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없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나의 사랑 이야기

by Dahl Lee달리

다리 없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는 문학인들이 애용하는 B 사이트의 네임드 작가였습니다. 필명은 '다리 없는 남자'.


일기인지 소설인지 모를, 혹은 그 사이의 어딘가에 고여 있는 수필 같은 글을 그는 거의 매일 올렸습니다. 글 속의 화자는 언제나 다리 하나를 잃은 상태였습니다. 어쩌다 신체의 일부를 유실하게 되었는지 그는 한 번도 발설하지 않았으나, 독자들 사이에서는 비극적인 추측만이 안개처럼 무성하게 번져갔습니다.


그는 사라진 다리가 마주하는 매일의 일상을 쓸쓸하고도 위트 있게 묘사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솔직함과 번득이는 문학성에 열광했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매일 그의 글을 간절히 기다리는 일은, 마치 내 안에 뚫린 깊은 우물 속에 달빛이 고이길 기다리는 의식과도 같았습니다. 소설일지도 모를 그의 결손을 상상하며 함께 울고 웃다가, 그가 여자로 추측되는 아이디에 친절한 댓글을 달아줄 때면 이상하게 심사가 뒤틀리곤 했습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내가, 달리기를 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그의 존재와 그의 문장이 되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내 정서의 궤도가 그라는 거대한 중력에 의해 휘어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남자를 좋아해 본 건 실로 오랜만이었습니다. 나의 마지막 연애는 십오 년 전. 연애 감정이라는 것은 이미 낡은 뼛조각처럼 퇴화하여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심장이 다시 뛰고 있었습니다.




그의 글 아래에 조심스럽게 첫 댓글을 남겼던 밤을 기억합니다.


'다리 없는 남자'라는 필명 뒤에 숨은 고독의 깊이가 제 휜 영혼의 각도와 닮아있다고, 당신의 비극은 나에게 구원이라고 적으려다 지웠습니다. 대신 "오늘의 문장은 유독 저릿하네요"라는 무미건조한 한마디를 보냈죠.


그날 이후, 우리는 개인적인 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습니다. 액정 너머로 전달되는 그의 문장들은 엑스레이 필름보다 선명하게 내 심장의 박동을 찍어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라진 다리'가 남긴 환상통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내가 가진 '보이지 않는 흉터'들에 대해 고백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나, 환자들 앞에서는 전문직 의료인을, 부모님 앞에서는 성녀 같은 딸을 연기하는 나는 사실은 엉망진창이라고. 매일 그들을 기만하고 살고 있다고. 그 기만이 나를 좀먹고 있다고.


그는 어쭙잖은 위로 대신 그저 묵묵히 자신의 어둠을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결핍을 먹고 자라는 기형적인 식물처럼 밤마다 메시지의 넝쿨을 뻗어 서로를 감아쥐었습니다. 몇 주 전 사고로 부러진 나의 천골 이야기에 그는 깊이 공감해 주었습니다. 자신 역시 척추뼈가 부러지는 감각을 알고 있다고. 골수로부터 흘러나오는 고통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어떤 의학적인 중재보다 더 강력한 마약이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진료실에서 매일 환자들의 고장 난 몸을 보면서도, 내 머릿속엔 온통 그의 보이지 않는 다리 생각뿐이었습니다. 단정하게 일상을 걸어가고 싶다는 이성 따위는 이미 마비된 지 오래였습니다. 그가 보내오는 다정한 활자들은 내 강박의 감옥을 허물고 들어오는 유일한 빛이었고, 나는 그 빛이 눈을 멀게 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래 멈춰있던 나의 연애의 궤도는 이제 그라는 중력에 완벽하게 포획되어, 정처 없이 그의 슬픔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밤마다 메시지의 바다를 유영했습니다. 스마트폰의 차가운 액정은 역설적이게도 15년 동안 동결되었던 나의 심장을 가장 뜨겁게 지져대는 인장(印章)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결핍을 '도려내진 공간'이라 불렀고, 나는 그 공간을 내 안의 휜 영혼으로 채우고 싶다는 위험한 갈망에 사로잡혔습니다.


메시지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나의 집착은 기형적인 궤도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침대에 몸을 누이기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그의 '부재하는 다리'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 찼다고 이미 말했었죠.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차라리 중독에 가까웠습니다. 그가 문장을 멈추면 내 세계의 자전도 멈출 것만 같은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결국 나는 궤도를 이탈하기로 했습니다. 그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글 속에 흩뿌려진 단서들을 조합해 그의 집 근처를 알아냈습니다. 스토커의 심정과 순례자의 경건함이 기묘하게 뒤섞인 채로 나는 그의 요새 앞에 섰습니다. 두려움이 천골뼈의 갈라진 틈을 타고 올라왔지만, 그 통증조차 그와 연결되는 신호처럼 느껴져 오히려 달콤했습니다.


하지만 현관문이 열리고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나의 세계는 소리 없이 붕괴되었습니다.



그는 휠체어에 의지하지도, 목발을 짚지도 않은 채 너무나 견고한 두 다리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햇살 아래 드러난 그의 사지는 지나치게 멀쩡했고, 그 평범함은 내게 그 어떤 비극보다 잔인한 폭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순간, 내 마음은 만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차게 식어버렸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그가 아니라 그가 가졌다고 믿었던 '고통'이었음을, 나는 그가 망가진 사람이기에 안심하고 내 상처를 투영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다리 없는 남자가 아닌 순간, 나는 다시 갈 곳 없는 고아가 되어버렸습니다. 나만 여전히 부러진 채로, 나만 여전히 휜 걸음으로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아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유를 말하지 않은 짧은 이별을 전했습니다. 그가 가진 다리의 유무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를 거울삼아 대면해 버린, 내 안의 다리 없는 아이가 너무나 흉측해 더는 그 곁에 머물 수 없었을 뿐입니다.


그와 헤어진 후 홍수처럼 나를 허무는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원래부터 뼈대가 견고하지 못했던 나는 흔적처럼 녹아내렸습니다.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처방은 '직면'이었습니다. 내 휘어진 등뼈를 찍은 엑스레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봅니다. 손으로도 쓸어봅니다. 미워하지 않고 그저 가여운 마음이 들 때까지. 듣기 싫게 앵앵거리는 내 목소리로 좋아하는 시를 읽고 그걸 녹화해서 다시 들어봅니다. 미운 목소리 때문에 당장 꺼버리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참고 듣다 보면 어느새 미운 마음이 옅어집니다. 영상 속의 여자는 왜 이렇게 지치고 슬퍼 보일까요.


나는 다시 혼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부러진 천골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제 나는 그 소리를 억누르지 않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마음껏 울고 소리를 지릅니다. 비명을 삼키지 않고 달리는 이 휜 걸음이야말로, 이제껏 내가 부정해 온 나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으스러진 뼛조각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이 불협화음이야말로, 정교하게 수선된 가식보다 훨씬 더 투명한 나의 진실임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흉터를 사랑하기 위해 기꺼이 다시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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