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도망자.
우리들은 직장인들이나 일반적인 사람들의 기준보다는 술자리가 빈번했지만 항상 다투거나 주사가 심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음악에 관련된 대화에서는 히스테리에 가까울 만큼 예민했던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그렇게 나의 종용과 꽁지머리의 정치인처럼 어줍잖은 중재에 따라서 조금씩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자작곡에 조금씩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멤버들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나와서 그럴싸한 연주나 리프라도 나올때면 마치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이 흥분된 분위기에 들뜨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술자리와 다툼, 서로 웃고 성질도 내면서 시간이 흘러갔으며 싱글 앨범까지 내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원래 고통이며 파도의 연속인 건지 아니면 내가 전생에 큰 죄를 지은 것인지 다시 한번 큰 고비가 찾아온 것이다. 아버지의 식도암이 발병했다는 소식.... 눈앞에서 죽을 병에 걸린 아버지를 나 몰라라 할 순 없었고 안 그래도 빠듯했던 집안의 경제 상황에 병원비라는 직격탄이 우리 가족에게 날아든 것이다. 은행 대출과 신용카드 돌려 막기가 시작되었고 일 년여 동안의 병원비와 생활비는 우리 가족에게 큰빚으로 남게 되었으며, 또다시 우리 가족은 어려운 형편으로 인하여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짙푸른 가을 하늘에 하얀색 파스텔로 드문드문 신경질적으로 갈겨놓은 듯한 구름이 길게 뻗어있었고, 옷깃 사이로 살을 찌르는듯한 얄미운 바람이 늦가을을 말해주는 저녁. 부평 백화점에서 형을 만났다.
저만치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아서 였을까? 나이에 비하여 무척 구부정하고 늙어버린 중년의 남자가 백화점 주변 벤치에 홀로 힘없이 앉아 있었다.
인기척을 느낄 정도의 거리에 다다르자 왼쪽으로 얼굴만 돌리며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어이없다는듯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나는 그것이 무엇 때문에 그런 미소가 지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내심 기분이 언짢았다. 그렇다고 그런 걸 안으로 삭히며 넘어가는 내가 아니기에 직설적으로 질문을 한다.
"뭐야... 그 표정은? 이어폰 때문에? 아버지가 아프시면 음악도 못 들어? 게다가 난 음악 하는 사람인데 아직까지도 내가 음악인이 라는 게 인정이 안되는 거야?"
형은 잠시 동안 즉답을 하는 대신 맞은편 백화점 건물을 응시하더니 한숨 섞인 말을 힘없이 내뱉는다.
"내가 뭐라고 했냐? 뭐라도 찔리는 거야?"
곁눈질하며 내뱉는 말에 빈정이 상했다.
"반드시 욕을 하고 사람을 때려서만 이 폭언이나 폭행이 아니야. 평생을 나라는 사람을 동생으로 아니 사람으로 인정을 한 적이나 있어? 내 인생 내 갈 길을 내가 가는 거고 내가 음악 하는데 뭐하나 보태준 거 있냐고?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 건데?"
그동안 쌓인 원망과 스트레스를 이 자리에서 다 풀어버리고픈 감정이 폭발했다.
나의 그런 모습에 오히려 눈을 크게 뜨며 형 역시 한마디 한다.
"집분위기가 이런데 그렇게 음악이 귀에 들리든? 음악? 음악이 밥 먹여준다든? 내가 보기엔 넌 철이 없는 거야! 아버지가 오늘 내일 하시는데 귀에 그런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 걸 보면 남들이 뭐라고 보겠냐구!넌 주변 사람들 생각은 안 하냐?"
이제는 형이고 뭐고 없다. 정말로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래? 말 잘했네! 내가 음악만 해?이나이에 직장 다니면서 월급을 전부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리고 결혼도 못 하고 생활비만 받아 가는 내가 도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냐고!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하면 인간답다고 생각해 줄까? 남들? 남들 그렇게 신경쓸때 동생인 나를 신경쓴 적은 얼마나 있어? 대답해 봐! 그리고... 한 가지만 묻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자랑스러운 적은 언제였어? 말해봐 정말 궁금하다!"
크게 틀리지는 않는 반박이기에 대답을 못하고 한숨만 내쉬던 형은 이내 말을 했지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아니 정확하게는 안 한만 못한 얘기를 꺼내고 만다.
"...... 네가 공군을 무사히 제대했을 때도 그렇고, 처음 호텔에 취직했을 때도...."
아까 형을 보았을 때의 그 미소가 내 얼굴에 번졌다.
"그게..... 다야? 내가 동생이라서 자랑스러웠던 적이 그게 다냐고...?"
"..............."
어이없는 웃음이 실실 나왔다. 더불어 기운이 한꺼번에 다 빠져버렸다.
바람이 유독 시렸다. 뼈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그리고는 눈이 뿌옇게 잘 안 보였다. 눈을 감았다 떠보니 굵은 두 갈래 물방울이 양쪽 뺨을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랬구나.... 우리 가족의 문제점이 바로 이거였구나..... 설마 했는데 내가 착각했네.... 형! 내가 분명히 말할 테니 잘 들어! 가족은 말이야..... 나처럼 책도 안 읽고 무식하다고 집안에서 인정도 못 받은 이 동생은 말이야... 적어도 가족이라면, 몸이 불구라도 혹은 모자라다고 남들에게서 손가락질 받는다 해도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랑스러운 거 아니야? 반드시 출세를 하고 잘난 짓을 해서가 아니라..... 정답은 이유가 없단다. 네가 내 동생이라서 난 기쁘다. 자랑스럽다. 이거 아니야?왜냐구? 난 이제까지 우리 가족 모두를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자랑하고 다녔거든! 두고 봐 난 이미 성공했어! 다만 증명할 일만 남았을 뿐이야. 내가 반드시 보란듯이 증명해 보이겠어!"
멈추지 않는 눈물 때문에 자리에서 돌아설 때 몸이 휘청댔다. 걸을 수가 없었다.
어렵사리 발걸음을 뗄 때쯤 등 뒤에서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곧 집으로 모실 거야 병원에서 마음 준비를 하래.... 가망이 없다고 집에서 간호하며 마지막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 가족도 그렇고......
전부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어디서부터 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어두워져가는 길거리에 차가운 바람이 나에게 빨리 떠나라고 재촉하듯이 내 등 뒤를 계속 밀어낸다. 서러움과 외로움 그리고, 꼬치구이 재료처럼 목덜미부터 폐부를 가로질러서 허벅지까지 이어지는 꼬챙이가 관통하는듯한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렇게 어두운 도시에 한 마리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어갔다.
다음날 난 이 상황에서 도저히 밴드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형에게 한마디 들어서만 이 아니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힘의 원천은 가족인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무런 인사도 변명도 못하고 밴드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잠수를 타버린 셈이다. 밴드나 멤버들을 생각할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음악에 대한 꿈은 끝나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기업 호텔에 다니던 형은 개인회생을 하게 되어서 간신히 살아났지만 나의 경우는 달랐다. 일단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결국 신용불량자라는 낙인과 주민등록말소가 되어버렸다.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었고, 다시 한번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되면서 고등학교 때처럼 떠돌아다니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