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cker 14화.

14화 Loser.

by 글싸라기


이른 새벽부터 높은 온도와 습도가 만만치 않다. 저녁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작은방 사이로 뻗어진 기다란 복도 끝에 세워져있는 스탠드형 에어컨의 가동시간이다. 새벽 1시 이후에는 주인이 에어컨을 끄기 때문에 새벽부터 각방은 그야말로 찜질방이 된다. 하루하루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든 상황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겨내야 한다. 버텨야 한다. 천정을 바라보고 누우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싱글 침대의 발아래로는 손바닥만 한 텔레비전 박스 밑으로 발끝이 벽에 닿는다. 누운 채로 왼쪽 팔을 뻗으면 손끝이 벽에 닿는다. 과연 한 평이 될까 말까 한 작디작은 고시원방이 나의 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잠을 자는 공간이다.

얇은 합판으로 만들어진 벽 때문에 옆방에서 코 고는 소리 전화통화하는 소리까지 고스란히 다 들린다. 오늘도 어제처럼 밤잠을 설친 무거운 몸뚱아리는 일당을 벌기 위해 간신히 일으켜 세워 공동화장실로 걸어간다.

발바닥이 쩍 하고 달라붙는 복도에 깔린 비닐장판이 기분을 더욱 찝찝하게 만든다.

흡사 시체보관소를 연상케하는 모든 방문은 절반 정도씩 열려있다. 문을 열어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질식할 것만 같은 이곳에서의 유일한 발악인 셈이다. 화장실에는 샤워시설도 같이 있다. 담배 냄새와 누렇게 찌든 벽 그리고, 어떤 청소를 해도 닦이지 않을 것만 같은 구석구석의 오래된 역겨운 곰팡이와 오염된 자국들... 그 옆으로 샤워기가 세 곳이 설치되어 있다. 그나마 한 군데는 물이 나오는 곳이 떨어져 나가 사용을 못 한다. 나는 무좀이 걸릴 것 같이 시커멓고 오래되고 낡은 공용 슬리퍼를 간신히 발끝에 걸치고는 걸어가 샤워기를 튼다. 새벽 내내 흘린 땀 때문에 끈끈한 몸뚱아리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아낸다. 대충 땀을 닦아낸 몸뚱아리를 이끌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옷가지 몇 개를 걸어둘 수 있는 간이 옷장 아래로 작은 텔레비전과 그 옆으로 책상의 형태를 갖추고는 있지만 식탁으로 사용하는 책상 위로 소주 병과 과자 나부랭이가 뒹굴고 있다. 시장기가 돌아서 한 개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 앞니로 눌러 본다.

예상했던 대로 눅눅해져 있다. 상어 아가리처럼 벌어진 과자봉다리를 향해서 손가락으로 튕기듯이 던져놓고 크지도 않은 방구석을 둘러본다. 텔레비전 옆구리에 안성탕면이 눈에 띈다. 나에겐 거의 주식이나 다름없는 라면이 눈에 띄어서 다행이다 싶은 안도감에 쓴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바지를 주섬주섬 입고서 어제 입었던 반팔 티셔츠에 코를 가져다 대본다. 역시.....

어제는 술김에 생각보다 땀을 덜 흘린 날이라 생각하고 하루만 더 입자라는 생각에 옷걸이에 걸어두었는데 땀 냄새가 난다. 예전부터 향수를 좋아했던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은 고시원까지 따라온 버버리 향수가 절반 정도 담긴 채로 책상에 있다. 머스크와 달달한 향이 참 좋다. 몸에서 나는 퀴퀴한 땀 냄새를 최대한 가리기 위해 평소보다 두어 번 더 뿌리고 서둘러 공용 식당으로 향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 사장은 입실자들에게 김치를 배급해 준다. 그러나 이것도 타이밍을 놓치면 못 얻어먹는다. 그런 운 없는 녀석이 바로 나다.

공용 식탁 위에 놓인 김치통에는 김치 꽁다리 몇 개와 김치 국물뿐이다. 다행히 무료로 제공하는 밥은 밥통에 아직 남아있다. 쌀이 오래돼서인지 물 조절을 못한 건지 성의 없는 떡밥을 다른 누가 와서 챙기기 전에 서둘러 양껏 그릇에 담아둔다.

