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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cker 21화

21화 드디어 메이저가 되다.

by 글싸라기


중년 남자를 만난 멤버들은 좋은 기회다 싶으면서도 과연 이 선택이 옳은 것인가 맞게 흘러가는 것인가 하는 배부른 고민에 빠지고 있었다. 비교적 손님이 적은 가게를 골라들어온 호프집에서도 가장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고는 모두들 주문한 500cc 맥주잔을 기도하듯이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어느 누구 하나 먼저 나서서 말을 꺼내기를 두려워하였다. 언젠가는 유명해지길 바라는 바였지만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상황에 모두들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이기도 했다. 보컬은 노란색의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나무모양을 한 과자 그릇에 담긴 마카로니 과자를 움켜쥐며 먼저 말을 꺼냈다.

"오빠들 생각은 어때..."

오늘은 꽁지머리도 그다지 빠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뭐가 어때... 일단은 해야 되지 않겠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계약서 내용도 아직 모르는데 너무 심각한 거 아니야?"

나의 나무라는듯한 대꾸에 꽁지머리 선을 긋는다.

"형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야... 우리가 일단 소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어. 계약금을 빌미로 노예계약도 될 수가 있는 거고, 우리는 우리 음악도 잃고 시간만 버리고 우리도 흩어질 수도 있는 문제야."

답답했다. 우리가 지금 더운밥 식은 밥 가릴 처지도 아니고, 게다가 알려진 유명 연예인도 아니지 않은가. 누가 우리 대화를 들을까 봐 겁이 날 정도였다.

"야야! 배부른 소리 하지 마! 우리가 무슨 대단한 인기 가수라도 되냐고! 아직 계약서도 안 보고 무슨 겁이 그리 많아서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는 건데!"

내가 큰소리로 윽박지르자 꽁지머리도 대꾸한다.

"누가 그걸 몰라? 간신히 지금 밴드가 자리를 잡고 이제야

제대로 된 음악을 하기 시작했는데 괜히 바람이 들까 봐 그러는 거지!"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자 보컬과 드러머가 중재에 나선다.

"자자 오빠들 진정하시고 우리끼리 뭐 하는 거야...!"

"그래요 차근차근 얘기를 해보자구요."

그제서야 둘은 얘기하느라 거품이 빠져버린 맥주잔을 들고서 벌컥벌컥 마른 목을 적셨다.

"이렇게 해요... 일단 그 사람 말대로 계약서부터 보고 판단해요. 사실 우리에게 기회인 건 맞으니까... 이런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는 밴드들도 있잖아. 그리고 일단 우리끼리라도 어떤 계약이 되더라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하는 조건부터 만들자구요."

"그래... 그게 맞겠다. 좋은 기회임은 분명하니..."

드러머가 맞장구를 쳐줬고, 나머지 둘도 마지못해서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그것이 현실적인 방안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먼저 편곡 작업에 개입은 하겠지만, 결정권은 우리가 갖도록 할 것. 또, 공연 일정은 우리와 협의할 것. 그리고 모든 수입은 똑같이 나눌 것 등인데, 뭐 또 추가할게 있는지 의견들 좀 줘봐요."

역시 보컬은 꼼꼼했다.

"나머지는 일단 계약서를 보고 의논하자. 오늘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술도 제대로 못먹었구만..."

꽁지머리가 퉁퉁거리며 잔에 남아있는 맥주를 급히 들이켠다.

"그래요... 오늘 일단 여기까지.. 오케이?"

"그래... 아후 머리 아파."

"사장님 여기 감자튀김 주세요."

드러머가 안주를 시키고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생맥주통이 쌓여있는 좁은 복도를 지나가자 남성 화장실이 나타났고 좁은 복도 끝부터 누린내가 진동했다. 인상을 쓰며 급한 볼일을 보며 혼잣말을 해본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그런데 저놈은 뭐가 그렇게 불안한 건데... 망할 놈 이런 기회가 또 어딨다고."

자리에 돌아와보니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인기를 얻고 스타가 되면 어떡할까 하는 김칫국물 떠먹는 소리부터 돈을 벌게 되면 각자 평소에 갖고 싶은 악기를 잔뜩 사겠다는 말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구 아까는 세상 근심 다 짊어진 사람들처럼 굴더니 뭐냐 이 난감한 분위기는?"

