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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싸라기 Aug 22. 2022

고속도로 위의 강아지.

"아 지긋지긋해 도대체 당신이라는 여자는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

직장에서 퇴근 후 늦은 저녁을 먹던 준은 참다못해 숟가락을 식탁에 내동이치듯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있던 아내를 째려보며 고함을 지른다.

갑자기 지른 소리에도 미동도 없이 드라마를 시청하던 아내는 남편을 한번 힐끗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티브이에 가져간다. 그러한 태도에 더욱 화가 난 준은 벌떡 일어나며 다시 한 번 더 소리를 지른다.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남편이 들어와도 반갑게 맞아 주길 하나, 집안도 어질러져 있고

허구한 날 쇼핑에 맨날 드라마나 보고 있고..."

팔짱을 낀 채로 드라마를 보고 있던 아내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꾸한다. "그럼... 당신은 제대로 하는 게 있긴 하면서 나한테 따지는 거야?"

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말한다.

"나? 내가 뭐? 내가 제대로 못하는 게 뭔데? 남자가 직장 나가서 돈 벌어오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데?"

"어이구~그러셔요? 그 쥐꼬리만한 월급 가져오면서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하면 되는 거냐고요?"

"집안일 안 도와준다고 집에 들어와도 내다보지도 않고, 반찬도 먹던 그대로 뚜껑만 열어서 내놓고,

식사하는데 그렇게 혼자 드라마만 보고 있는 거야?"

"당신 태도도 문제야! 성질만 나면 직장 다니니까 피곤해서라는 핑계만 대고..."

"그래그래 남자는 다 돈 버는 기계지...빌어먹을 내가 혼자 살지 뭐 하러 결혼했을까?"

준은 물 한 잔을 따라서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퇴근 후 옷걸이에 걸어둔 상의를 다시 집어 들고 집을 나선다.

"늦은 밤에 어딜 가요?"

"남편이 걱정이 되긴 하시나? 걱정 마시고 드라마나 보다가 주무세요~

여왕 폐하 종놈은 밖에 나가서 뒤지던지 걱정 마시고요."

아내가 묻자 준은 비꼬듯이 말을 내뱉고는 문을 박차고 나간다.

준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다른 남자들도 자신처럼 사는 것인지 궁금했다. 집이라면 적어도 마음 편히 쉬어야 하는데 식구들은 각자 자기 일만 할 뿐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들어온

자신에게 무관심과 잔소리에 이젠 더 이상 참는 데 한계가 온 것이다.

"이런 집구석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아... 아~시간을 돌리고 싶다."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않은 채 집을 나와서 차 안에서 멍하니 앉아있다.

그렇게 10여 분 정도를 생각하다가

"에이..... 고속도로 나가서 바람이나 쐬자."

가까운 고속도로는 그나마 차들이 뜸한 서해 고속도로다. 고속도로 진입 전에 50킬로 제한구역인 지역을 몇 군데를 캥거루 운전으로 차를 몰다가 이내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준은 답답했던지 차창을 모두 내렸다.

100킬로를 달리는 차 안으로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하지만 마음속이 답답했던 준에게는 머리만 헝클어질 뿐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헝클어지는 머리카락과 바람 소리가 귀찮아질 뿐이어서 다시 창문을 올렸다. 그때였다...

그 순간 저만치 도로 옆으로 무언가 희끄무레한 물체를 발견하였다.

"로드킬 인가? 뭘까?"

준은 혹시 토끼라도 도로에서 죽은 건가 싶은 생각이었지만, 가까워지자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인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강아지였다. 평소 강아지나 고양이를 무척 좋아한 준이었기에 비상등을 켜고 도로 옆의 공간에 차를 세웠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도 맞지만 여긴 고소도로가 아닌가...

다행히 도로 양쪽으로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늦은 밤 시간에 그것도 고속도로에 강아지라...

너무나도 기이하기도 했고 강아지의 몰골이 불쌍해 보였다. 준이 강아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한동안 못 먹었는지 기운이 없어 보였고 전체적으로 꽤 죄죄하였다.

게다가 앞발은 갈라지고 피도 났었는지 피딱지도 보였다. 눈은 눈물자국이 흥건하여

양쪽 눈 밑으로 길게 흘러내린 자국이 선명하였다. 준이 강아지 앞에 앉아서 말을 걸었다.

"아가야.. 너 어디서 왔니? 여기 있으면 큰일 나."

