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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싸라기 Aug 25. 2022

비를 닮은 눈물 2화

첫만남


2화 첫만남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만 났다. 일분일초

까지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5년 전 11월 즈음

내일이면 50을 눈앞에 둔 찬혁은 오래전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기고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혼자 살고 있다. 사실 나이도 나이지만 1년이 넘는 아버지의 병원 신세 때문에 빚이 늘어나면서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회복한지 얼마 안 되었다.

그냥 빚 없이 혼자 편하게 살 자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살아가는 중년 남자다. 당연히 모은 돈도 없었지만 이렇다 할 학벌도 없었기에 공장에서 힘든 노동으로 한 달 한 달을 버티는 중이다. 그래도 빚 때문에 도망 다닐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살만하다고 생각하며 주말이면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서 술 한 잔으로 사는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는 남자다.

오늘 저녁 지인 모임 자리에서는 지인들이 여자들도 몇몇이 나올 거라는 얘기에 이미 들떠있는 찬혁이다.

찬혁은 가발을 쓰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 쓰고 나오는 맞춤가발인데 가격이 백만 원이 넘는 고가여서 찬혁이 받는 월급 200만 원 남짓의 형편으로는 감당하기 쉽지는 않지만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숱 없는 머리 때문에 나이보다 더 노안으로 보이기에 자기관리 때문에라도 월급에서 쪼개고 쪼개서 유지하고 있다. 통풍이 잘 안되어서 여름이면 땀이 많은 찬혁은 가렵고 진물까지 나는 가발이 짜증 나지만 젊게 봐주는 면접관이 호의적인 모습을 떠올리면 벗기가 어렵다. 사실 벗더라도 그 모습 자체도 감당이 안 되지만...

자고 일어나서 머리를 만져본다. 역시 가발의 테두리에 새집이 생겨서 찬혁은 투덜대며 화장실로 간다.

"젠장 머리 또 감아야 하네."

가발은 자기 머리카락이 아니다 보니 새집이 생기면 잘 가라앉지도 않고 스타일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으며 샤워까지 하는 찬혁은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왠지 모를 기분 좋음을 느낀다.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기려나? 왜 이렇게 두근거리지?" 찬혁은 왠지 모를 두근거림이 오늘 모임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일까 생각하며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빗물인것 마냥 얼굴을 들어 맞아가며 기분 좋게 샤워를 한다.샤워를 마친 후 정성 들여 머리를 만지고 어제 생각해둔 옷을 갖춰 입고 좋아하는 버버리 향수를 흠뻑 뿌린다.(사실 여성용 향수이지만 진한 머스크 향을 좋아하는 찬혁은 이것만 쓴다.)

옷 색깔에 맞춘 워커를 골라 신고는 아주 힘차게 걸어간다. 신용 회복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이 나이 먹도록 운전면허증도 없다. 그덕인지 이 나이에도 75kg이라는 준수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대중교통에서 얻은 운동량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인천에서 영등포까지 가려면 적어도 한 시간가량은 생각해야 한다.

평소 약속에 대한 철저한 나름의 철학 때문에 30분 정도 일찍 출발한다. 전철 안은 주말답게 사람들이 무척 많다. 모두 한잔하러 가는 것으로 찬혁은 생각한다.

사실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지 않은가? 병원 가면 모두 아픈 사람 같고, 공원 가면 전부 한가한 사람만 있는 것 같고... 영등포에 도착하니 초저녁답게 해는 지고 대신 영등포의 화려한 주점의 간판들이 휘황찬란하게 행인들을 유혹한다. 11월이지만 저녁에는 제법 찬바람이 거세다. 찬혁은 불어오는 바람이 달갑지가 않다. 가발 때문이다. 거센 바람을 한번 맞고 나면 머리는 요상하게 헝클어지기 때문이다. 마치 늦가을 어수선하고 색 바랜 잔디밭처럼... 머리에 신경을 온통 곤두세우며 걸음을 재촉한다. 드디어 약속한 장소인 참치횟집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해서 왁자지껄 떠드는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서 흐뭇하게 상을 바라본다. 찬혁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오늘 처음 인사하게 된 여자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찬혁은 심드렁해져서 혼잣말을 한다."에휴 그러게 내복에 무슨 여자냐... 회나 실컷 먹고 일어나자.. 쩝."처음 만난 여자들이 마음에 별로 안 든 것이다. 소주를 들이켜고 참치 회를 무순과 함께 조미김에 싸서 입에 욱여넣는 순간이었다.

문 입구에서 휘이~하고 바깥 찬바람이 불어오면서 한 여자가 들어왔다. 찬혁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보통 첫눈에 반할 때 후광이 비쳤다느니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았다느니 이런 표현들을 많이 들었지만 찬혁은 그런 자극적인 표현보다는 뭔지 모를 이끌림으로만 느껴졌다. 비교적 담백한 느낌이었지만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찬혁의 자리와는 뚝 떨어져 있는 맞은편 끝자리여서 자세히 그녀를 보기는 힘든 상태였다.그때부터였다. 이상하게도 옆자리 지인들과 이러저러 얘기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여도 자꾸만 멀리 앉아있는 그녀를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리가 끝날 무렵 찬혁의 마음에는 이런 생각이 자리 잡았다.

"저 여자다..!"

두어 시간 넘게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단아함과 소박함 그리고 참하다는 단어들이었다.

자신이 나이 많고 가진 것도 없고 보잘것없다는 생각은 전혀 생각이 안 나고 오히려 왠지 모를 용기와 새로운 기운 같은 것이 온몸을 감싸는듯했다.

각자 집으로 헤어지는 과정에서 멀어지는 그녀 모습을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전화번호를 묻고 싶었지만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라는 이성적 판단이 앞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도 온통 그녀 생각뿐이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멍한 채로 그녀 얼굴만 떠올리고 앉아만 있었다. 그런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으며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만 났다. 일분일초까지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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