나의 비아냥 거림에도 거침없이 희망에 찬 얘기는 그칠 줄 몰랐다. 미리 걱정하고 겁을 먹고 뒷걸음치는 것보다 조금은 과한 면은 있지만 차라리 이렇게 긍정적인 분위기가 낫겠다 싶어서 같이 맞장구 쳐 줬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기획사와 미팅을 하였고, 앨범 제작비용은 일명 마이킹이라는 조건이 제시되었다. 말하자면 대출과 같은 형태인데 이자만 없을 뿐이었다. 당연히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이것도 기회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대신 앨범 흥행이 잘되고 인지도가 올라가서 흥행에 성공한다면 단계별로 차감해 주는 조건이었다. 앨범 녹음은 비교적 한국보다 저렴하면서도 완성도는 높은 일본으로 가서 하기로 했다. 이렇게 마이킹을 받으면서까지 진행하는 방법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 밖의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홍보와 모든 지원은 기획사에서 무상으로 지원해 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녹음실에서 쓰일 비용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 개인 연습을 죽어라 했고, 편곡에도 심혈을 기울여서 마무리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녹음실에 지불하게 되는 금액은 일반적으로 3시간을 '한프로' 로 계산을 한다. 즉, 하루 동안 녹음실을 대여하는 시간이 9시간 이었다면 '세프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돈 이었기에 녹음할 때 연습량이 부족하거나 실수를 많이 해서 녹음 시간이 길어진다면 그만큼 비용이 올라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데뷔 앨범은 일단 가사가 포함된 곡 세곡과 연주곡 한 곡으로 구성이 된 싱글 앨범으로 먼저 내기로 했고 한 달여를 직장을 다니면서 한국과 일본을 오고 가는 강행군을 소화해야 했다. 정신없이 바쁜 만큼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으며, 드디어 믹싱과 마스터링을 끝마쳤다. 그리고 우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우리들의 첫 앨범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톱을 물어뜯는 꽁지머리, 콜라 잔을 들고 빨대를 입에서 빼지 못하고 계속 조금씩 마시는 드러머, 담배를 연달아 피워대며 다리를 떨고 있는 보컬.. 어느 누구 하나 초조함을 감추지를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보컬과 경쟁하듯이 줄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합주실안 휴게실에서 우리는 기획실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합주실 문이 열리고 누가 봐도 비싼 양복으로 보이는 슈트 차림의 말끔한 기획실장이 누런 문서 봉투를 들고 휴게실로 들어선다. 그의 입에서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고 우리는 일제히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다들 얼굴이 왜 그 모양이지?"

실장은 아까보다 더 큰 미소를 지으며 놀리듯이 한마디 하고는 소파에 앉았다.

"앨범 나왔어요? 빨리 줘 보세요."

역시 성질 급한 보컬이 먼저 나섰다.

"자! 여러분들 첫 번째 앨범이다."

누런 문서 봉투에는 CD 앨범이 들어 있었다. 우리들의 자식과도 같은 우리 앨범이...

모두들 하나씩 거머 쥐고서는 앞면으로 또 뒷면으로 돌려가며 유심히 바라 보았다. 앞에는 우리들의 밴드 로고가 영문 약자로 각인되어 있었으며 속지에는 흑백사진으로 우리들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어색하지만 활짝 웃는 얼굴로..무엇인가 가슴속 깊이 뜨거운것이 울컥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다른 멤버들도 그러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분위기에 실장은 또 한 번 폭탄 발언을 한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야. 공연 스케줄이 잡혔어."

모두들 놀라서 아무도 먼저 나서서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간신히 무엇에 홀린 듯이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공연이요? 우리... 나라...에서?"

실장은 이내 콧바람을 킁 하더니, 나무라듯이 말한다.

"장난 하나? 아직도 동네 인디밴드를 못 벗어난 거야? 빠른 시간에 이름을 알리려면 이벤트성이 있어야지! 일본이야!"

우리는 그야말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한국도 아닌 일본이라니 우리가? 멍하니 쳐다보는 우리에게 실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회사에서는 처음에 영국을 가닥을 잡았었어... 하지만 그건 너무 큰 모험이라서 부작용도 생각했지... 우리가 동양인이라서 아무래도 문화적으로 비교적 동화되기 쉬운 일본을 선택했지. 어때 자신들 있어?"

우리는 여전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자자... 이럴 시간 없어! 이미 보도자료도 각 방송국에 보내진 상태라서 먼저 라디오 두 군데에서 앨범 소개와 홍보 겸 인사를 하고 바로 일본으로 갈 거야. 첫 번째 라디오방송은 3일 뒤에 SBS 라디오야. 오늘 자축들하고 내일 담당자 연락 오면 스케줄에 맞춰서 이동하면 돼. 자... 그럼 내 임무는 여기까지고 멋진 오늘을 보내라구."

실장이 합주실을 나가려 하자 모두들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서 배웅을 하였고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던 실장은 알 수 없는 밝은 미소를 보이며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몇 분을 그저 넋을 놓고 있었을까. 어느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머리가 천정에 닿을 정도로 모두 자리에서 뛰어올랐으며 합주실이 떠나라 하고 마구 소리를 지르며 기쁨의 포효를 해댔다. 그중에 보컬의 괴성은 지금까지 불렀던 모든 곡에서의 샤우팅보다 크고 우렁찼다.한국에 새로운 락밴드가 탄생했다.한국에 새로운 베이스 플레이어가 다시 살아났다. 결국 그렇게 우리는 드디어...드디어 메이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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