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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cker 25화(마지막 화).

마지막 화. Free Bird.

by 글싸라기


1월달 이지만 햇살 따스한 창가는 소박하면서도 포근한 내가 좋아하는 자리다. 원목 책상에 책 몇 권과 노트북 그리고, 따끈한 녹차 한잔이 전부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만의 사색을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뇌출혈로 무대에서 쓰러진 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니 어쩌면 시간은 그대로인데 내가 혹은, 사람들이 변해갔는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 회복하느라 일 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간신히 몸의 일부분만 쓸수있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끝이 났지만 멤버들은 시간이 나는 대로 찾아와서 식사도 같이하고 말벗도 되어주었다. 이제 나는 내 몸과 같은 베이스 기타를 더 이상 연주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바라만 볼 수 있는 것만이라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이제는 노트북으로 일기도 쓰고 형편없지만 나름대로 에세이와 소설도 쓰면서 마치 작가라도 된 양 창가에있는 책상에서 작가처럼 폼을 잡고 있다.

창밖을 바라보니 가끔 사선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이 을씨년스러운 겨울 풍경에 분위기를 더해준다.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녹차의 따스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며 통쾌하고도 개운함을 느끼게 해준다. 향긋한 녹차의 향기가 다시 목을 타고 올라와 입안과 코를 통해서 퍼져나오며 온몸을 향기롭게 해주는듯 했다. 요즘따라 점점 심해지는 가슴과 목에 통증과 붓기가 꽤나 신경이 쓰인다. 사실 아픈 것보다 고통이 심해질까 봐 그것이 더 걱정이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휴... 하기야 인생이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

혼잣말을 중얼거릴 즈음 집으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져 오더니 문이 열린다.

"뭐야... 벌써 작업을 시작하는 거야? 작가님..."

얼굴 마비로 인하여 일그러져버린 내 입 모양으로 인사를 건네기 힘들어서 대답 대신 묘한 표정의 미소로 맞이한다. 멤버들의 방문이다.

"형이 조용한 곳을 원해서 이곳으로 왔겠지만, 너무 시골 아니야? 오는데 3시간이나 걸렸다고."

나를 보면 우울해질까 봐 일부러 투정부터 시작하는 꽁지머리인 걸 잘 알기에 고마웠다.

"여긴... 그래도 살만해... 고마워.. 와줘서."

길게 말하면 침이 옆으로 흐르기에 간신히 빨리 말하고 입을 다문다. 보컬이 다가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아준다.

"오빠 요즘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 점점 말라가는 것 같은데? 얼굴도 창백해지고..."

보컬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요리조리 얼굴을 뜯어본다.

나는 오른팔로 적을 것을 달라고 손짓으로 책상 위의 노트와 볼펜을 가리킨다. 더 이상 멤버들에게 침 흘리는 것을 보여주기가 싫었다. 드러머가 쥐여준 노트에다가 말을 대신해서 적어갔다.

"걱정하지마 너희들이 신경써줘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잘 챙겨주셔."

노트의 글씨를 보고는 멤버들은 미소를 지으며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래 다행이다."

보컬이 휠체어에 탄 내 앞에 와서 쪼그리고 앉더니 질문을 한다.

"오빠 산책하러 갈까? 바람 좀 쐬자.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보컬이 무릎담요와 두꺼운 외투를 어깨에 걸쳐주었고, 꽁지머리가 내 뒤로 오더니 휠체어를 잡고 바깥으로 나를 데리고 나왔다.

바깥의 날씨는 생각보다 바람이 거칠었다. 콧속으로 사이다 같은 알싸한 바람이 들어왔다. 내가 감기라도 걸릴까봐 보컬이 옷깃을 여미어 준다.

"오빠 춥지 않아? 괜찮아?"

나는 그저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갈기갈기 찢긴 오래된 낙엽과 흙이 뒤섞인 얼음 같은 눈덩이들이 군데군데 뭉쳐있는 질척한 산책로를 걸어갔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이 길가에 나란히 서있고, 왼편으로는 가을 즈음 벼를 수확하였는지 잘린 벼의 꼬투리와 얼음이 군데군데 보이는 논이 있고, 오른쪽에는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가 있었다.

"여기 참 조용하다... 글 쓰는 데는 좋겠네?"

