 있었으며, 창밖에 비는 점점 세차게 창문을 두드렸다.


어느 날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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