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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cker 24화.

24화 니체의 망치.

by 글싸라기


락음악의 전성시대. 그 중심에 우리가 있었고, 우리나라 음악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자부심에 우리는 행복했다. 그러나, 유행은 영원하지 않았다. 유럽과 미국 투어를 마치고 2년 정도의 행복한 시간이 흘렀으나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국내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경쟁 기획사의 미소년 락밴드가 등장했으며 대중들의 시선은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미소년 밴드에 걸그룹이 등장하면서 국내에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락밴드의 인기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당연히 우리의 방송 출연 섭외와 광고 섭외도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멤버들은 다소 상실감과 배신감에 우울증도 생겼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획사에서도 재계약에 대해서 소극적이었다. 우리는 결국 마지막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고별 무대였다. 마지막 무대에는 가장 사랑을 받았던 공연장 소인 역도 경기장으로 결정되었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흐름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웃으며 가요계를 떠나기로 했던 것이다. 공연이 열리기 보름전 우리는 예전 인디밴드 시절 자주 갔던 인천 제물포역의 단골 술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아직도 외출을 할 때면 얼굴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고 다가오는 팬들도 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과감히 예전의 단골 술집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다.우리는 일부러 사람들이 비교적 적은 새벽에 약속을 잡았다. 이곳의 골목은 놀라울 만큼 변함없이 여전했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의 골목길에 기울어져있는 전봇대의 아슬아슬한 오렌지색 불빛이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타는듯한 생선 굽는 냄새, 소세 지향이 배어 나오는 부대찌개가 끓는 냄새, 누릿한 돼지고기 굽는 냄새와 술 찌꺼기가 눌어붙어 오래된 것 같은 누룩 같은 막걸리 냄새가 역겨움이 아닌 정겹다 못해 그리웠고 반가운 향내였다.


먼저 도착한 나는 드럼통 위에 둥근 철판으로 짜여진 테이블에 앉아서 가게 안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유명 여자 연예인이 술잔을 들고 웃고 있는 주류회사 광고 포스터부터 오로지 안내에만 집중한 듯 고집스럽게 적혀있는 벽에 걸린 그을리고 오래된 메뉴판까지... 누군가에겐 흔한 모습일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마치 고향에 온듯한 느낌을 주었다. 오랜만에 왔다고 기대 이상으로 반가워하는 가게 주인장에게 등짝을 두어 번 얻어맞고 시킨 소주 병을 잔에 따라서 한잔 입안으로 털어넣는다.달큰하다.입은 달달했지만 마음은 왠지 모르게 찬바람이 싸하게 불어왔다.

"일찍 왔네?"

꽁지머리였다.

"보컬이랑 드러머는?"

"아... 곧 올 거야 같이 만나서 온대.."

가게 주인에게 소주잔을 달라고 보채는듯한 몸짓을 하며 꽁지머리가 자리에 앉았다.

"형.. 우리 여기 정말 오랜만이다 그렇지?"

술을 따라달라면 잔을 내 앞으로 내밀며 꽁지머리가 씩 웃으는다.

"그러게... 우리는 변했는데 여긴 그대로지?"

"정말 그러네...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기분이야."

우리는 건배를 하고는 입안에 소주를 털어 넣었다. 또 소주가 달게 느껴졌다. 그 사이 가게 주인이 계란말이 안주를 가져다주었다. 계란말이를 보자 꽁지머리가 인상을 쓰며 시큰둥하게 투정을 부린다.

"아니.... 우리가 아무리 한물갔어도 돈은 이제 좀 있는데 계란말이가 뭐야!"

"일부러 이걸로 시켰어... 옛날 생각나서.."

"어이구.. 주책은 우리가 죽으러 가?"

"그래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저 그러고 싶었을 뿐이었다. 때로는 음식이란 것이 맛이라는 단순한 역할보다는 음식 그 자체만으로도 알 수 없는 힘이 있는 것이다. 오랜 추억을 소환하는 마법도 가능한 힘.

