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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cker 23화.

23화 꿈의 무대 영국에 서다.

by 글싸라기


성공적인 잠실 역도 경기장의 공연을 마치고 우리들의 인지도는 날이 갈수록 상승하였다. 심지어 멤버들은 겁이 날 지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시아권은 물론이거니와 유럽과 미국까지도 공연 섭외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건은 우리들의 곡들 중 두 곡이 빌보드 차트 락부문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10위권 안에서도 3위를 했다. 두 번째 앨범은 앨범 차트 10위에 랭크까지 되었다. 우리는 광고 섭외는 물론 각 언론사에서도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기획사에서는 혹시 모를 사건이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 보안을 철저히 당부하였고, 우리는 예전과 같이 마음대로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였고 그동안 텔레비전에서만 보았던 연예인들처럼 사생활에도 많은 제재를 받았다. 장을 보거나 쇼핑은 매니저들이 대신해서 움직여 주었고 심지어 배달음식까지도 마음대로 시켜 먹기가 힘들었다. 개인적인 생활을 그렇게 제한을 받고 불편했지만 우리의 마음은 뿌듯했다. 그것은 바로 오랜 기간 댄스음악이 주를 이뤘던 우리나라에서 우리 음악으로 인하여 결국 사람들이 음악을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변화가 기쁘고 감사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댄스음악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많이 중화가 돼가면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사람들이 인지하게 되었다. 재즈음악도 새롭게 재조명 되었으며,락음악의 기초가되는 블루스 음악도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공도 기뻤지만 이렇게 다양해진 음악시장에 한몫을 한 것 같아서 너무나도 뿌듯했던 것이다.

해외 투어는 순조롭게 기획되었고, 파격적인 조건으로 진행이 되었다. 유럽 중에서도 락의 본고장인 영국과 독일, 프랑스 순으로 유럽투어가 잡혔고, 미국은 LA에서 먼저 시작을 하기로 했다. 혹시 모를 건강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일정은 더 이상 잡지 않았다. 유럽투어를 떠나기 전에 우리는 국내에서 미리 계획된 세건의 광고 촬영을 해야 했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도 출연하여 녹화를 마무리해야 했다. 그렇게 국내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드디어 우리는 영국으로의 투어를 위하여 비행기에 올랐다. 보는 눈도 있어서 그렇지만 그보다 보안 때문에 우리는 천만 원에 달하는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했다. 특이했던 것은 기내에서 입을 수 있는 고급스러운 편의복이 지급됐다. 기내식 또한 일반 특급호텔에서 제공되는 것처럼 고급 진 도자기 그릇에 플레이팅 된 풀코스 음식이었다.

넓기도 하지만 180도로 눕혀진 좌석에서 눈 좀 붙이려 하자 보컬이 갑자기 의자 옆에서 고개를 들이민다.

"오빠 오빠... 여기 퍼스트 클래스 말이야. 엄청 넓지?"

보컬의 호들갑에 웃음이 떠져 나왔다.

"야야... 좀 촌스럽게 굴지 마. 원래부터 자주 이용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어. 창피하게..."

나의 나무람에 보컬은 아랫입술을 삐죽하며 한마디 더한다.

"그리고 여기 말이야.... 간식도 전부 무료래.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막 달래 그러자 응?"

보컬은 자신이 달라고 하면 될 것을 괜히 나에게 같이 먹자는 핑계로 나보고 주문을 해달라는 뜻이었고 그런 것을 눈치 못 챌 내가 아니었다.

"됐거든요... 먹고 싶으면 니가 시켜. 난 눈 좀 붙여야겠다. 어제 방송국 녹화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다."

"치.... 알았다 뭐 다른 오빠랑 같이 먹어야겠다."

보컬은 같은 행동으로 앞자리에 있는 드러머에게로 갔다. 드러머가 흔쾌히 동의를 한 것인지 아니면 마지못해서 들어준 것인지 입구 쪽에 있던 전담 스튜어디스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로 다가선다. 내가 생각하기엔 아마도 후자의 경우에 해당됐을 확률이 높다라는 생각이 들자 코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녀석 저럴 때는 영락없는 기집애란 말이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말로만 듣던 영국. 영국이라고 하면 와보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서 항상 그리던 것이 매일같이 비가 많이 오고 우중충한 날씨의 나라라는 것인데, 역시 흐리고 비가 오는 날 도착했다. 우리는 다행히 매니저들과 수행비서들이 있었기에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전용 리무진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비의 나라여서 그런지 비가 내리는 어두운 날씨가 더욱 잘 어울리는 나라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도착한 호텔은 하이드 파크와 버킹엄 궁전 사이에 위치한 레인스 버러 호텔이었다. 영국 전통적인 스타일로 고풍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멋진 호텔이었다. 호텔 인테리어 자체에서도 여기가 한국이 아님을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간 뒤 예정된 내일 일정에 대해서 회의 겸 식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에 모였다. 꽁지머리와 나는 스테이크를 시켰으며 드러머와 보컬은 해산물 종류의 음식을 주문했다. 모두들 음식을 먹으며

비행기 안에서의 일과 호텔로 이동하면서 보았던 거리 풍경 그리고, 객실의 인테리어 등 감격스러운 런던 입성의 느낌들을 주제로 떠드느라 분주했다. 그러자 실장 대신해서 나온 총괄 매니저가 바쁜 일 제쳐두고 달려왔다는듯한 빠른 몸짓으로 의자에 앉으며 얘기를 꺼낸다.

"자.. 모두들 먼 거리 여행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식사하시면서 들으세요. 내일부터 삼 일 동안은 BBC 방송국에서의 인터뷰와 토크쇼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모두 보도자료와 함께 나눠드린 영문대본과 번역 대본 잘 가지고 계시죠?"