공용 레인지에 라면물을 올리고 의자에 앉아서 김치 국물에 꽁다리 몇 개만 있는 김치통과 떡밥이 담긴 밥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라면 물이 끓기 전의 그 짧은 몇 분 동안 여기까지 오게 된 지난 시간이 머릿속에서 슬라이드 필름처럼 착착 넘어간다.



1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예견돼있는 집안의 부도....

이후 나는 주민등록도 말소되고 자포자기가 되어버린 채 현금으로만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하며 아무런 계획도 없이 하루살이처럼 살아갔다.

처음 숨어 일한 곳은 PC방이었다. PC방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새벽에는 게임에 빠져서 현실의 고통을 마취시켜 버리고 아침에 교대를 하고는 밥 대신에 소주 두 병으로 다시 마취를 하고 저녁까지 죽음 같은 잠을 자며 그렇게 시체처럼 살아갔다. 음악과 밴드 생활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술을 더 마시게 되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음악에 관련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나마 현실을 잊게 해준 온라인게임이 다행이었다. 정신적으로 약해진 정도가 아니라 정신병에 가까운 우울증이 심해졌었는데 그나마 온라인게임이 그런 안 좋은 생각을 잊을 수 있게 나름 도움이 된 것이다.

이러한 아슬아슬한 생활이 안정적일 수는 없었다. 길어봐야 석 달을 넘기기 힘들었다.

그 이유는 pc방에서의 일도 그렇지만 이후의 아웃소싱을 통하여 들어간 중소기업 공장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계약서상으로는 3개월 만근하면 정규직으로 계약하겠다 했지만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를 남기고는 해고하기 일쑤였다. 주민등록말소된 나에게는 억울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이렇게 옮기기를 수도 없이 했고 최저임금과 불안정한 미래 게다가 텃새까지 더해져 하루하루 그저 버티는 삶이었다. 그렇게 바퀴벌레 같은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동안 호주로 유학을 떠나고는 연락이 두절되었던 철이에게서 연락이 오고 다시 만나게 되면서였다. 내심 무척 반가웠으나 이렇게 된 데에는 녀석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 나는 한동안 만나면서 저주에 가까운 질책으로 나무라기도 하고 때론 울고 웃으며 그간의 아픈 상처를 그렇게 스스로 치료하려는 듯 녀석에게 투정을 부렸다. 결론은 모든 것이 나 자신의 책임이라는 깨달음으로 용서를 하게 되었다. 철이는 양재동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전공대로 녹음 일과 각종 공연기획을 하고 있었다. 나름 실력도 평판도 좋은 녀석의 스튜디오였지만 디지털 시대의 큰 흐름이 스튜디오 시장의 종말을 알리고 있었다. 우리 둘은 의기투합해서 어릴 적 우상이었던 선배 뮤지션의 기획앨범을 만들기로 했고 큰 기대를 안고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나는 여기서 스튜디오 실장을 맡게 되었다. 말이 실장이지 사실 나의 어려운 여건을 배려해 준 철이의 배려였다. 나는 이곳 지하 스튜디오 소파에서 먹고 자며 청소부터 클라이언트들의 문의와 철이의 녹음 작업의 보조 역할까지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내는데 불편하지는 않아?"

1층 계단 아래 녹음실 입구 대문 사이 공간에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철이가 나와서 말을 건넨다.

"응? 아.... 불편하긴 고시원에 비하면 천국이지..."

나는 겸연쩍은 미소로 대답했다.

"에이구 그래... 힘내자 이번 앨범만 잘되면 영국으로 갈 수도 있어."

"영국?"

나의 놀란 반응에 철이는 짓궂은 미소를 띠며 말을 덧붙인다.

"응... 영국 레코드 회사에서 우리 앨범에 관심이 많아서 잘하면 올림픽에 초청할 수도 있을 거라는 뒷얘기가 있어."

"올림.. 픽? 갑자기 무슨......"

"확실치는 않지만 개회식 때 지미 페이지가 올라가게는 되어있는데 이 레코드 회사에서 각 나라의 레전드들의 음악인들을 고려해 보는 중이래... 그중에 아시아에서는 우리 한국의 뮤지션들 중 우리가 작업하는 앨범을 예의주시하는 것이고... 암튼 희박하지만 기대하며 열심히 해보자구 응?"

얼떨떨한 나는 그저 반사적인 대답뿐이었다.