보컬이 부드러운 미소로 바라보며 말을 했다. 나는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참... 인생이란 게 말이야 어찌 보면 우스워 그렇지 오빠?"

뜬금없는 인생 타령에 내가 고개를 들어 보컬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음악 인생을 살아온 오빠가... 그리고 그 불같은 성격이 말이야... 이렇게 아프고 나이가 드니 완전 아기가 됐네?"

그녀는 살짝 미소를 보였지만 말투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묻어있는 듯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몸을 돌볼 때야... 그러니 예전의 오빠만큼은 아니더라도 힘을 내요. 또 알아? 회복되면 우리가 언플러그드 정도는 같이 할 수 있을지...."

나는 그녀가 위로를 해주는듯한 말에 외투속으로 넣어온 노트를 꺼내어 대답을 써 내려갔다.

"그래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지. 인생이란 예측이 불가능하기에 재미있는 것 같다."

노트에 적힌 글을 본 뒤 보컬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아하하하... 이 오빠 좀 봐.... 벌써 작가 다 됐네? 인생이라는 말도 다하고... 예전의 모든 걸 씹어 먹을 것 같은 와일드한 락커는 어디 가셨을까?"

보컬의 말에 모처럼 모두들 큰소리로 한바탕 웃어재꼈다.


오랜만의 동료들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은 해지기 전에 서둘러 올라가야 했기에 배웅을 해주고 다시 책상 앞에 다가섰다. 찬 바람을 쐬어서 였을까 오늘따라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 목이 많이 부어오른다. 열까지 있는 것 같았다. 따뜻하게 하고 땀 내면서 자면 금방 나아지곤 했기에 나는 보일러를 온도를 좀 더 올리고 가습기를 틀어둔다. 해 질 녘의 노을빛의 하늘이 예술이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오기를 결정했고 오늘도 어김없이 멋진 광경을 보여주는 이곳 하늘이다. 창 가에서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필름이 영사기처럼 머리에서 펼쳐진다. 하는 일마다 망해버린 집안 경제사정 때문에 떠돌이가 된 유년과 청소년기부터,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인하여 매번 돈에 허덕이며 살던 청년 시절과 중년시절까지... 어느 부분 하나 불안하지 않았고 고통스럽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인생이었다. 다행히 지금의 밴드 멤버들을 만나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만.... 오늘은 왠지 예전 일을 생각하면서도 한숨보다는 미소가 지어진다. 생각해 보니 인생의 그 많은 고통의 시간에도 버티게 해준 사람들이 생각났다. 떠돌이 일때도 숙식을 제공해 준 고등학교 동창생인 친구 경민이와 부모님들, 청소년기와 청년일 때도 매달 돈이 부족할 때 밀린 월세를 이해해 주며 용돈까지 빌려주었던 고시원 사장님 등등... 그런 사람들 덕분에 이렇게 여기까지 살아온 게 너무나 감사했다. 오늘따라 예전의 일들이 떠오르며 기분이 가라앉는다. 노란색과 붉은색이 섞인 다채로운 석양은 점점 어둠으로 밀려난다. 나는 그런 석양을 아쉬워하며 지그시 바라볼 뿐이다. 석양이 검은 산등성이 뒤로 모습을 감추자 금세 어두워졌다. 오늘은 왠지 술 한 잔이 생각난다. 나는 휠체어를 굴려서 냉장고 앞으로 갔다. 그리고 먹다 남은 와인병과 치즈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책상으로 돌아왔다.


