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좋다.
어젯밤엔 여느 때 같이 무서운 악몽을 꿨고(면도칼을 든 무서운 남자한테 베이는 꿈!), 아침 수영엔 지각을 했고, 수업 중에 자유형 50m 기록을 쟀는데 형편없는 기록이 나왔다.(무려 50초. 하하하) 그래도 출근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피부 알레르기가 차츰 나아가고 있다. 아직도 스치는 곳마다 붉은 자국이 올라오지만 붉음의 정도가 많이 연해졌다. 나만 알 수 있는 변화. 하지만 "진짜" 변화. 이런 것들이 기쁘다.
어젯밤 꿈은 사실 악몽이 시작되기 전까진 좋은 꿈이었다. H님과 같이 운동하는 꿈이었는데, 꿈속에서 햇빛에 금빛으로 빛나는 헬스장이 아름다윘다. H님의 얼굴 역시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나는 그걸 보며 웃었다. 그 꿈 때문에 기분이 이렇게 산뜻한 걸까, 아니면 그저 생리가 끝나서 호르몬의 안정화로 인한 결과일 뿐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은 운전하면서 또 스네이프를 생각했다.
스네이프는 어려서 만난 릴리를 한평생 좋아했고, 그녀를 위해 결국은 목숨을 바쳤다.
미친 사랑. 나를 파멸시키는 사랑. 하지만 알고 보면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나의 정신을 고양시켜 주는 사랑. 나는 항상 이런 사랑 이야기에 홀리는 것 같다.
내 생각은 이렇다. 인간은 그냥 본성대로, 물 흘러가듯 나태하게 살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로서 살게 된다고.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만 사랑할 줄 아는 이기주의자.
그런데 그런 자연스러운 본성을 거스를 정도로 강한 불꽃이 마음속에 타오르게 되면 그제서야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굉장히 귀하고 드문 일이다. 세상에서 흔히들 말하는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닌 그저 '사랑하는 척'에 불과한 또다른 자기애일 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는 척'은 어떻게 다를까?
'사랑하는 척'은 상대방의 이미지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의 진정한 실체에는 관심이 없고,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를 그 사람 위에 덧씌우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만들어낸 환상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때문에 상대가 나의 상상과 다른 행동을 하면 실망을 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상상이 아닌 그의 실체를 최대한 그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시작은 관심이다. 그리고 기억이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저절로 관심이 가고, 저절로 기억이 되는 것이 곧 사랑이다. 상대가 내 예측과 다른 행동을 해도 분노보다는 슬픔이 밀려올 것이다. (이 정도 슬픔이야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것 같다.) 사랑의 시작은 누군가에게 이유없이 끌리고 관심이 가는 것이고, 사랑의 끝은 그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진짜 사랑은 드물고, 시간을 극복하는 사랑은 더 드물다.
죽을 때 스네이프의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최소 30년은 릴리를 사랑했을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한 여자만 사랑할 수 있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의 결핍이 깊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 양친 모두 그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 특이한 성격과 외모 탓에 남자친구도 여자친구도 없었다. 릴리만이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여자친구였다.
또 다른 이유는 스네이프의 잘못으로 릴리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이른 나이에. 그 죄책감은 스네이프를 영원히 릴리에게 묶어놓았을 것이다. 릴리가 죽은 후 그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얼마나 쓸쓸하고 고통스러웠을까. 스네이프의 죽음은 그가 평생을 기다리던 구원이었을 것이다. 그는 분명 매일 죽고 싶었음에도 릴리의 아들을 지켜내느라 죽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살았을 테니.
이런 사랑 이야기를 꼭 써보고 싶었다.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도, 광활한 시간도, 세상 사람들의 시선도, 본인이 가지고 있던 편견까지도 극복한 진짜 사랑 이야기.
그래서 항상 이런저런 궁리를 한다. 혹은 상상, 혹은 망상을.
보통 내가 쓰는 소설에서는 고아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을 극한으로 모는 환경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아주 심한 장애가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의 대답: 얼마만큼이 아주 심한 건데?)
원래 사랑하던 사람에게 장애가 생긴다면, 그 사랑은 원형 그대로 지속될 수 있을까? (흠. 원형 그대로라는 말이 너무 까탈스럽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나라면 다리가 하나 없는 사람은 사랑할 수 있다. 다리가 둘 다 없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팔 하나가 없어도, 팔 두 개가 없어도.
그런데 다리와 팔이 모두 없는 사람은 어떨까.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육체는 소멸하고 정신만 남는다면, 그 사람을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정신이 헤어드라이기 안에 들어갔다면, 그 헤어드라이기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그 사람의 온기가 필요할 때는 헤어드라이기를 켜는 상상을 해본다. 당신, 아직도 참 따뜻하네요. 아직도 참 좋은 그대.)
나는 평상시에 이런 생각을 한다.
몽상가, 혹은 망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