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하는 것과 척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나는 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의식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나 척을 하고 있다.
내가 매일 하는 척은 이런 것이다.
아는 척하기/알기
수영하는 척하기/ 수영하기
운동하는 척하기/ 운동하기
공부하는 척하기/ 공부하기
좋아하는 척하기/ 좋아하기
경청하는 척하기/ 경청하기
일하는 척 하기/ 일하기
책을 읽는 척하기/ 책 읽기
관심 있는 척 하기/ 저절로 관심 가기
오늘은 척만 해왔던 나 자신에게 세게 뒤통수를 맞았다.
추운 날씨를 핑계 삼아 러닝머신에서 달린 지가 꽤 됐는데, 야외 러닝이랑은 느낌이 달라서 러닝 마일리지를 수치상으로는 쌓고 있어도 실제로는 운동량이 누적되지 않는 듯한 불안한 느낌에 시달렸다.
그런 불안감에 아직 생리가 끝나지 않았지만, 근무가 없는 날이기도 해서 독한 마음으로 야외 러닝을 시도해 봤다. 눈도 오고 추운 날씨였지만 스스로에게 기합을 주는 느낌으로 뛰기로 했다.
근처 호수공원을 달리기로 결정하고 뛰기 시작했다.
'망했다.'
첫 시작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러닝머신에서 뛰는 것보다 뛰는 게 훨씬 힘들었다. 물론 지난주에 천골에 타박상을 입은 게 아직 많이 아프기도 하고 생리통이 남아있다는 변명을 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냥 다리가 움직이는 느낌 자체가 오래 못 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지난 시간 동안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척'을 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척, 내가 잘하는 거였다. 뛰면서 지난 시간을 점검해 봤다. 어쩐지 쉽더라. 러닝크루에서 사람들이랑 뛸 때는 진짜 내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느낌이었다면, 혼자서 러닝머신 위에서 뛸 때는 그런 순간이 거의 없었다. 한계까지 나를 밀어붙여서 죽겠다 싶은 그 순간에 콩알만큼의 발전이 일어난다는 썰이 맞나 보다. 겨울 내내 나는 뭐 한 걸까. 게으르고 바보 같은 나. 힐링 러닝이나 하고 있었네.
어떤 사람들은 척을 오래 하면 그것이 진짜가 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 의견은 다르다.
척은 척일 뿐이다. 이왕 같은 시간에 노력을 할 거면 정신 차려서 진짜를 하는 게 낫다.
비록 나의 게으른 본성은 진짜보다 척을 좋아하지만.
이제 마라톤이 겨우 한 달 남았는데 다시 0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불길한 느낌이다.
러닝 마일리지도 쌓고, 몸무게도 줄이고, 하체 근력도 기르고, 천골 타박상도 얼른 낫게 해야 되고, 할게 산더미 같다.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어. (접수를 해놨단 말이야. 엉엉)
다들 척좀 그만합시다.
저처럼 후회하기 싫으면요.
(그리고, 핑계는 집어치우고 다시 러닝크루에 가입을 해야겠어요. 헬스장에서는 앞으로 러닝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