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꿈 이야기
나는 돈이 좋다.
정확히 말하면 돈 버는 게 좋다.
돈을 벎으로써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느낌이 좋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기도 전부터 과외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과외를,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항상 용돈을 넉넉히 주시는 편이셨지만 스스로 돈을 버는 느낌이 좋았다. 부모님한테 받은 돈을 쓰는 느낌이랑, 내가 직접 번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는 느낌은 차원이 달랐다. 장학금을 받고 있었기에 내가 과외로 번 돈을 그대로 저축을 했다. 통장잔고가 대학교 일 학년 여름방학 때 벌써 천만 원을 넘어갔다. 나는 그 돈으로 엄마랑 터키 이집트 여행을 갔다 오기도 하고, 엄마와 이모들께 자주 선물을 해드렸다. (물론 내 옷이랑 화장품도 많이 샀다.)
지금도 물론 내 업장을 운영하며 돈을 큰 부족함 없이 벌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돈을 벌고 싶다. 내 본업을 제칠만큼 많이는 아니어도 된다. 그저 소소하게. 나는 문학에 혼을 바치는 사람이기보다는, 몽상가와 실용주의자 그 어딘가에 위치하는 듯하다.
분당에 내 이름으로 된 작은 상가가 있다. 거기서 나는 백만 원을 약간 넘는 월세를 받는다. 그곳엔 부동산이 입점해 있다. 분당에 나름 상권 좋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도, 나는 지난 수년간 한 번도 월세를 올린 적이 없다. 단돈 만 원도. 그래서 그런지 공실이 난적도 없다. 나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지보다는, 그냥 그렇게 소소한 돈이 들어오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나는 내 기쁨의 총량을 늘이기 위해 글쓰기로 그 정도의 돈을 꼬박꼬박 벌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영어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영어로 글을 쓰는 게 더 돈이 잘 벌릴 것 같아서. (혹은 언젠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런 막연한 마음으로 3년간 William과 영어로 글쓰기 수업을 했다. 우리가 수업하던 막판에 인공지능 chatgpt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chatgpt가 나오면서, 우리는 내 글에 대한 chatgpt 번역을 윌리엄과 내가 함께 번역한 것과 비교해 봤다. 그러면서 더 이상 영어로 글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국어로 좀 더 제대로 된 글을 쓰는데 치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업으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던 William도 chatpgt의 도움으로 자기가 개발하던 앱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챗 지피티의 발전상을 체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영어 수업을 그만두고 한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글로 소소하게 돈 버는 걸 모색 중이다. 지난 화요일, 나의 소중한 휴일에는 도서관에 가서 아마존에 내가 쓴 짧은 소설을 번역해서 e-book으로 편집해서 올려놨다. CANVA 앱을 써서 표지 디자인도 직접 하고, 번역에는 제미나이를 썼는데 은근히 빠뜨린 문장들과 내 의도와 다르게 표현한 부분이 있어서 하나하나 읽으며 고치고 또 고치느라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한 권에 2.99달러의 값을 매기고 70%의 로열티를 받고. kindle unlimited에서 읽을 수 있게 해 놨는데, 어차피 정액제로 돈을 내는 사람들이 좀 더 너그럽게 책을 읽어줄 것 같아서 그랬다. 그 책은 아마존에서 검토하는데 72시간이 걸려서 여전히 in review(검토 중) 상태이다. (방금 확인해보니 드디어 live, 판매중으로 전환됐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웹소설을 써보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요새 흔히 유행하는 웹소설, 나도 읽어봤지만 도저히 그런 글은 쓸 수도, 읽을 수도 없다. 나의 본질을 훼손하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몽상가다. 글을 쓰면서 돈을 벌고 싶지만 동시에 나다움을 훼손하고 싶지 않고, 그저 목마른 마음에 그 중간 어딘가를 계속 배회한다.
사족.
요새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읽고 있다. 이해가 되는 지점이 있으면서도 소름 끼치고 징그러운 소설이다. 1/3 정도 읽었는데 작가와 주인공이 둘 다 싫다. 날 때부터 장애가 있다고 그렇게 음침해야 할까? 나는 슬퍼도 산뜻한 사람이 좋다. 소설 한부분에 구겨진 흰 셔츠를 묘사하는 부분이 나온다. 구김이 있어도 밝게 빛나는 셔츠. 인간도 그렇게 살면 왜 안 되는가? 구겨져도 품위 있고 산뜻하게.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