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cker 12화

12화 어릿 광대들의 만찬.​

by 글싸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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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 더 먹을래?"

주점 테이블 아래 바닥에 세워져있는 세 개의 빈병 옆으로 허리를 굽혀 방금 마신 빈병을 내려놓으며 얼굴을 돌리며 묻는다. 아직 성에 차지 않은 나는 꽁지머리 기타리스트 동생에게 의견을 물어보지만, 분위기는 이미 더 마시는 쪽이었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그래 더 마셔야지 형이 그것 가지고 되겠어? 흐흐."

"그렇지?"

중년쯤 돼 보이는 가게 주인이나 일하는 아주머니를 보통 이모라고 부른다. 고모나 숙모도 아니고 굳이 왜 이모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명사격으로 지어진 그 이름을 부르니 카운터에 몸을 일으키려는 이모에게 서둘러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싸인을 확인한 이모는 우리 테이블 쪽으로 오려다가 방향을 바꿔서 주류와 음료수가 같이 들어있는 냉장고로 걸어가서 소주를 꺼내온다.

이모가 전해준 차가운 소주 병을 들고서 병뚜껑을 돌려따는 나에게 꽁지머리 동생이 상 위에 놓인 어묵조림을 젓가락으로 집어올려서 입에 넣으며 질문을 한다.

"그러니까 형 얘기는 자작곡을 만들자 그리고, 외모에 신경 쓰자 이걸 말하고 싶은 거잖아."

빈 잔에 술을 따르자마자 한입에 털어버리고 대답을 한다.

"참내 아직도 모르겠냐?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자작곡은 밴드를 한다면 당연한 거고 외모를 신경 쓰자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은 인디밴드들은 소속사가 없으니 보여지는것부터 모든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거지."

나의 질책과도 같은 대답에 꽁지머리 녀석도 이에 질세라

술잔을 입에 털어 버리고서 언성을 높인다.

"아니 우리가 정치인이나 연예인도 아니고 무슨 대중을 신경 쓰고 인기에 연연해야 하는데!보여지는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럴 것 같으면 얼굴 성형하고 예쁘게 옷 입고 춤이나 추면서 노래나 하지."

꽁지머리의 흥분된 목소리에 폭발하고 만다.

"아.. 나 이 새끼가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냐?"

내가 정색을 하고 성질을 내자 꽁지머리는 살짝 꼬랑지를 내리며 설명을 한다.

"아니 그렇잖아.... 우리처럼 음악 하는 사람들을 왜 인디밴드라고 하는지 알잖아. 그런 권력이나 매스컴에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 하고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힘들어도 그 선을 지키는 거잖아."

꽁지머리의 살짝 누그러진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면서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대답한다.

"그래그래 다 알아 다 좋다고... 그런데 지금 가요계를 봐라 개판이잖아. 언제까지 TV 보면서 뒤에서 남 탓만 하며, 징징대기만 할 거냐고. 일단 이름을 알려야 우리가 맞는 건지 틀린 건지 틀린 거면 어떻게 수정 보완할지 결정할 거 아니냐고. 어쨌든 우리도 대중음악 하는 사람 아니야? 그럼 대중에게 알리고 대중들이 판단을 할 수 있게끔 해야 하지 않겠어?"

갑자기 열이 가슴에서부터 얼굴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조그만 소주잔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이모~!! 여기 맥주잔 하나만 주세요."

아까부터 둘이 싸우는 줄 알고 긴장하며 지켜보던 이모는 눈이 동그래져 가지고 맥주잔을 갖다 준다. 맥주잔에 소주를 거칠게 따르자 꽁지머리가 만류한다.

"에헤이... 안주도 잘 안 먹는 양반이 왜 이래... 삐졌어?"

"시팔 말조심해 이새끼야.니가 형이냐?"

성질을 부리자 꽁지머리도 입을 닫고 술잔을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맥주잔에 가득 찬 소주를 단번에 들이켠 후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들이고는 가슴속의 답답함의 표현을 망나니가 칼에 물을 뿜듯이 담배연기를 길게 허공에다가 뿜어낸다. 잠깐의 어색한 침묵과 공기 흐름.

어색한 적막을 깬 건 꽁지머리였다.

