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참회록
설날에 크게 넘어져서 천골이 골절이 되었는데, 단순 타박이라고 생각하고(아니, '믿고'가 더 정확할 것 같다. 환자들한테는 타박상을 입으면 꼭 xr을 찍어오라고 하는데 나는 골절일까 봐 일부러 더 찍지 않았다) 러닝과 수영에서 평소보다 페이스가 안 나온다고 스스로를 학대했던 일을 곱씹고 있다.(골절되었으니까 빨리 못 뛰지.. 바보.) 정신적인 영역이 아닌 신체의 영역이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내 직업과 관련이 깊기도 하고. 어쩌면 이번 일이 나 자신을 바로 볼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할수록 우습다. 환자가 이랬으면 정색하고 설교를 늘어놨을 텐데, 스스로에게는 왜 이렇게까지 모질게 굴까.
나는 넘어진 그다음 날부터, 그러니까 골절된 바로 다음날부터 5km 넘는 러닝을 했고 스키도 탔다. 수영도 점프스타트로 입수를 하고, 기록을 잰다고 속도를 높였다. 속으로 비명을 질러가며 웨이트도 했다. (20kg짜리 원판을 도무지 못들어서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었다) 하루도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나약하다고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화를 냈다. 수영 기록이 떨어지니까 강습을 더 늘렸다.
이것이 내가 평생을 살아온 방식의 축소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내가 입은 부상, 상처는 최소화시켜 생각하고 나는 괜찮으니까 더 나아가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식이었다.
부모님께서 그분들 나름의 방식으로 지극히 사랑해 주셨음에도,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 갈 데 없는 고아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타고난 기질 탓이었을 텐데, 나는 온전히 행복하지 못함에 부모님께 죄송하고 괴로웠다.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흠결 없는 성녀 같은 엄마와 나를 비교하고, 스스로를 배은망덕하다고, 후레자식 같다고 여기며 나의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졌다.
내 영혼은 타고나기를 반듯하지 못하고 휘어있으며, 그래서 나는 좋은 것을 누릴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믿어왔다. 휘어있는 영혼, 휜 걸음으로, 나의 선택은 언제나 죄악과 불행 쪽으로 기운다고. 낮은 자존감 탓에 나쁜 일이 일어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선 나쁜 쪽은 사실 나였다고 여겼다. 그래서 세상에, 타인에 따지고 화를 내기보단 나의 일부를 잘라내고 몸을 더 작게 웅크리는 편을 택했다. 그 결과 내 세상은 점점 더 좁아졌고, 나는 더 작아졌다. 두려움과 불안이 커질수록 스스로를 세상부터 도려내어 요새를 만들고, 강박적인 루틴의 감옥에 자신을 가뒀다. 그리고 안전하다고 믿는 그곳에 들어앉아 작은 틈으로 세상을 지켜봤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멀쩡해 보였다. 못난 사람은 나 하나였다.
전보다는 한 발자국 밖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과 환희, 글의 세계와 몸의 세계, 과거와 현재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내가 불행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고, 그저 삶이 내게 일어날 뿐이라는 명제를 나 자신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다), 진정한 깨달음은 언제 올까. 깨달음은 원래 벼락같이 오는 것인데. 나는 날마다 그 벼락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