"응응 그래그래..."


그렇게 한동안 우리 둘은 열 명의 몫까지 일을 해내가면서 정말 최선을 다해나갔다.

직 비디오 제작, 앨범 녹음, 방송사 인터뷰 등 이렇게만 하면 정말 뭔가를 이룰 것만 같았다. 바쁘고 힘든 시기였지만 하루하루가 희망과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 일이 계획대로 혹은 바라는 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선망하던 선배 뮤지션들은 나이도 많았지만 연주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내세웠고 우리 둘은 점점 지쳐갔다.

한동안 희망에 가득 차서 이야기를 나누던 흡연실이라는 공간은 두 사람의 담배연기만큼이나 한숨이 가득 찬 공간으로 바뀌었다.

"..... 정말 너무하네."

".........."

철이의 낙담스러운 한마디에 실장이라는 책임을 가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형님들 너무 실망이야... 밑빠진 독에 물 붓기도 아니고...."

"그러게... 연습도 안 돼있는 상태로 나와서 녹화도 안되고 그저 대우만 바라니... 게다가 술은 왜 그렇게 마셔대는지..."

"안되겠다 이러다가는 망하게 생겼어."

"......."

그렇게 형님들의 원망을 하다가 불똥이 나에게 날라왔다.

"실장님....."

"응?"

"혹시 해서 말인데 이번 앨범 잘못되면 런던은 고사하고 여기 스튜디오도 접어야 할 것 같아 그래서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잘못되면 다른데 일할만한 곳은 있는 거야? 공부를 한다든지 나름 개인적인 준비는 하는거냐구!"

"글쎄... 뭐 내 주제에 지금 뭐가 있겠어...?"

나의 대답에 철이는 얼굴이 일그러진다.

"무슨 말이 그래 내가 평생 너를 뒷바라지할 순 없잖아!"

철이의 갑작스러운 질책에 반항심이 생겨났다.

"뒷바라지? 내가 언제 뒷바라지해달랬어? 내가 공짜로 놀면서 얹혀사는 거야? 나도 최선을 다했다고! 왜 나한테 화살이 날라와?"

"가만히 보면 시키는 것만 하지 너는 너에게 투자를 안 하니까 하는 소리지."

"그동안 얼마나 나를 신경 써줬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냐? 한 달에 네게 받는 월급 100만 원이 많은 돈도 아니고 내가 그것 가지고 불만이라고 한 적 있어? 너도 싼 맛에 나랑 일한 거 아니냐구!"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고 말았다.

"으이구...그래 맘대로 생각해. 그런데 친구로서 한마디 할게! 네 주머니에 100억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봐 그럼 세상이 달리 보일 거야. 네 행동까지도.... 언제까지 루저처럼 주눅 들어서 눈치만 보며 살 거냐고 좀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야지 않겠어?"

자존심이 상했다. 가까운 친구여서 더욱 상처가 되었다. 게다가 그 말은 맞는 말이었기에 더욱 아팠다.

"그래그래 루저인 친구 둬서 어떡하냐? 쪽팔리겠네요 사장님? 정리할 테니까 네가 다 알아서 해라! 루저 친구 신경 쓰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말은 마음과 다르게 튀어나와버렸다. 책상으로 돌아와 짐을 챙기는 도중에 그동안 고시원에서 혹은 공장에서 서러움을 받을 때도 나오지 않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시 베이스를 잡아야겠어 내가 이런 수모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다시 음악을 해야 해 그게 복수하는 길이야!"

문득 나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포기하며 친구에게 막연히 의지하며 살아온 날들이 후회가 되고 그것을 넘어서 갑자기 오기와 뭔지 모를 용기까지 치솟아 올라왔다.

삶은 그렇게 때로는 희망보다는 오기와 악으로 그 에너지로 뭔가를 이루는 때가 종종 발생하나 보다. 어쩌면 그것이 행운이나 기회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니까.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캐리어에 들어갈 정도의 옷가지가 전부였고 나는 양재동에서 가까운 강남역 쪽의 고시원으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늦겨울과 초봄 사이의 알 수 없는 계절이었으며, 몇 년 동안 나 자신의 존재까지도 잊고 살아온 나에게 알 수 없는 묵직한 기분과 또렷해진 시야 사이로 건물 끝에 달려있는 고드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 고드름은 햇빛을 받아서 영롱하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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