준의 말에 강아지는 슬픈 눈망울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는

준의 발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다가 낑낑댄다.

"아이고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니? 집은 어디야? 길을 잃은 거니?"

하지만 강아지가 대답할 리 없다.

강아지는 이내 일어나더니 힘없는 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준이 놀라서 강아지를 말린다.

"야야 더 가면 안 돼."

준은 강아지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큰 굉음이 들렸다.

   준은 자리에서 기절하였다. 얼마였을까 준은 바닥에 쓰러져 있다가 정신이 든 후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동차 사고가 난 것이었다.

졸음운전한 트럭이 준의 차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강아지를 찾아봤으나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놀라서 도망갔나?"

그렇게 혼잣말을 하던 중 허리 통증 때문에 간신히 일어나 앉아서 있었다.

천행인지 크게 다친 데는 없었고 사고 수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도중에 중년의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몸은 괜찮으세요?"

"아... 네.. 좀 쑤시기는 한데 다행입니다."

"병원에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네 가야죠... 일단 움직일 수는 있어서 내일 상황 좀 보고요."

"당장은 괜찮더라도 후유증이 생길 수 있어요."

"네... 그런데 누구신지요?"

"아네 전 이 근방에 사는 주민이에요. 마실 나왔다가. 큰 소리가 나길래..."

"아네...."

뒤뚱거리며 걷는 준을 중년 남자 다가와 부축을 해준다.

"감사합니다."

레커차 기사가 다가와 말을 건다.

"이동하실 거면 같이 타고 가시죠."

"아 네... 일단 차는 보험회사 업체 쪽 공업사로 가시면 되는데.. 괜찮으시면 가다가 시내에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준은 중년 남자에게 들어가시라고 인사를 건네자 중년 남자가 말한다.

"저도 그럼 같이 가도 될까요? 시내에 갈 일도 있고..."

"아네 그러시죠..."

그렇게 두 사람은 가까운 시내의 한 편의점 앞에 내렸다. 준은 아픈 허리와 쓰린 속마음과

더불어 긴장이 풀렸는지 갑자기 급하게 술이 생각났다.

"아저씨 혹시 괜찮으시면 저랑 소주 한 잔 어떠세요?"

중년 남자는 술자리 제안에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을 한다. 두 사람은 가까운 고깃집에서 자리를 잡았다.

"삼겹살 괜찮으시죠?"

"아네..."

두 사람은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런데 정작 중년 남자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묻는 질문에는 대충 얼버무리거나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준은 의아했지만 개인적인 질문들이라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중년 남자가 준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선생님은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까부터 한숨을 자주 쉬시길래요.."

"아 네... 별거 아닙니다. 부부 싸움을 좀 했어요."

"아이쿠 제가 괜한 질문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저희처럼 사는지 궁금해요."

"허허허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남자들 참 불쌍해요... 그렇죠?"

"네 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요.. 허허."

준은 씁쓸한 얼굴로 소주잔을 한 번에 탁 털어넘긴다.

그러고는 이내 한탄섞인 말을 내뱉듯이 한다.

"정말 결혼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중년 남자가 준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결혼은 안 하려고요."

"결혼 안 하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게 되거라는 얘기인 거죠?"

"적어도 지금보단 낫지 않을까요?"

"........."

"잔소리하는 마누라도 없고 속 썩이는 자식들도 없고 얼마나 좋아요..."

"글쎄요... 가족과 떨어져서 사는 외로운 분들이 들으면 욕 꽤나 들으시겠어요."

"에이 그 사람들은 제 입장이 아니라서 모르는 거죠."

"과연 그럴까요?"

그러다 술잔을 기울이던 중년 남자가 말을 한다.

"가족이란 공기 같은 존재 아닐까요? 좀 심하게 표현해서 비록 버림을 받았더라도

가족은 가족이고 없는 것보다 무조건 행복한 거고 존재만으로도 다행이며 감사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 말을 들은 존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버림을.....받았더...라도요?"

"네..."

"음... 그렇게 표현하시는 걸 보니 아저씨는 그런 경험이 있으신 것처럼 들리네요?"

"네.... 그래요. 저는 지금 혼자거든요. 버림받은 거나 다름없지요. 하지만 난 늘 그립고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같이 있을 땐 소중함을 몰라요. 헤어지고 나서야 깨닫고 후회를 하게 되죠."

