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cker 11화.

11화 타고난 끼.

by 글싸라기


인천을 연고로 한 밴드에 베이스 주자로 가입을 한 뒤로 많은 합주와 클럽 공연으로 나의 연주 실력은 일취월장해 나갔다. 멤버들도 흡족하게 생각했기에 자신감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 밴드 사운드도 베이스 없이 연습하다가 베이스가 합류하니 다들 안정적인 모습이었으며 사운드도 점점 안정적인 사운드가 되어갔다. 물론 100% 만족은 아니었다. 밴드에서 내가 가장 놀라웠던 것은 보컬의 힘과 음색이었다. 거의 주다스 프리스트의 롭 헬포드의 음색과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다스 프리스트의 카피가 유독 많았다. 그 보컬 파워는 합주할 때나 공연할 때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로 인하여 골이 울릴 지경이었으니 이것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흉성과 두성을 같이 쓰는 것 같았다. 보컬을 비롯한 모든 파트들이 아마추어보다는 레벨이 높았고 프로라기에는 조금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한 밴드가 가장 치명적이면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자작곡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밴드가 만들어진 지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면서도 카피만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도 아마추어인 것이다. 자작곡 없는 카피밴드일 뿐이었다.




홍대 클럽에서 공연이 있던 어느 날. 우리는 시작하기 한 시간 정도 미리 도착을 해서 클럽으로 향했다. 토요일이기에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말을 즐기고 있었으며 클럽 역시 마찬가지였다. 눅눅한 습기에서 배어 나오는 지하실 특유의 지리한 냄새가 인공감미료 같은 방향제와 뒤섞여서 묘한 분위를 연출했다. 입구서부터 우리를 제지하는 직원은 우리가 연주하는 팀인 것을 알고는 가벼운 미소와 눈짓의 인사를 띄우며 들여보내 준다. 지하 1층 실내로 들어서니 무대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발을 디디기도 힘든 어둠과 담배연기로 자욱하다. 우리는 맨 뒤에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잡고 악기들을 잠시 바닥과 의자에 내려놓는다. 총 다섯 팀이 공연인데 맨 마지막이 우리 팀이다. 각자 나름대로 한껏 신경을 써서 옷을 입고 나왔지만 사실 락커들은 대부분이 검은색 티셔츠에 검은색 바지가 대부분이었고 나 역시 다르지는 않았다. 조금 더 신경 쓴 것이라면 지미 페이지처럼 베이스 기타 헤드 부분에 담배꽁초 몇 개를 폼으로 꽂아둔 것 그리고 조그만 인형을 얹어둔 것인데 내 기준에는 나름 이뻐 보였다. 무대 체질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크게 떨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약간의 흥분과 떨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나는 바(Bar) 쪽으로 가서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기에 언더락 그라스에 소주를 절반 따르고 나머지를 콜라로 채웠다. 이렇게 하면 버번콕처럼 안주 없이 먹기 좋은 칵테일이 된다. 잔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가자마자 이 모습을 본 기타 치는 녀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온다.

"형... 공연 전에 그렇게 술 마시면 별로 안 좋아. 본인은 실수 안 하고 멋지게 연주하는 것 같아도 나중에 모니터링해 보면 개판인 경우가 많거든."

나는 그의 성토에도 아랑곳 안 하고 잔을 마저 비우자마자 대답을 해준다.

"그래.. 알아. 취할 정도는 아니고... 그리고 이 정도로는 안 취해."

"으이구...알아서해 나중에 리더가 한 소리 해도 난 몰라."

"그래그래 그나저나 지금 올라간 팀 말이야 기타가 깁슨 같은데 맞냐?"

"그래 맞아. 어떻게 알았데?"

"야! 넌 기타 치는 놈이 딱 들어보면 모르냐? 톤이 두껍잖아... 펜더는 상대적으로 얇은 편이고."

"오호~그렇군 베이스가 모르는것도 없어 하하."

무대를 등지고 술을 다 마시던 나는 다시 등을 휙 돌려서 무대를 바라본다.

"개나 소나 Mr. Crowley 군..."

"명곡이잖아.기타애드립 부분이 많아서 기타들은 신나지. 베이스는 지겹겠구나."

"그걸 떠나서 좀 색다른 걸 하는 팀이 없어. 전부 중복된 레퍼토리들 뿐이니 하는 소리지."

"베이스도 건반도 구하기 힘들어서 사운드를 걱정이 되니까 기타로만 사운드를 만들려면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거야."

"그래도 노력조차 안 하는 것 같아서 그래. 이러니 헐렁한 바지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주절거리는 소리 나 내는 음악이 판을 치지. 락밴드들도 각성해야 해."