"우리... 어쩌면 처음 만나서 합주실에서 열정적으로 음악 할 때가 더 행복할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해."

"뭐야 뜬금없이 형답지 않게 소심하게... 왜 그래?"

"아니...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얼버무리며 다시 입안으로 소주를 털어 넣었다. 이번엔 쓰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입가에 짭조름한 맛이 느껴졌다.

"이형 안되겠네... 뭐야 이제 갱년기야?"

꽁지머리는 일부러 웃음을 만들어내려고 애썼으나 그럴 분위기가 아니란 것을 알고 이내 눈치를 보며 내 앞에 놓인 술잔에 말없이 술을 따랐다. 이때 두 멤버가 술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야 잘 왔다. 어서 이 형 좀 어떻게 해봐라. 난리 났다. 난리 났어."

묘한 분위기의 두 남자를 보고는 두 멤버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는 내 얼굴을 살펴보며 자리에 앉는다.

"뭐야 왜 그래 오빠. 에이 오빠답지 않게... 우리 잘했잖아."

보컬이 비워진 술잔에 술을 따른다.

"그래요 형 이젠 우리 힘으로 어쩌지 못해 잘 알잖아. 이젠 홀가분하게 웃으며 내려놓자. 그래도 우리한테는 음악이 있잖아."

말수가 적은 드러머가 오늘따라 제법이다.

"그래... 우리 잘했지... 그런데 나 정말 잘해온 거 맞지?"

물끄러미 바라보던 꽁지머리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소리에 힘을 주어 한마디 한다.

"형 우리 밴드 이름이 왜 슬레이지 해머인지 알아?"

"......."

"니체의 망치야."

"니체의.... 망치?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두려움을 날리자는 의미야. 형은 우리에게 망치 자루였어. 그 자루가 없으면 망치는 한낱 쇳덩이에 불과하지... 형은 베이스 기타를 선택한 이유도 그런 이유가 있겠지만, 묵묵히 뒤에서 멋진 조연을 해준 형은 멋진 해머를 완성한 거야!"

예기치 못한 꽁지머리의 말에 모두들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도 말을 못 하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꽁지머리가 자신의 말을 마무리 지었다.

"우리 음악은 사라지지 않아.... 사람들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야. 우리가 숨 쉬는 것이 보이지 않은 산소 덕이라는 것을 느끼지는 못해도 부인하는 사람은 없지. 늘 사람들 곁에 존재할 테고 필요할 때 사람들에게 필요한 산소처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테니까 말이야."

그 말을 한 꽁지머리도, 보컬과 드러머도 나도.... 모두 조용했지만 모두의 뺨에는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공연 당일이 되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아끼는 열성팬들은 우리를 잊지 않고 반겨주었다. 오늘만큼은 절대로 울지 말자고 서로 다짐을 하고 무대를 준비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무거운 돌덩어리 같은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고별 무대인만큼 기획사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무대를 준비해 주었다. 무대가 시작되었고 모두의 환영과 박수를 받으며 첫 곡인 우리의 "The Wing"이 연주되자 무대 앞에 선 보컬이 갑자기 뒤돌아서 나에게로 걸어왔다. 보컬의 얼굴에는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녀는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오빠... 고마웠어. 고생했어... 영광이었어 우리 베이시스트...."

말을 마치고 보컬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나는 가장 큰 미소를 보이며 같이 고개를 숙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보컬도 밝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지와 약지를 치켜세운 뒤 두 죽 먹을 불끈 쥐며 하늘을 향해 치켜올렸다. 그러고는 무대 앞으로 뛰어나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으로 연주했다.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주를 했다. 그런 열정적인 연주 때문이었을까. 눈앞이 흐릿해지며 무대의 조명이 점점 옅어지고 주변의 모든 사물이 사라지며 어두워졌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들마저 점점 멀어지다가 아득히 사라졌다. 난 그토록 원하던 무대 위에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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