"그래 어차피 각자 의견은 있는거구...서로 의견을 존중하자구 너무 자기주장만 하지 말고."

"됐고! 일단 자작곡부터 시작하자고 얘기해 봐."

"형 이해 내가 몇 번이고 말한 적 있는데 며칠 못 가더라고."

"그래 알았어. 내가 할게. 야 소주랑 계란말이 더 시켜봐."

"나 돈 별로 없어 얼마나 더 마시게? 괜찮겠어?"

"지랄... 야! 내가 살 테니까 시키라고! 화장실에 갔다 올 테니까."

내가 산다는 말에 늘 그랬듯 꽁지머리는 신이 난 듯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모를 부른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한다.

"저 새끼는 술을 한 번 산 적이 없으면서 위해주는 척은... 빌어먹을 새끼."

평소 얌체같이 잔머리를 잘 굴리는 꽁지머리가 얄미운 나는 혼잣말을 하며, 화장실로 걸어간다. 제물포역 뒤편에 자리한 이곳 먹자골목의 술집은 늦은 시간에도 사람이 많았다. 마침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 소리로 아직 새벽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늘 그랬지만 시계를 보지 않아도 새벽임을 직감할 수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술집 테이블은 여전히 분주했지만 확연히 줄어든 거리의 사람들과 더욱 짙어진 밤하늘 그리고, 아득해지는 나의 기억력과 시간을 비틀어 놓은 듯한 비정상적인 거리와 술집의 풍경들... 취했다기보다는 잊혀져가는듯했다.모든것으로부터...

"형..... 형.... 그러니까 말이야... 형도 니키 식스처럼 간단하면서도 굵직한 색깔을 가지란 말이야!"

"미친 새끼가 취했나... 야 인마! 기타리스트들의 주법이나 톤으로 색깔을 말하는 건 들어봤어도, 베이스가 무슨 색깔이냐! 게다가 내가 솔로 베이시스트냐? 별 그지같은 소릴 다 하고 자빠졌네... 그러는 너나 색깔을 찾아.허구헌날 잭 와일드니 뭐니 하면서 지랄 떨지 말고.... 어디서 되지도 않는... 참 내."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몇 번인지도 모를 오늘의 술잔을 한 번 더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에이.... 뭔 말이 그래... 동생이 형 생각해서 말하면 좀 들어라...."

"어이구 그러셔 잭 와일드 씨?.... 그 잘난 흉내 낸다고 꽁지머리랑 사들인 짝퉁 깁슨 가지고 뭐라도 된거마냥 지적 질하지 말고 너나 잘하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반찬 그릇과 소주잔 소주 병이들이 공중 부양을 해버렸고 꽁지머리 녀석은 내 앞에서 어릿광대마냥 혼자 춤을 추는듯했다.

사람들이 뛰어와서 말리고 이모는 언성을 높였다. 바닥에는 김치며 멸치볶음 등이 널브러졌고, 아까운 계란말이가 눈에 띄었다.

"아깝다... 저건 먹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끝으로 광대들의 1막의 커튼이 내려졌다. 다음날 늦은 오후... 속 쓰림에 배를 부여잡고 일어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술집에서 깽판을 치고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술 먹고 진상을 부린 것이다.

"제기랄 이러니 딴따라 딴따라 하는 거지!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온몸이 쑤셔댄다... 싸우지는 않은 것 같은데 흠씬 두들겨맞은 사람처럼 온몸이 욱신거린다.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할 지경이지만 배는 고프다....

인간이란 본능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우선 담배가 급했다.

누운 상태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곡기보다는 니코틴이 오히려 정신을 더 맑게 해주는듯했다. 천정 위로 유영하듯 뻗어나가는 담배연기가 나른하게 느껴진다.

가만.... 내가 누워서 담배를? 여기가 어디지?

젠장.... 구석에 뻗어있는 꽁지머리.

녀석의 집으로 왔구나... 순간 담배연기가 가로 넘어가서 심한 기침과 웃음으로 한동안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 소리에도 꽁지머리는 여전히 혼수상태다.

그렇게 나는 담배를 비벼 끈 후 한참을 웃어재꼈다.

허탈하고도 슬픈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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