눈은 요리 접시에 둔 채로 왕새우를 입에 물고 보컬이 서류뭉치를 집어 들고 흔든다.

"네 다른 분들도 잘 갖고 계시죠? 오늘 주무시기 전에 반드시 읽어보시고 외어야 할 부분은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놨으니 내일 일정 차질 없게 잘 숙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들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또 말한다는 표정으로 먹는 일에만 집중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궁금하거나 필요한 거 있으시면 바로 프런트에 연락하지 마시고 매니저에게 먼저 전화하세요."

모두들 고개만 끄덕이며 어서 끝내라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럼 즐거운 저녁식사되시고 내일 뵐게요."

총괄 매니저가 떠나자 우리는 본격적으로 먹부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음식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허겁지겁 먹어치운 우리는 각자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뻗어버렸다.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꿈의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

내로라하는 팝스타들이 거처 간 이곳에서 우리가 공연을 한다. 6만여 명이 수용 가능한 어마어마한 공연장. 바로 이곳에서.... 180분 3시간 동안의 공연이다. 물론 중간에 쉬는 시간이 30분에 같이 온 국내 헤비메탈 밴드가 우리들의 쉬는 시간에 대신해서 공연을 할 것이다. 그러니 실제 공연시간은 150분인 셈이다. 1집과 2집 앨범 그리고 준비 중인 3집 앨범을 포함해서 20곡과 오랫동안 우리를 있게 해준 다른 밴드들의 커버 곡을 연주할 예정이었다.

공연 당일. 그동안 그렇게도 많은 합주와 공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외국에서도 그것도 락음악의 본고장인 영국 런던... 게다가 웸블리 스타디움이다. 기획사에서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인지 아니면 엄청난 돈을 뿌려서 홍보를 한 것인지 무대 뒤편을 제외한 전 좌석이 가득 차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무대 뒤편에서 베이스 기타를 한 손에 움켜쥔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고는 이내 어깨를 끌어안는다. 실장이었다.

"어떤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 못 했지?"

"네..."

떨리는 내 목소리는 이미 잠겨있었다.

"음... 나는 말이야. 클럽에서 자네들을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네. 믿기 힘들겠지만 난 이미 그때 이런 그림을 보았어. 단지 영국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무당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걸 미리 알 수 있었어요?"

"하하... 그건 나도 나중에 알았다네. 자네의 베이스라인으로 음악이 전혀 다른 분위기의 편곡이 되어버렸다는 걸 말이야. 뛰어난 누군가가 편곡 작업을 해줬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알고 보니 자네의 베이스라인이 결국 전체적인 편곡을 마무리한 셈이 되어버린 거지. 나야 뭐 원래 하던 일을 조금 더 신경 쓴 것뿐이지..."

실장은 감싸 안은 어깨를 풀고는 다시 한번 나의 왼쪽 어깨를 손바닥으로 힘껏 움켜쥐었다.

"자넨..... 최고의 베이스야! 아니... 최고의 베이시스트야!"

베이시스트! 베이시스트! 그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듣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던 말이던가. 적어도 나에겐 최고의 칭찬이었다. 지끔까지 흘려왔던 전혀 다른 느낌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축하하네... 이제부터는 자네들 세상이야. 결국 언젠가는 이것도 끝이 나겠지만, 그때까지 맘껏 누리게 그리고, 즐기게!"

실장이 장난스럽게 주먹으로 가슴을 툭하고 친다.

"형 여기서 뭐해!"

꽁지머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응.... 왜?"

"왜긴 이제 나가야지... 저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지!"

"그래... 가자."

실장이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느리지만 정중한 자세로 실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정중하게.... 실장도 같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무대 옆 바로 입구에서 드러머와 보컬이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하며 재촉한다. 꽁지머리와 나는 급히 뛰어서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형... 첫 곡 말한 대로 우리 데뷔곡인 "The Wing"알지?"

"오케이!"

"그리고 우리 오늘 커버 곡으로 Loudness의 Like Hell 하기로 한 거..."

내가 꽁지머리의 말을 잘랐다.

"아 그거 말이야... 나한테는 오래전부터 사연이 있었던 곡이야... 하지만 일본 밴드 거라서 좀 신경 쓰이네... 그래서 말인데 그냥 앵콜곡으로 빼놓고, 우리들의 최애곡이자 우리를 있게 해준 Pantera 곡으로 하는 게 어때?"

"역시 이심전심이라니까... 나도 그 생각을 했어. 그럼.. 어떤.."

이번에는 듣고 있던 보컬이 끼어든다.

"Mouth For War로 해. 뭘 생각해 그냥 그거 해!"

"오케이 좋아!"

모두 마음이 잘 통했다.

"자.... 이제 나가서 뒤집어 놓아볼까? 대한민국의 락을 맛좀 보여주자구!자 가자!"



그렇게 긴장한 모습들은 어디 가고 마치 거친 전사들처럼 무대로 박차고 나갔다. 보컬이 무대 중앙으로 뛰어나가며 고음 샤우팅을 지르자 번쩍이는 조명과 무대 양쪽에서 터지는 폭죽 그리고 관객의 함성이 웸블리 스타디움 하늘 위를 가득 메웠다.

The Wing.... 우리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든 곡. 각자 회사 다니며 쓴 곡이며, 고시원과 원룸에서 웅크린 채 만든 베이스라인이며, 한 시간에 2만 원짜리 대여 합주실에서 합주하여 완성된 우리곡이 지금 바로 여기 영국 런던에서도 웸블리 스타디움에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연주가 되고 있었다. 다시 락음악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바로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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