중년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지며 소주잔을 움켜쥔다.

"음....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험이 없어서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중년 남자는 손에 쥔 소주잔을 비우고는 식당 창문 넘어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한다.

"저쪽 방향으로 가면 인천입니다.... 세 시간가량의 거리죠. 그곳에 우리 가족이 있어요."

중년 남자의 뺨으로 눈물이 흐른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준은 놀라서 냅킨을 뽑아서 중년 남자에게 건넨다.

"감사합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서는 중년 남자가 질문을 한다.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런데 사랑하니까 아직 사는 거 아닐까요?"

"그럼 제가 제안을 하나 할게요."

"네?"

" 일주일... 아니 삼일 정도만이라도 집에서 완전히 떠나보세요. 집에서 멀면 멀수록 좋아요.

그 이후에 미안하고 걱정스럽다면 느끼시는 게 있을 거예요. 만일 아무런 감정이 없거나 오히려 편하다면 그때 가서 이혼을 하셔도 늦진 않아요."

".........."

중년 남자의 이상한 제안에 어리둥절하다가도 내심 괜찮은 생각이다 싶었다.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되었어요."

"혼자 사신다면서요... 한 잔만 더 하시죠?"

"아뇨 지금도 많이 늦었어요... 사실 당신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온 거니까요.."

알 수 없는 말에 준은 술이 다 깰 지경이었지만 억지로 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집으로 가시는 거예요?"

"아뇨 집으로는 못갈것같구요....대신 잘 보이는 곳으로 가려구요."

"네? 아.... 그럼 바래다 드릴까요?"

준의 제안에 중년 남자는 잠시 고민을 하는 모습이다가 대답을 한다.

"그래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시간이 없어서...

대신 너무 놀라거나 두려워하진 마세요."

"아까부터 이상한 말씀만 하시네요... 네 뭐 일단 알았습니다."

두 사람은 술집을 나와서 택시를 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중년 남자가 대답을 안 하자 준이 목적지를 말한다.

아까 처음 만난 그곳이다. 그쪽에 집이 있다고 했으니까. 목적지를 들은 택시 기사가 놀란 듯이 말한다.

"길 한가운데요?"

준이 대답한다.

"네.. 거기서 가까운데 가 있어서요."

중년 남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차창 밖을 쳐다보고 있다.

택시는 고속도로 갓길에 비상등을켜고 멈추었고 둘은 그 자리에서 마주 섰다.

"감사합니다..."

"네.. 뭐... 어느 방향으로 가셔야 하나요?"

"잠시 저쪽에서 뒤돌아 주시겠어요?"

"네?..... 아네... 뭐."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빨리 헤어지고 싶은 마음에 그대로 했다.

2~3분이 흘렀을까... 인기척이 없는듯하여 준이 뒤돌아본다.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준은 이내 기분이 언짢았다.

"뭐야... 술값도 냈는데 인사도 없이 가고... 매너가 없네."그러면서 휴대폰에서 택시 앱을 찾으려는 찰나.

섬뜩하고도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것이었다.

저만치 누워있는 게 사고 나기 전에 만났던 강아지가 아닌가.

준을 재빨리 뛰어갔다. 그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중년 남자의 머리 색깔과 강아지의 털 색깔이 같았고

강아지 발에 난 상처도 무심히 지나쳤던 중년 남자의 손상처와 일치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년 남자 목에 걸린 목걸이와 강아지 목에 걸린 목걸이가 같았으며

강아지 이름과  새겨진 글씨였다.

"사랑스러운 폴리는 우리 가족입니다. 주소는 인천시...."

준은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으며 중년 남자가 아까 말한 말이 생각났다.

"집에는 못 갈 거 같고요.. 더 잘 보이는 곳으로 가려구요."라는 말이 더 잘 보이는 곳...

하늘나라였던 것이다.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힘들어도 아직 인천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가족에게 돌아갔을지도 모르는 강아지...

고통스러워도 자신을 버린 가족에게 가려고 했지만 이젠 갈 수가 없어서 하늘나라에서 만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강아지. 순간 바람이 불어오면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듯했다.

"가족은 존재만으로도 소중하고 감사한 겁니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세요."

준은 한동안 그렇게 강아지를 품에 안고

목놓아 흐느껴 울었다.

준의 뒤로 아까 내려준 택시가 비상등을 켜고 다가와 정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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