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살면서 겪은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그것이 행복하다는 말에 어울릴 정도의 느낌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행복보다는 평화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와중에 혼자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참 평화로운 기분이다. 그곳이 도서관이나 서점이면 더 좋고. 도서관에 가면 언제나 마음이 편해진다. (만성변비가 있는데 도서관에서 만큼은 화장실도 잘 간다. 도서관 매직..)
물속에서도 고요함과 함께 평화를 느낀다. 물속에선 소리가 갑자기 먹먹해지고, 모든 것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물고기같이 헤엄치는 모습도 신기하고 평화롭다.세상과 이어져있지만 단절되는 기분도 참좋다.
털이 많은 인형이나 키링을 좋아한다. 만지면 포근해지는 그 느낌이 일시적일지라도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인형으로 둘러싸인 침대에서 잠을 잔다. 보드라운 그 아이들이 악몽도 막아줄 것 같다.(사실은 아닐때가 많다)
세상에는 무서운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엄마의 친한 친구이자 내 단골 환자분이 시기도 한 s교장선생님의 젊은 따님, 그분이 둘째를 출산하시고 태반 배출이 늦어 고생했단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다 그것이 융모상피암이 되고, 갓 태어난 아이를 둔 엄마의 질과 골반에 전이되고, 폐로, 마침내 뇌로 전이되었다는 소식을 차례로 전해 들으면서 나는 소름이 끼쳤다. 세상은 그런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곳이다. s 교장선생님은 암이 생긴 딸을 간병하느라, 딸의 두 아이를 돌보느라 오래 두문불출하셨다. 최근에 들은 소식은 따님께선 호전되셨는데(암은 없어졌지만 완치란 표현은 아직 아끼고 싶다) s교장 선생님의 뇌에서 뇌종양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소식에, 나는 세상에 남은 정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s교장 선생님은 내가 아는 엄마 친구분 중에 가장 선하시고 우아하시고 또 신실한 신앙을 가진 분이시다. 그런 분께도 이렇게 막돼먹은 일들이 일어난다. 거지 같고 병신 같은 세상.
평화롭게 살고 싶다. 그래서 매일 비슷한 일만 한다. 매일 똑같은 일정, 똑같은 음식, 비슷한 동선, 익숙한 사람들을 만난다. 운동할 때도 같은 코스만 계속한다. 그런 것들이 주는 편안하고 평화로운 감각이 있다. 이렇게 살아도 삶은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파도 같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뒤통수를 공격하는 자객. 한 가지 다행인 건, 내가 이미 그런 공격에 익숙하단 점이다. 실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대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