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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cker 22화.

22화 날아오르다.

by 글싸라기


결국 우리는 일을 저질렀다. 우리도 예측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고 말았다. 결국 일어날 일은 언제 가는 반드시 일어나고야 만다고 했던가. 흔히 말하는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 있었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우리가 그 주인공이라니...

댄스음악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 우리들의 자작곡인 싱글 앨범이 라디오방송 몇 번과 일본 공연으로 인하여 알려지게 되었고, 입소문을 타면서 결국 8시 뉴스에까지 소개가 될 정도로 인기는 태풍처럼 불어닥쳤던 것이다.연일 인터뷰 요청과 방송 출연 섭외가 이어졌고, 우리는 각자의 직장도 본의 아니게 사직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너무나 바쁜 스케줄로 인하여 녹초가 되었고, 그 흔한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기획회사에서도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상상이상의 변화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전담 매니저와 의상팀 그리고, 전용차량에서 새우잠을 자가면서 행사를 소화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런 호사를 누리면서도 나는 무엇보다도 여전히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역시 나는 연주자가 천직이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했다.내가 좋아하고 또 그 일로 인해서 생업까지 연결이 되는 상황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고달프고 힘겨운 지난날이 영상 필름처럼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흘러가며 그 모든 고난의 과정이 작곡으로 연주로 만들어지는 소중한 재료들 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잠실 역도 경기장. 오늘은 이곳에서 두 번째 앨범을 처음 공개하는 홍보하는 자리임과 동시에 첫 번째 앨범의 천만장 판매 돌파 감사의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이미 티켓 판매는 매진이 되었고, 관중들은 벌써부터 각종 피켓과 플랜카드 등을 준비하여 관중석을 전부 채워 놓았다. 우리는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꽁지머리는 기타줄을 갈아끼우고 손가락을 풀고 있었으며, 드러머는 스틱으로 고무판을 두드리며 준비하고 있었다. 보컬 컬 은 목을 푼다고 복도에서 발성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조금은 긴장했던 터라 베이스 기타로 손가락을 풀면서 콜라를 마시고 있었다. 공연은 아무리 많이 해도 몰려오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물론 있었지만...

"오빠들! 밖에 관중들 봤어?"

복도에서 목을 풀고 있었던 보컬이 상기된 얼굴로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여기서도 들려.. 굳이 안 봐도 알 것 같다."

"이야 이거 이거...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락 음악을 저버리진 않았네..."

"그러게... 락 음악은 서양에서나 어울리는 음악이고 우리나라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한 놈들 다 나오라 그래! 하하하."

보컬의 미소를 보며 다들 한마디씩 하자 모처럼 기쁜 마음으로 다 같이 손을 붙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늘 그랬듯이 우리를 응원해 주는 팬들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연주하자구!자 모두들 즐길 준비됐어?"

꽁지머리가 마치 선봉대에선 선발대 장수처럼 기타를 힘껏 들어 올리며 큰소리로 외치자, 다들 평소처럼 살짝 고개를 떨구고 구호를 외친다.

"슬레이지!"

"해머!"

"가자! 가자! 가자!"

다 함께 구호를 외치니 그나마 있던 긴장감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그다음부터는 시키지 않아도 같은 외침으로 무대를 오르기 위해 일어나면서 마무리했다.

"ROCK!!"

"WILL!!"

"NEVER!!"

"DIE!!"

각자 비장한 마음과 얼굴로 복도를 지나서 어두운 계단을 올라갔다. 저만치 빛이 들어오는 무대가 보이기 시작했고, 들어가는 입구 가장자리에는 이미 나와있는 스태프들과 코디들 그리고, 기획실장이 팔짱을 끼고 웃으며 반겨주었다.

"결국 해냈네? 요런 요런 망치들... 하하!"

드러머가 맨 앞에서 실장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지나갔고, 그 뒤로 나 그다음 꽁지머리 그리고 보컬 순으로 이어졌다. 무대에 들어서자 와!하는 관객들의 떠나갈듯한 함성과 외침으로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었다. 나는 다시 무대 뒤로 돌아나오며 실장에게 다가갔다.영문도 모르는 실장은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제스처를 했다.

"실장님!!"

너무 시끄럽다 보니 큰소리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

"왜??"

나는 잠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뭐가?"

"전부 다요... 우리를 선택해 준 것... 하여튼 전부요!!"

실장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고 눈은 약간 눈물이 맺히는 듯 촉촉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 아직 살아있네요!"

"자네들이 잘해서 그렇지!"

나는 베이스 기타를 맨 채로 다시 한번 실장과 한쪽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다시 무대로 향했다. 보컬이 무대 앞으로 나와서 간단한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서 눈짓을 주자, 무대는 잠시 꺼져버린 조명으로 인해서 블랙아웃이 되었다. 이것 역시 하나의 퍼포먼스였으며 기타가 리프를 연주하자 다시 조명이 켜지면서 연주하는 리듬에 맞게 마치 오로라처럼 출렁거렸다. 그에 맞춰서 관객들 역시 아까보다 더욱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락음악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락음악에 대한 목마름을 해갈이라도 하려는 듯이...

보컬의 헤드뱅잉과 기타와 베이스의 퍼포먼스에 관객들도 똑같이 따라 하며 한 몸이 되었다. 그동안의 많은 공연으로 인하여 우리는 클럽 공연 때와는 다른 잘짜여진 무대매너를 보여줄 수가 있었다.

보컬이 간혹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멤버들을 쳐다보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살짝 윙크를 한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기타애드립 파트 부분에 드럼 옆에 놓인 생수를 마시러 다가와서 물을 마시고는 나의 귀에 대고 큰소리로 말한다.

"오빠! 정말 대단하지 않아?"

내가 연주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한번 큰소리로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너무 좋아!! 정말 살아있는 것 같아!"

보컬은 그렇게 마냥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외쳐대고는 검지와 약지를 세운 두주먹을 내게 들어 보이며 다시 무대 앞쪽으로 뛰어가서 애드립을 연주하고 있던 꽁지머리의 옆에서 헤드뱅잉을 하더니 이윽고 꽁지머리의 어깨에 손을 올려서 어깨동무를 한다. 그 모습이 너무 멋지고 행복해 보였다. 나는 드럼 쪽으로 가서 드럼 대고에 왼쪽 다리를 걸쳐얹고는 드러머와 얼굴을 마주 보며 연주를 했다. 드러머도 미소를 띠며 연주 중간중간에 스틱을 돌려가며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모두들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첫 곡이 후반부에 이르자 나는 다시 무대 앞의 내 모니터 쪽으로 이동을 했다. 내 앞의 모니터에는 보컬과 드럼 위주로 모니터링이 잡혀있었고,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늘 그렇듯이 난 너무나도 자유로운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 오르는듯 했다. 아무런 고민도, 아무런 걱정도 없는 듯이 무아지경이 되었다. 베이스 기타가 바로 나였으며, 내가 바로 베이스 기타가 되는 순간이었다. 자유로움.... 평화.... 그런 것들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다른 세 마리의 자유로운 새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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