방안에 온도가 올라가고 가습기를 틀어서인지 유리창은 습자지를 붙여놓은 것처럼 하얗게 도배가 되어있었다. 물론 밖은 어두워져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오늘은 마무리를 지어야할 소설이 있어서 늦게 자더라도 글을 써야 한다. 와인병을 들어서 오랜만에 병나발을 분다. 이렇게 해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내일 아침에 아주머니가 오시면 난리를 치겠지만 오늘은 오늘이다. 차가우면서도 달달한 포도향과 알콜의 짜릿함이 목젖을 타고 식도로 흘러 들어간다. 위스키나 소주만큼은 아니지만 이내 식도로 역류하는듯한 뜨끈함이 가슴속에 불을 지핀다. 나는 치즈 한 장을 입에 넣어 오물거리며 휠체어를 책상 쪽으로 바짝 당기고는 노트북을 연다. 마무리가 남은 글을 쓰기 위해 로그인을 하고는 집중을 해본다. 한 손으로밖에 글을 쓸 수 없지만 원래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들기던 나는 크게 불편함을 모른다. 오히려 타자 연습을 안 한 게 다행이라는 듯이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며 자위한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글은 마무리가 되었고 글을 완성했다는 성취감을 느끼며 습자지로 도배한듯한 창밖을 보았다. 어스름하게 보이던 동네 불빛도 사라진 것을 보니 꽤 늦은 시간이 된 것 같다. 머리가 띵하고 아직도 열은 그대로이며 목의 붓기도 여전하다. 다시금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잠시 쉬기로 한다.

"삶이란... 인생이란.... 참 재미있군, 그래도 난 결국 나 자신을 이겨낸 거야. 적어도 포기하지는 않았으니까."

나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혼잣말을 내뱉고는 책상 속에 깊이 숨겨둔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인다. 의사가 술과 담배는 절대 금물이라고 했지만 나는 말을 안 듣는 비행청소년처럼 의사 말을 듣지 않았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적어도 내 의지대로 행동하고 싶었던 내가 아니었던가.담배 한 모금을 폐안으로 깊게 밀어 넣었다. 짜릿하고 통쾌한 쾌감이 잠시 동안의 통증을 잊게 해주는듯했다.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내고는 집안을 휘이 둘러보았다.어느 집에서 나 볼 수 있는 가전제품과 가구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구석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검은색에 가까운 푸른색 리켄베커 베이스 기타.

"자식.... 너도 고생 많았다."

베이스기타를 끌어안고는 그동안 함께해 준 베이스 기타에게 나도 모르게 작별 인사가 나왔다. 다시 책상 앞으로 휠체어를 끌었다. 마무리된 글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참을 모니터를 보다가 와인 때문인지 오랜만에 피운 담배 때문인지 정신이 몽롱해지며 잠이 오는듯했다. 나도 모르게 담배를 문 채 휠체어에 앉아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잔뜩 장을 보고 왔는지 음식재료들을 가득 담은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이게 무슨 냄새야... 담배를 피운 거예요? 정말 미쳤나 봐. 술 담배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면서요. 어쩌려고 그래.... 응?"

아주머니는 휠체어에서 잠든 나에게 다가오며 잔소리를 해댄다.

"아니 미쳤어요? 몸도 불편한 양반이 잠도 휠체어에서..."

아주머니는 내 앞에 와서는 크게 놀라더니 장바구니를 떨어뜨리며 주저앉는다.

"악!아 악."

휠체어에서 잠이 든 채 그대로 세상을 떠난 락커....

그의 무릎 사이에는 리켄 베커가 기대어져 있었고, 입에는 다 타고남은 담배꽁초와 책상에는 슬레이지 해머의 앨범들 그리고 와인병과 노트북이 열려있었으며,Lynyrd Skynyrd의 Free Bird가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if i leave here tomorrow,

would you still remember me?

for i must be traveling on,now

cause there too many place i've got to see


but,if i stayed here with you,girl,

things just couldn't be the same

cause i'm as free as a bird now and this bird,

you'll can not change.


oh oh oh

and the bird you cannot change......

.................................................................

연락을 받고 온 멤버들과 경찰차와 119소방대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나의 곁을 쓸쓸하지 않게 해주었다. 나는 휠체어 대신 소방대의 침대에 반듯이 눕혀졌고, 보컬은 목놓아 울고 있었다. 너무 크게 울어서 보는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다. 꽁지머리는 고개를 숙인 채로 울고 있었고, 드러머는 내 책상에서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밝은 빛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고마웠어 모두들... 우리 잊지 말자. 우리 멋진 멤버들 나중에 먼훗날 다시 만나자. 안녕.."

인사를 마치고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부축을 받으며 하늘로 인도되었다.

드러머가 일어나며 노트북 화면을 열었을때 노트북에는 소설의 제목이 적혀있었으며 멤버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울었다.화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소설 "The Rocker"최종화.

-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고마운 우리 멤버들에게 바칩니다.-


The Rocke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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