다음 순서가 우리팀 이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베이스 기타를 튜닝해 본다. 역시 알콜이 몸에 퍼지니 조금은 편해지는듯했다.




작은 무대에 가까이 비춰지는 뜨거운 조명. 그렇기에 관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늘 그렇듯 각자 자리에서 악기 조율에 들어가고 연습실과 다른 앰프와 장비에 맞춰서 톤을 잡는 과정에서의 잡음들...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보컬은 준비된 듯 뒤를 어깨너머로 바라보며 시작을 준비한다. 가장 먼저 준비를 끝낸 나는 깊은숨을 몰아쉬며 악보의 악식을 순서대로 떠올린다. 연습 때 자주 실수하던 파트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준비를 해본다. 드럼 스틱으로 시작되는 Like hell.

그 순간.... 관객이 사라졌다. 박수소리와 함성도 사라졌다.

심지어 나의 존재까지도 사라지는듯했다. 오로지 멤버들의 연주 소리와 나의 베이스라인만이 주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모든 것이 사라졌는데 신기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살아있구나. 자유롭게 살아 있구나."

악기를 들고 연주를 하고 무대에 올라선 것 자체가 진정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마약과도 같은 그 무엇 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행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알 수 없는 복부에 통증이 밀려왔다. 송곳으로 쑤셔대는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다행히 그 통증은 레파토리가 다 끝나서 내려올 때쯤 느낀 것이라 다행이다 싶었다.마약에 취했다가 약기운이 풀린 좀비처럼 터벅터벅 무대에서 내려왔다. 몇 명의 관객과 다른 밴드 멤버들의 인사와 박수소리에도 별 느낌을 못 느낄 정도로 고통은 계속됐다.

내가 배를 움켜잡고 숨을 헐떡이자 멤버들 중 기타 치는 녀석이 걱정 반 꾸짖음반으로 한 소리를 한다.

"거봐 술 마시 말라니까..."

나는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대꾸한다.

"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그러는데 갑자기 그러는 게 술밖에 더 있겠어?"

순간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합주 때도 공연 때도 항상 끝날 때쯤이면 같은 증상으로 고생을 하는 이유를...

"아.... 알 것 같아. 내가..... 숨을 안 쉬어서 그래."

"숨을? 왜? 왜 숨을 안 쉬어?"

손바닥으로 연신 배를 마사지하듯 비벼대며 찡그린 얼굴로 설명을 한다.

"사격할 때나 단거리 육상 선수가 100m를 달릴 때와 비슷해.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안 했지. 그런데 숨을 쉬면서 연주를 하니까.... 특히 굵은 줄인 4번 줄에서 플레이를 할 때나 섬세하거나 순간적으로 속주를 연주할 때는 숨을 쉬게 되면 베이스바디가 움직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왼손에 잡힌 네크가 미세하게 움직여서 왼손에 영향을 주더라고... 그러다 보면 삑사리가 나거나 플레이를 실수하게 되더라구.그래서 나도 모르게 조심해서 연주한다는 게 본능적으로 숨을 멈추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러다가 말아야 하는데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나도 모르게 무호흡인 상태로 끝까지 연주를 하다 보니 복통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나만 그런 것 같기도 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런 소리를 못 들었거든. 뭐... 연주만 잘 된다면 이쯤의 고통은 참아야지."

내 설명을 듣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마는 기타쟁이 녀석이 어깨를 손바닥으로 두들긴다.

"하여튼 대단해... 어떨 때 보면 참 무식할 정도로 미친 거 같단 말이야. 타고난 건가? 그 끼 말이야. 베이스 치려고 태어난 사람 같아. 아무튼 고생했고 받은 돈으로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구요."

술이란 소리에 내심 반가운 표정으로 무거운 소프트 케이스를 어깨에 둘러매고 멤버들과 어두운 동굴 같은 클럽 계단을 탈출하듯 올라간다. 그 시각 홍대 주변의 먹자골목에는 다양하고 울긋불긋한 예쁜 조명이 춤을 추고 있었고, 길거리 스피커에서는 허구헌날 자기는 안다고 외치던 가요계 돌풍의 주역은 어느덧 강한 디스토션이 가미된 사운드로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냐"라는 외침으로 바뀌어 있었다. 축제 분위기처럼 많은 젊은이들은 주말의 시간을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그렇게 거리에 가득했다. 그 많은 인파 속에 우리도 섞여있었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머리위로 삐죽하게 솟아오른 베이스 소프트 케이스가 우리가 어디쯤 섞여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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