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지른 소리에도 미동도 없이 드라마를 시청하던 아내는 남편을 한번 힐끗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티브이에 가져간다. 그러한 태도에 더욱 화가 난 준은 벌떡 일어나며 다시 한 번 더 소리를 지른다.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남편이 들어와도 반갑게 맞아 주길 하나, 집안도 어질러져 있고
허구한 날 쇼핑에 맨날 드라마나 보고 있고..."
팔짱을 낀 채로 드라마를 보고 있던 아내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꾸한다. "그럼... 당신은 제대로 하는 게 있긴 하면서 나한테 따지는 거야?"
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말한다.
"나? 내가 뭐? 내가 제대로 못하는 게 뭔데? 남자가 직장 나가서 돈 벌어오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데?"
"어이구~그러셔요? 그 쥐꼬리만한 월급 가져오면서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하면 되는 거냐고요?"
"집안일 안 도와준다고 집에 들어와도 내다보지도 않고, 반찬도 먹던 그대로 뚜껑만 열어서 내놓고,
식사하는데 그렇게 혼자 드라마만 보고 있는 거야?"
"당신 태도도 문제야! 성질만 나면 직장 다니니까 피곤해서라는 핑계만 대고..."
"그래그래 남자는 다 돈 버는 기계지...빌어먹을 내가 혼자 살지 뭐 하러 결혼했을까?"
준은 물 한 잔을 따라서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퇴근 후 옷걸이에 걸어둔 상의를 다시 집어 들고 집을 나선다.
"늦은 밤에 어딜 가요?"
"남편이 걱정이 되긴 하시나? 걱정 마시고 드라마나 보다가 주무세요~
여왕 폐하 종놈은 밖에 나가서 뒤지던지 걱정 마시고요."
아내가 묻자 준은 비꼬듯이 말을 내뱉고는 문을 박차고 나간다.
준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다른 남자들도 자신처럼 사는 것인지 궁금했다. 집이라면 적어도 마음 편히 쉬어야 하는데 식구들은 각자 자기 일만 할 뿐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들어온
자신에게 무관심과 잔소리에 이젠 더 이상 참는 데 한계가 온 것이다.
"이런 집구석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아... 아~시간을 돌리고 싶다."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않은 채 집을 나와서 차 안에서 멍하니 앉아있다.
그렇게 10여 분 정도를 생각하다가
"에이..... 고속도로 나가서 바람이나 쐬자."
가까운 고속도로는 그나마 차들이 뜸한 서해 고속도로다. 고속도로 진입 전에 50킬로 제한구역인 지역을 몇 군데를 캥거루 운전으로 차를 몰다가 이내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준은 답답했던지 차창을 모두 내렸다.
100킬로를 달리는 차 안으로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하지만 마음속이 답답했던 준에게는 머리만 헝클어질 뿐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헝클어지는 머리카락과 바람 소리가 귀찮아질 뿐이어서 다시 창문을 올렸다. 그때였다...
그 순간 저만치 도로 옆으로 무언가 희끄무레한 물체를 발견하였다.
"로드킬 인가? 뭘까?"
준은 혹시 토끼라도 도로에서 죽은 건가 싶은 생각이었지만, 가까워지자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인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강아지였다. 평소 강아지나 고양이를 무척 좋아한 준이었기에 비상등을 켜고 도로 옆의 공간에 차를 세웠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도 맞지만 여긴 고소도로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